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9)화 (19/317)

* * *

저주의 기운이 날로 심해져 가는 것인지 이온이 움직이다가 실신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마지막 기억은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눈떠 보면 침대 위라든지, 분명히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니 코피를 쏟았다면서 집안의 온 식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황당한 일도 두어 번씩 반복됐다.

해가 짹짹대는 소리에 오후 늦게 다시 깨어난 이온이 한 첫 생각은 이대로면 정말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상태 이상: 저주. □□가 당신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의 사망 시 해제됩니다.]

상태창을 불러와 그곳에 적힌 것들을 보다가 이온이 이불을 살짝 젖혔다. 그러자 이온의 배 위에 올라와 숨어서 울고 있던 욤뇽이가 보였다.

“꾸이잉…….”

이온이 잠든 동안 내내 울고 있었는지, 작은 드래곤은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염분 때문인지 퉁퉁 부어오른 욤뇽이의 눈가를 보고서 이온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늘 결이 가지런한 등이 훌쩍거리는 박자에 맞추어 들썩이는 것을 보니 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나 보다.

이온은 아가한테 괜한 염려를 끼쳤구나 싶어서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쌓은 녀석에게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이번엔 정말 잠든 거였어. 자고 일어나니 나아졌어.”

그러자 욤뇽이가 이온의 눈 옆으로 걸어와 베개 위에 앉더니 고개를 내밀었다. 왜인지 뽀뽀를 해 달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어 뺨에 제 입을 비비며 끙끙대자 이온이 활짝 웃었다. 이쯤 되면 너무 귀여워서 뽀뽀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욤뇽이의 몸을 들고 작고 말랑한 입에 연신 제 입을 맞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여워? 응?”

“꾸, 꾸…….”

역시 위엄 있는 드래곤이라기에는 작은 반려동물 같다. 아마 아픈 와중에 욤뇽이도 없었으면 삶의 즐거움이 하나 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화이트 드래곤으로부터 ‘응축된 마나’를 건네받았습니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가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유지 시간 90분.]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4%입니다.]

이온이 놀란 눈으로 욤뇽이를 보자 녀석이 끙끙거리며 이온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얀 비늘로 뒤덮인 욤뇽이의 통통한 몸을 쓰다듬으며 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내가 죽을까 봐 무서웠어?”

“꾸.”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처진 몸과 슬퍼하는 표정만 보아도 어떤 답인지 알 만했다.

기실 억제된 사망 확률이 24퍼센트이니 이전보다 심각하긴 했다. 그래도 욤뇽이의 힘을 받아 일단 움직일 기운은 생겼다.

이온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는데 이대로 누워 있는 건 진짜로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안 됐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야 했다. 욤뇽이가 더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바닥에 발을 디디니 살짝 현기증이 일었지만, 일어서서 잠깐 심호흡을 하고 나니 조금 나아졌다. 이온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협탁으로 손을 뻗어 그 위의 종을 딸랑딸랑 울렸다. 곧바로 늙은 버틀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종을 치자마자 들어온 것을 보면 아마 문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껏 걱정이 어린 그의 얼굴을 보면서 이온이 요청했다.

“대서재에 가고 싶어.”

* * *

지금 이온에게 가장 부족한 건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이해였다.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 수년의 세월을 소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이온은 눈에 보이는 대로 책을 꺼내 달라고 해 본인이 직접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옆에 어린 버틀러를 두 명을 양쪽에 세워 내용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맑은 정신일 때 하나라도 더 건져 가야 한다는 생각에 끼니마저도 서재에서 해결했다. 다들 걱정 어린 시선과 염려 섞인 말들을 건넸으나 이온은 그만둘 수가 없었다.

속독으로 벌써 십수 권의 책을 내려놓고 난 뒤, 이제 저주에 대한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저주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질병처럼 자연계에서 얻는 저주와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서 얻는 저주가 그것이었다.

자연계에서 얻는 저주는 대개 부분적인 증상으로만 나타난다. 간단하게는 살이 검어지거나 신체 일부의 크기가 줄어드는 등의 저주가 있고, 특이하게는 정신계에 영향을 미쳐 특정한 물체를 못 보게 하는 등의 저주도 있었다.

사람이 거는 저주는 대부분 자연계의 저주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 물론 마법의 역사만큼이나 저주의 역사도 아주 깊은지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저주의 수와 함께 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주해 방법이 존재했다.

건전하게도 책에 나오는 저주들은 무조건 그 해제 방법도 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해제 방법이 없는 저주는 금지된 마법이고, 그런 마법을 적어 둔 책 역시도 금서로 지정된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발견했다.

그런데 저주에 관한 책 십수 권을 읽어도 이온은 자신과 정확히 같은 증상을 보이는 저주 마법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행간을 읽어 보면 마나 소실에 관한 저주는 금지된 마법 같았다. 마법과 관련한 모든 책은 ‘인간에게는 마나가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으니까.

마나가 없는 인간은, 적어도 책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답답함을 느낄 무렵, 버틀러가 다가와 이온의 어깨에 재킷을 얹어 주며 자상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도련님, 공작 각하께서 저택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계속 이곳에 계시면 다른 이들이 경을 칠 수도 있으니 그만 방으로 향하시지요.”

이온이 고개를 들어 버틀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마주하고 나니 이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이온은 천천히 대서재 밖으로 나섰다.

그야, 무언가를 발견하면 오히려 천운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단서도 비치질 않으니 힘이 빠졌다.

답답한 마음에 이온은 카밀루스가 준 마나석 목걸이를 꺼내 손으로 꼭 쥐었다. 단순히 심리적인 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좀 더 안심이 되는 느낌이라 이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어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뱉었다.

혹시 외부에 있는 마나도 운용할 수 있을까?

마나 운용법을 서술한 책들에는 마법을 쓰기 전이라면 단순 마나를 운용하는 것만으로 몸의 여러 안 좋은 징후들을 개선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만약 몸 바깥의 마나도 운용이 가능한 것이라면…….

‘어차피 별다른 선택지도 없는 상황이야.’

곧바로 결심한 이온이 카밀루스의 마나석을 꼭 쥔 채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기초 운용법에서 본 대로 몸 안을 휘도는 기운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누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경고! 경고!]

[플레이어는 ‘마나 소실’ 상태입니다.]

[무리한 마나의 운용으로 리바운드가 일어납니다.]

리바운드?

변화는 그 문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전에 일어났다. 이온은 숨이 컥 막히는 느낌과 함께 몸을 휘청였다.

순식간에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난 몸에서 격한 숨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흡, 헉, 허억……!”

“도련님!”

옆에 선 버틀러가 곧바로 그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몸을 붙들어 왔다.

이어 지극한 어지러움이 몰려오더니, 곧장 코와 입에서 새빨간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근처에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달려와 이온을 흔들기 시작했다.

“도련님, 숨을 크게 쉬세요!”

[플레이어의 몸에 치명적인 이상 징후가 발생합니다.]

[몸의 면역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플레이어의 사망 확률 계산 중…….]

이온은 폭풍처럼 저를 덮쳐드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그야말로 몸의 장기가 뒤집히는 느낌에 헛숨이 들이켜지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한 누군가가 주저 없이 그를 등에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다급한 음성이 뒤섞였다.

“다들 뭘 멍하니 있는 거냐! 당장, 당장 의원을 불러!”

“네, 네!”

얼마 안 가 그중에 크레이거 공작의 목소리도 섞였다.

“이온, 이온! 정신 차리거라!”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이온의 시야 안쪽으로 무정한 텍스트가 흘렀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72%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