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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1)화 (31/317)

그러나 목걸이는 파괴되어 조각이 튀는 것이 아니라 붉은 핏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버니언한테서 보석 하나를 깨 달라며, 단지 카밀루스에게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라는 내용만 들었을 뿐인 아스타틴도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리라고는 부단장도 미처 예상을 못 했던 터였다.

“……마나석?”

이온은 순식간에 액체로 해체되어 땅에 떨어지는 그것을 보면서 헉,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의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경고! 경고!]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의 효과가 해제됩니다.]

[부가되어 있던 ‘충만한 마나’의 강화 효과가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갑작스러운 마나의 소멸로 억눌러 왔던 저주의 기운이 일시적으로 폭증합니다.]

[사망 확률 계산 중…….]

헉, 허억.

숨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심장은 금세라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거세게 두근거렸고, 순식간에 엄청난 현기증이 몰려들었다.

어지럽게 점멸하는 시야.

먹먹해지는 귀.

가쁜 숨밖에는 내뱉지 못하는 입.

누군가 제 몸을 거세게 흔들고 있는데도 이온에게는 둔중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세상에서 그 혼자만 괴리되어 버린 듯이.

쿠쿠궁!

와중에도 선명히 울려 퍼지는 굉음에 이온이 눈꺼풀을 힘겹게 올린 순간, 군화를 신은 여러 사람의 발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시야에 가득 찼다. 그 가운데에서 에렌스트 경만이 이온의 몸을 흔들며 무어라 외치는 중이었다.

표정을 보면 꽤 간절한 것 같은데, 그러나 그가 무엇을 말하든 전부 한 겹 막을 씌운 듯 멀게만 들렸다. 귀까지 닿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이온의 눈앞에 커다란 글자가 지나갔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확률은…….

[92%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생존 확률 8퍼센트.

이온은 제게 실제적인 죽음이 성큼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허억, 허억.

죽음에 가까워지니 고통조차도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단지 숨이 막혀 발생한 발작으로 인해 몸을 뒤트는 자신의 상태만 어렴풋이 느낄 뿐.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크게 벌린 입술 사이로 침이 새어 나오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커억, 컥, 하고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온의 시야가 조금씩 회복될 때마다 눈앞에는 무정한 텍스트가 계속해서 지나갔다.

[생존 확률이 현저히 낮아짐에 따라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주마등이 펼쳐집니다.]

[플레이어가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한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였습니다. (2/3)]

[조건 1: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과 혈육을 제외한 제삼자로부터의 정보 습득 (완료)]

[조건 2: 주마등(사망 확률 90% 이상일 때 발동)의 재생]

[충족하기 전의 조건은 잠금 처리되어 있어 플레이어의 확인이 불가합니다.]

[플레이어가 과거의 기억 중 일부를 되찾습니다.]

죽어 가는 중에 기억을 되찾아 봤자 대체 뭐에 쓰지……?

“이온! 이온!”

그런데 왜 이 와중에도 네 목소리는 선명하게만 들릴까.

이온이 숨을 몰아쉬며 몸을 뒤틀면서도 소리의 근원으로 눈동자를 간신히 굴렸다. 부연 시야 안으로 점점 가까이 뛰어오는 카밀루스가 마치 환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라면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카밀루스도 곧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어 주위의 공기가 열기에 타올랐다.

‘안 돼.’

안 돼, 카밀루스.

그때, 누군가의 검이 다시 일어나 자신에게 달려오려는 카밀루스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그렇게 바닥에 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지는 광경을 끝으로 이온의 정신도 검게 까라졌다.

* * *

[……주마등이 재생 중입니다…….]

두통이 있다는 거짓말을 핑계로 대고 잠시 아버지와 멀어진 이온은 2층의 난간 너머로 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회가 열린 넓은 홀의 한편에서 현악기를 켜는 연주자들과 흐르는 선율을 따라 고상하게 춤을 추는 귀족들, 그리고 각자의 목적에 충실한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호사가들까지. 황후궁에서 주최한 황실 연회는 역시나 성황리였다.

자신 역시 크레이거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교육받고 자라 기꺼이 저들 사이에 끼어 있어야 하건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함이 몰려온 이온이 외따로 떨어져 머리를 식히고 있을 무렵이었다.

