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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0)화 (10/317)

덕분에 잠시 넋을 빼 놓고 있던 이온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 그렇게 말해 봤자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걸…….”

한발 물러나는 듯한 그의 말에 왜인지 욤뇽이가 아쉬워하는 소리를 흘렸다.

“꾸이잉.”

카밀루스도 어째 기가 조금 꺾인 듯한 표정을 지어 괜히 찔린 이온이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욤뇽이를 데려와 품에 안았을 때였다. 카밀루스가 난간 너머로 시선을 옮기는 듯하더니 중얼거렸다.

“……누군가 왔군.”

“누가?”

말랑한 드래곤의 작은 몸이 제 두 팔 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이온도 카밀루스가 시선을 주는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러자 과연 자작 저 앞에 여러 장정들이 도착해 막 말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 타이밍에, 이곳에 올 자들이라면.

이온이 생각한 뒷말을 카밀루스가 대신 읊었다.

“크레이거 공작가의 기사들인 모양이야.”

이온이 저도 모르게 긴장으로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손에 힘을 넣었다. 그 기색을 곧바로 알아차린 카밀루스가 그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마주해 왔다.

“이온.”

“응?”

부르는 소리에 이온이 자신보다 살짝 키가 큰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카밀루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여 왔다. 공작가의 사람들이 어느새 저택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으나 그에게서 긴장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자신을 데려오는 순간부터 예견한 일이라 여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내가 공작 저에 데려다주어도 될까?”

그렇다 해도 이 침착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의문스러웠다. 나이도 고작 열여섯에 불과하면서.

게다가 그냥 묻지 않고 해도 될 일을 계속 묻는다. 이온은 왜인지 그런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신을 향한 깊은 배려를 느꼈다. 하여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해 줄래?”

이온은 잠깐 제 가문의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골탕이라도 먹일 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밀루스가 이온의 허리를 제 팔로 두르고는 확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밀착이었다. 가슴이 맞닿은 찰나, 카밀루스가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내 몸 꼭 잡고 놓치면 안 돼.”

아까처럼 순간 이동 하는 게 아닌가?

이온은 너무 가까워진 카밀루스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한데 그 순간.

“읏……!”

돌연 몸이 무언가 딱딱한 것 위에 올려지는가 싶더니 붕 뜨는 느낌이 났다. 깜짝 놀란 이온이 제 밑을 내려다보자 하얀 날개가 펄럭 펼쳐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당황한 이온의 눈앞에 문자가 떠올랐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힘에 의해 화이트 드래곤이 일시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화이트 드래곤……? 진화?’

창에 뜬 말을 머릿속으로 재차 떠올린 이온이 놀라 소리쳤다.

“설마, 욤뇽이?!”

대답은 저를 안은 카밀루스에게서 나왔다.

“맞아, 이온.”

그 긍정에 맞춰 드래곤의 몸체가 하늘로 치솟았다. 지상에 있는 자들이 전부 손가락보다 작게 보일 만큼 높이.

이온은 너무 놀라 입을 벌렸다. 높이도 높이지만 욤뇽이가 진짜 화이트 드래곤이라는 데에서 오는 충격 때문이었다.

‘아니, 드래곤이라는 걸 안 믿었던 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급히 정신을 붙잡고, 비늘이 뒤덮인 몸체를 따라 앞쪽을 살피니 만지면 손이 얼 것 같은 새파란 뿔이 삐죽삐죽 솟은 머리가 보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드래곤이 살며시 고개를 돌려 이쪽을 살피는 기색이었다. 눈이 마주치고, 그 예쁜 보석안을 보고 나서야 이온은 제가 탄 드래곤이 정말로 욤뇽이임을 받아들였다.

성체의 모습인 욤뇽이는 꽤 늠름한 모습이었다. 한데.

[플레이어가 화이트 드래곤에 탑승하였습니다.]

[이동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추락할 확률 70%]

“…….”

생각보다 아주 높은 추락 확률을 보는 순간 등 뒤가 오싹해진 이온이 급히 카밀루스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여기서 아, 안 떨어지는 거 맞지?”

말을 더듬으며 묻는 소리에 카밀루스가 작게 웃었다. 그는 이온이 더 안심할 수 있도록 단단히 등을 받쳐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랑 있으면 안전해, 이온. 그보다, 무섭지 않으면 주변을 봐 볼래?”

