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뇽이? 어디 가는 거야?”
자신에게서 빠져나가 문가로 날아가는 욤뇽이를 보고서는 이온이 살며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유리문이 조금 열리며 미약하게 바람이 흘러들어 왔다.
자세히 보니 문을 두드린 존재는 새였다. 보통 거리를 날아다니는 새들보다 훨씬 더 큰 부리에,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 깃털, 그리고 노란 눈까지.
이온은 발코니에 날아 앉은 그 새가 무엇인지 금세 알아챘다. 아까 대서재에서 눈이 마주쳤던 독수리였다. 창가에 앉아 고개를 갸웃갸웃하는데, 대서재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이온은 저도 모르게 빈방을 둘러보다가, 스스로를 손으로 가리키며 살며시 물었다.
“혹시 나를, 찾아왔어?”
새한테 말을 걸다니, 영 엉뚱한 행동이라는 것은 저도 알았지만 왜인지 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답은 실제로 돌아왔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이온.”
새의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가볍게 하얀색 드레스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의 팔에 곧 저를 보고 있던 독수리가 다소곳이 가 앉았다.
이온은 발코니 쪽으로 난데없이 들어온 상대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카밀루스?”
놀란 이온이 일단 방문이 제대로 닫혔나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는 침대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이온에게 단숨에 달려와 양팔을 붙잡아 주었다.
“무리하지 마.”
정말로 카밀루스 클로델이었다. 다음을 기약하기는 했었지만, 그게 오늘 밤이라고는 생각 못 했던 터였다.
이온은 제 앞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영 믿기지가 않아 그의 팔을 꽉 쥐어 보았다. 확연한 실체감이 느껴지고 나서야, 그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이곳은 심지어 크레이거 공작가였다. 황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안팎을 지키는 기사들이 여럿 있는 데다, 가족들이 모여 사는 본관에는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쳐 놓은 마법 결계도 존재했다.
이온의 물음에 우선 카밀루스는 발코니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욤뇽이는 불만스러운 듯 꾸, 하고 울면서도 일단 문을 낑낑 밀어 닫았다.
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야 카밀루스가 이온을 품에 안더니, 도로 침대에 눕혔다. 짧은 사이에 다시 이불이 덮여 이온은 그 안에 파묻혔다. 그런 뒤에야 카밀루스가 침대맡에 앉으며 이온의 손을 잡았다.
미약하게 두 사람의 맞닿은 손에서 푸른빛이 일었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가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유지 시간 90분.]
[기력이 개선되고 나쁜 상태 이상이 억제됩니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이 40% 감소합니다.]
“나한테 여기에 들어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거든.”
이온은 왜인지 카밀루스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긴장한 것처럼 경직되어 힘도 꽤 들어가 있었다.
“이 독수리를 통해서 날 보고 있었던 거구나.”
이온의 지적에 카밀루스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떨궜다.
“……불쾌했다면 미안해.”
처음 독수리를 봤을 때는 무섭기도 해서 혹시나 저주를 걸었다는 □□가 보낸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카밀루스가 보낸 거였다니, 출처를 알고 나자 급격히 안심이 되었다.
이온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불쾌한 것까지는 아니야. 근데 왜 왔어?”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사실 그냥 조용히 지켜보려고만 했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과의 재회(1/3)]
벌써 대화 열 마디가 되었나. 대화 중간에 퀘스트 변동 사항이 떴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퀘스트 하나를 깬 것 때문에 기뻐하기보다는 카밀루스와의 대화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단순히 마나 주입 때문이 아니라, 그와 있으면 마음도 같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온은 말에 조금 장난기를 담았다.
“이 저녁에 도둑처럼 남의 집 담장을 넘어서 말이지?”
그의 지적에 카밀루스는 눈을 살며시 휘었다. 버틀러가 붙여 두고 간 촛불의 붉은빛이 카밀루스의 눈동자에 비치자, 그의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한테 공작 저에 쳐진 결계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거든.”
“무법자.”
“하지만 걱정되는 걸 어떡할까.”