홀에서 익숙한 얼굴의 소녀 하나가 꽤 다급한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보여 무슨 일인가 하고 눈으로 좇았다.

그녀는 크레이거 공작가의 가신 중 하나인 리시안 남작의 영애였다. 그리고 제 동생 에밀리의 시녀이기도 했다.

한동안 사람들을 헤치며 연회 홀을 헤매던 남작 영애는 얼마 안 가 위층에 있는 이온과 눈이 맞았다. 이온이 무슨 일 있냐는 의미로 고개를 기울이자 그녀가 홀에서 벗어나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소공작.”

조금 당황한 표정인 그녀를 보고 이온은 느슨했던 몸에 힘을 넣어 허리를 세웠다.

“무슨 일이야?”

“에밀리 아가씨께서 아까부터 안 보이시는데, 혹시 짐작 가는 데가 없으신지 여쭈어봅니다.”

“에밀리가?”

“네, 잠깐 눈을 뗀 사이에 그만……. 죄송합니다.”

남작 영애가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으나 이온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는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보면 에밀리는 되돌아와 있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생이 사라졌다는데 너무 무감하게 반응할 수는 없어 이온이 먼저 홀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며 상황을 물었다.

“얼마나 됐는데?”

남작 영애는 치맛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오며 대답했다.

“15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주 오래 지나지는 않았네.”

금세 사람들 사이로 들어선 이온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지나가던 서번트에게 잔을 내려놓고 연회장을 여유롭게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황궁에 오는 길, 마차에서 에밀리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라버니이, 저기엔 누가 살아?〉

마차의 작은 창에 매달린 에밀리가 밖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묻자 이온이 “어디?” 하고 고개를 기울였었다.

에밀리의 작은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엔 황도 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내황성의 이름 없는 탑이 있었다.

그 탑은 선대 황제 때 친 황성 결계의 거대 마법진 바로 아래에 위치한 것이었다. 황성 밖에 있는 오브라이언의 마탑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그 이름은 따로 붙여진 것이 없는 듯했지만 귀족들은 공공연히 저 탑을 통곡의 탑이란 별칭으로 부르고는 했다. 꽤 많은 오브라이언 황실의 비사가 저곳에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저 탑에서 뛰어내려 죽은 역대 황후만 총 세 명. 셋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현 황제의 첫 번째 황후다. 그녀는 황제의 즉위식이 있었던 해, 그러니까 15년 전에 저곳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녀는 현 황제가 황태자였던 시절부터 줄곧 황태자비로서 그의 옆을 지켰던 황후였으나 황자 한 명 낳지 못하고 그토록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 뒤 황후의 자살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들이 많이 오간들, 실상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지만 황실에서는 황후의 죽음을 애도할 뿐 그 어떤 뒷말이 나오는 것도 쉬쉬하였다.

그리고 이외에 많은 이들이 저곳에서 뛰어내렸고, 그는 굳이 불운한 황후 셋을 포함한 황실 사람들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워낙 높은 건물이라 그런지 황성을 드나드는 사람 중 확실한 죽음을 원하는 이들은 언제나 저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황제의 첫 번째 황후가 목숨을 끊은 이후로, 저곳은 황제의 명에 따라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이 되었다. 왜 그 전에 진작 금지(禁地)로 묶어 두지 않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이온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에밀리의 밀빛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절히 답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아무도 안 살아. 저긴 금지거든.〉

〈금지가 뭐야?〉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야. 황제 폐하께서 저 탑은 너무 위험하니까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어. 어때, 너무 높아서 들어가면 무서울 거 같지?〉

〈으응, 엄청 많이 높아.〉

〈그러니까 에밀리도 저런 곳에 가면 절대 안 돼?〉

아직 많이 어려 순수하고 순진한 에밀리에겐 굳이 저곳이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간, 그리 무서운 곳이라고 말해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이온은 가볍게 으름장만 놓았었다.

그러나 역시 그 정도로는 아이의 호기심을 내려놓게 하지 못했던지, 에밀리는 달리는 마차 안에서 줄곧 창밖의 탑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뒷말은 전혀 못 들은 것 같은 소녀의 모습에 이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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