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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3)화 (33/317)

소년은 지나치게 마른 몸에 몹시 지쳐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분위기를 지닌 아이였다.

이온은 잠시간 아픔도 잊고 그 기이한 아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상대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너, 마탑 소속이야?”

아.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온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 난, 그게, 동생을 찾으러 왔는데.”

“…….”

“여, 여기에 없나, 봐?”

다 말하고 나서야 이온은 제 본래 목적이 에밀리를 찾는 것이었음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지끈거리는 제 발목을 보고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옷 아래의 발목은 잔뜩 부어올랐을 터였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이 상태로는 탑을 내려가는 일조차도 요원해 보였다.

점점 얼굴이 하얘지는 이온을 아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말없이 뒤돌아서는 것이었다.

좀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제게 남은 마지막 동아줄인 아이가 훌쩍 가 버리려고 하자 이온이 당황해 소리쳤다.

“야!”

“…….”

멀어지던 발이 멈칫했다. 그렇지만 녀석이 등을 보인 채 반응을 하지 않자 이온이 계속해서 먼저 입을 놀렸다.

“야, 내 말에 대답은 해 줘야, 윽.”

그러면서 일어나려고 다시금 시도했지만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털썩 주저앉은 이온이 숨을 들이켜며 아픔에 솟아오르려는 눈물을 참고 있으니, 분명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던 아이가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순간 이동 마법인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아이는 한숨짓다가 이온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더니 힘없이 늘어져 있는 이온의 발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이의 입에서 무뚝뚝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다쳤어?”

“뭐? 아, 응…….”

환경이 낯설어서인지 이온은 자꾸만 당황해 말을 더듬게 되었다. 이온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눈살을 살며시 찌푸리더니 이온의 신발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이온의 발목은 예상대로 잔뜩 부어올라 있었다. 경험상 적어도 몇 주는 절뚝거릴 정도의 통증과 염좌 증상이었다.

그것을 본 아이는 입술을 지분거리다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난 당연히 그 사람인 줄 알고…….”

뒷말은 워낙 발음을 뭉개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온이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숨결이 너무 가까워졌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이는 이온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흠칫 놀라 서둘러 몸을 뒤로 물렸다. 그에 이온도 어색하게 손을 제 몸 뒤로 옮겨 바닥을 짚었다.

거리가 벌어진 뒤에야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아이는 어째선지 귀 끝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건가?

‘내가 뭘 했다고.’

이온은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괜한 어색함에 이번엔 제가 눈을 피했다. 그런데 뒤늦게야 아이가 머뭇머뭇 사과의 말을 입에 올렸다.

“……미안, 하다고.”

“아? 아까 그 공격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알고는 있나 보네.”

처음엔 모르는 척하고 가려고 하기에 양심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그가 미안해한다고 해서 갑자기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별 소용은 없는 일이었다.

고민에 빠진 이온이 입을 삐죽 내밀자 아이가 입술이 하얗게 되도록 깨물더니 이온의 발목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곳에 시선을 내린 이온은 아이에게서 아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의 손목엔 아주 무거워 보이는 검은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사슬 따위에 연결된 건 아니었지만 액세서리로 달고 다닐 만한 물건 역시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옷도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탓이니까 치료해 줄게.”

이온이 가만히 보는 사이 그렇게 말한 아이가 작게 무어라 무어라 스펠을 외웠다. 그러자 부어 있던 이온의 발목이 눈에 띄게 가라앉고, 통증도 가셨다.

눈앞에서 신기한 장면을 목격한 이온이 와, 하고 탄성을 뱉었다.

“회복 마법도 쓸 줄 아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이게 왜 당연하지? 이온의 친구들 대부분은 아직도 마나 운용도 제대로 안 돼서 그것만 줄곧 연습 중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아까의 얼음 화살도 그렇고 회복 마법도 너무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너 혹시 천재야?

그런 질문을 꺼내려는 순간, 아이가 이제 볼일 끝났다는 양 벌떡 일어나 옷을 털었다.