“응?”

추락할 확률이 70퍼센트인데 안 무서울 리 있나?

하지만 그 정도로 구체적인 확률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반적으로 보면 이상한 일이니 그런 변명을 주워섬길 수도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마법사인데 떨어져도 살려 주겠거니 싶기는 했기 때문에, 이온은 용기를 내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밀빛 머리가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탓에 시야가 조금 가려져, 이온은 살며시 머리를 넘겼다. 그렇게 눈앞을 트는 사이, 카밀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전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다고 했었어.”

“아…….”

원래의 이온 크레이거가?

‘내가 아니라.’

그러니 동요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카밀루스는 단지 추억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들려온 말이 그리 슬픈 것도 아니었다. 아닌데, 그런데도 이온은 어쩐지 가슴이 죄어 옴을 느꼈다.

너랑 나는 친구였을까.

같은 사람은 아니라도 이 몸의 주인과 자신을 자꾸 동일시하게 되었다. 몸에 들어온 지 이제는 시일이 꽤 지나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낱 감정에 불과한 것이긴 했다. 그의 ‘구원자’라는 말로는 두 사람 사이를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을지언정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자꾸만 의문이 맴돈다.

‘게다가 이런 어린애를 가둬 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이야?’

동시에 시선 한편에 있는 거대한 탑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하늘 위에서 보니 주변에 둘러쳐진 결계의 경계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희미하게 선홍빛을 띠는 결계는 거대한 돔처럼 그 탑이 속한 황궁의 일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황제가 기거하고 있을 황궁을 중심으로 모인 갖은 건물들에 어떤 외부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하게.

그 결계는 마법에 무지한 이온의 눈으로 봐도 범상치 않았다. 범위가 일단 내황성을 전부 감쌀 정도로 거대하였고, 필시 오랜 시간 시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범접지 못할 경지에 이른 대마법사가 펼쳤을 법한 대단한 결계.

‘저것도 얘가 펼친 건 아니겠지?’

이온은 제 복부를 받치고 있는 손으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저택을 지키고 있던 사람 하나 없었던 것치고 거스러미가 일지 않게 잘 정돈된 손톱. 거기에 모양 좋은 손가락이 참 예뻤다. 그것만으로도 카밀루스의 섬세한 성격 일부를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뢰할 만한 인간이 아니긴 하지만 이온의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은 카밀루스를 대상으로 이런 말도 했었다.

〈그놈은 괴물이야.〉

그리고 또.

〈그런 놈을 순한 강아지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이 크레이거 가문의 소공작이 아니겠느냐.〉

마치 이온이 그의 유일무이한 목줄이라는 듯이.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위험한 존재인 걸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껏 주어진 단서들은 전부 한 가지만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카밀루스가 이온 크레이거의 편이라는 것.

그러니 어떻게든, 이온은 이 동아줄을 잡아야만 했다.

그는 제 허리를 감싼 카밀루스의 손에 제 손을 올렸다. 그런 뒤 살며시 위를 올려다보자 내내 시선을 향하고 있었던지 눈길이 딱 맞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 이온은 움찔해 버리고 말았다.

카밀루스의 푸른색 눈에 담긴 빛이 너무 부드러워서, 또 그만큼 다정해서일까. 덕분에 용기가 생겼다.

이온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비치며 물었다.

“혹시 우리,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어?”

“또……?”

보자마자 울었으면서, 이온이 자신의 구원자라면서 왜 또 만나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는 것인지.

대체 어떤 관계인지 아직은 정확히 파악이 힘들었지만 이온은 카밀루스가 싫지도, 미지의 부분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았다.

하여 작은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그가 마나 주입을 위해 잡고 있는 손을 움직여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꼈다. 그러자 카밀루스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어쩌면 부끄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손을 놓으면 나, 다시 아파질지도 몰라.”

“……무슨 뜻이야?”

“저주에 걸렸거든.”

몸이 약해진 원인이 저주 때문이었다는 건 카밀루스도 몰랐던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금세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누가 그랬다는 거야?”

목소리가 제법 날카로워진 것을 들으며 이온은 범인을 알았다면 그가 바로 욤뇽이의 등에서 뛰어내려서 응징하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편하긴 했을 텐데.

[상태 이상: 병약함. □□의 저주에 따라 기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누가 저주를 걸었는지는 필터링 처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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