마지막 마디에서는 방금 전까지 스며 있던 장난기가 확 빠졌다. 카밀루스는 땀이 배어나는 이온의 이마를 손끝으로 훑어 주며 미간을 미세하게 일그러뜨렸다.
“이렇게 몸이 약해진 줄은 몰랐어. 정말, 전혀 몰랐어…….”
왜인지 그의 말엔 자책이 어려 있었다. 이온이 이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카밀루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온은 씁쓸히 웃었다.
“네가 알던 난 건강했었나 보구나.”
그의 한마디에 카밀루스가 무언가 뒷말을 잇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이온은 그가 덮어 주었던 이불을 다시 젖히며 몸을 일으켰다.
“이온, 일어나면…….”
바로 걱정하는 말이 따라와 이온이 그의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잡아 줄 거잖아. 그렇지?”
그야말로 당당한 요구였다. 그렇지만 카밀루스는 전혀 황당해하지 않고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응.”
그렇게 대답하고, 마치 데뷔탕트에 나온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이온의 몸을 이끌었다.
이온은 카밀루스의 부축을 받아 그가 들어왔던 발코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그에게 조금이나마 풀어 놓았다.
“내 추측으로는 내가 이렇게 된 건 굉장히 갑작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이 집안의 누구도 그것에 대해선 얘기 안 해.”
“…….”
마치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물론 쉬쉬하는 것은 카밀루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맞다, 찔리라고 하는 말이었다.
예상대로 카밀루스가 애써 정면을 보면서 시선을 피했다.
이온 역시 발코니로 통하는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치는 둘의 모습과 별과 달이 뜬 바깥의 모습이 기묘하게 섞였다.
“그 일이 그만큼 큰일이라는 의미였겠지? 단순히 입만 막았다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실수했을 텐데, 그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계속해서 은근히 찌르자 카밀루스가 그제야 한마디 뱉었다.
“아마 다들 두려워하는 걸지도 몰라.”
이쪽도 눈치가 있으니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이온은 모르는 척 계속 떠보았다.
“나를? 너를?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
카밀루스는 대답하길 주저하는 듯했지만 결국 인정했다.
“나를. 나를 말이야.”
대답을 듣고 이온은 잠시 고민했다.
크레이거 공작의 말도 그렇고, 오랫동안 탑에 갇혀 있었다는 그의 사정 역시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특히나 이런 어린아이의 꼬리표로 따라다니기에는.
그러나 이 주제로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온은 다시금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너, 그렇게 무서운 애야? 얼마나?”
잠시 머뭇거리던 카밀루스가 발코니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이온은 그가 이끄는 대로 발코니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밤늦은 시각에도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마구간에 말을 돌려보내기 위해 걸어가는 버틀러와 보초를 선 기사들, 그리고 물을 길어 나르는 하녀들까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카밀루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곳 공작 저를 지키는 어떤 위대한 마법사도 날 막지 못할 만큼, 네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이 너와 날 만나지도 못하게 할 만큼. 적어도…… 그 정도로는 무섭지.”
적어도. 그 말에서 씁쓸함마저 느껴졌으나 이온은 모르는 척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뭐, 별거 아니네. 그건 그냥 그 마법사가 무능하고, 공작께서 속이 좁은 탓이니까.”
실제로 제 앞의 카밀루스 클로델은 ‘대마법사’나 ‘마녀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남아처럼 보였다. 하는 말을 듣자 하면 상당히 애늙은이 같긴 했지만, 아직은 볼에 젖살이 조금 남아 있고 솜털도 보이는 16살짜리일 뿐이다.
이온은 그런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난 네가 무섭지 않아, 전혀.”
이온의 그 짧은 말은 카밀루스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마치 숨이 멎은 것처럼 그는 한동안 그대로 멈춰 있었다.
곧 큰 숨을 들이켠 그가 이름을 불러 왔다.
“이온.”
“응.”
“내가 널 데려다주었던 숲, 기억하지? 공작가의 그 숲이 의외로 아름답다는 건 알아? 구경, 가지 않을래?”
이온이 쿡 웃었다. 가볍게 걸친 가운의 늘어지는 소매를 들어 보이자 카밀루스가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거절을 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온이 작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잠옷 차림이지만,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