“어쨌든 여긴 나 말곤 아무도 없으니까 빨리 가.”

그러고 아까처럼 훌쩍 뒤돌아가려고 하기에 이온이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너, 누구야? 여기가 폐하께서 지정한 금지라는 건 알아?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빨리 나가야…….”

“…….”

이야기하던 도중 옷소매를 잡으니 아이가 빤한 시선으로 이온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어 이온이 입을 서서히 다물었다.

기묘한 침묵이 흐르고, 잠시 후 다른 질문이 이온의 입 밖으로 나갔다.

“넌, 여기 살아?”

“…….”

“왜?”

이온의 손에 붙잡혔던 옷소매가 스르륵 빠져나갔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온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다른 소리를 했다.

“빨리 나가. 여긴 위험하니까.”

그럼 너한텐 안 위험해?

반문을 할 틈은 없었다. 아이는 위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이온이 그 행동을 말없이 눈으로 좇고 있으니, 시선을 느꼈는지 아이가 잠시 돌아보았다. 왠지 서늘하다고 생각했던 그 눈으로.

그리고 이온은 이번에 눈이 마주쳤을 때, 아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이의 눈은 단지 차갑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 탑의 어둠보다 더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이 탑의 공기보다도 더 탁했다.

이온은 이전에 저런 눈을 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느낌을 알았다. 갑자기 부고가 날아온 고모부의 장례식장에서, 꽃에 둘러싸인 채 관에 누운 그의 시신을 보았을 때 받은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은 그 마음의 이름이 공허라고 했다. 허무라고도 했다.

아직 자신은 잘 알지 못하는 그 감정을, 눈에 품은 아이의 등을 올려다보면서 이온이 물었다.

“네 이름은 뭐야?”

이번에도 무시당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아이는 정말로 답을 내 주지 않았다. 이온은 됐다 싶어 더는 아이의 뒷모습을 따르지 않고 뒤돌아섰다.

“미안, 잘 있어.”

그러고 계단을 내려가려 하는데 조용한 탑 안에 낯선 음성이 울려 퍼졌다.

“카밀루스.”

카밀루스의 얼굴은 이미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온의 시선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진 손목만이 희미하게 잡혔을 뿐이다.

“카밀루스 클로델이야.”

클로델.

황제 폐하와 같은 성씨였다.

이온은 어렸지만 자신이 들은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겁이 나 심장에서마저 덜컥덜컥 소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길로 이온은 도망치듯이 탑을 내려왔다. 그동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켰다.

아무도 모르는 진실, 숨겨야만 하는 사실.

그리고 금지가 된 탑에 사는 아이.

카밀루스, 클로델…….

열어 두었던 문을 꽉 닫고 이온이 탑의 벽을 더듬으며 어둠을 헤쳐 나갔다. 어느새 마법으로 켰던 빛이 효력을 다해 사그라들었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이온은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어찌 되었든 가까스로 아치형 통로까지 갔는데, 문득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누군가의 선명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들키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이온이 얼른 몸을 숨겼다. 다행히 몸이 작은 그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키가 큰 풀들 사이에 쪼그려 앉은 이온은 케이프를 쓴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아이가 했던 질문이 뇌리를 스쳐 갔다.

〈마탑 소속이야?〉

‘위험해.’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는 호기심을 갖지 말라고. 아무에게도 전해서는 안 된다고, 이대로 묻어 두라고.

그래서 이온은 앞뒤 재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한데 에밀리를 찾느라 한 고생이 허무하게도, 동생은 어머니 옆의 의자에 앉아 발목을 흔들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제 에밀리가 아닌 동생을 찾겠다며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는 이온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탑에서 굴러 먼지가 묻은 옷과 자잘하게 남은 상처들을 보며 공작 부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다만 동생도 무사히 돌아왔고, 이온 역시 금지에 다녀왔다는 사실은 들키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 큰 비밀을 알아 버린 이온은 한동안 온통 그날의 기억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매일매일 잠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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