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둥, 둥…….
오브라이언에서 황제의 행차는 늘 북소리를 앞세웠다. 그것은 황제를 태운 마차가 북부에 다다라 마침내 삼면이 빙벽으로 둘러쳐진 아이오딘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얼어붙어서 두드려질까 싶었던 북은 아이오딘의 견고한 성 앞에서도 깊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황제의 행렬이 멀리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성루로 올라와 문을 지키고 있던 카밀루스는 오브라이언의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태운 마차와 그 뒤를 이은 긴 행렬이 성문 앞에서 멈춰 서는 것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아픈 제 아비의 얼굴을 본 것도 아니거늘 벌써부터 카밀루스의 얼굴은 착잡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황제 폐하의 행렬이다. 아이오딘의 성문을 활짝 열고 환대하라.”
“예, 각하.”
둥, 둥…….
성문이 열리고 황제를 위시한 노아 기사단이 성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쩐지 구슬프게 울리는 듯한 북소리에, 카밀루스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성루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아비를 맞이하기 위해 정복을 갖추어 입은 그는 기사들이 혹한을 헤치며 이끌고 온 황제의 마차 앞에서 기꺼이 한쪽 무릎을 꿇고 군신의 예를 갖췄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변경백이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그의 붉은 망토가 바닥에 내려앉은 때에 맞춰 카밀루스를 따르는 기사들 역시 무릎을 꿇으며 뒤에서 복창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마차의 문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대신 황제를 아이오딘까지 호위하여 온 노아 기사단의 단장이 앞으로 나섰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변경백을 뵙습니다. 본인은 노아 기사단의 단장인 칼 나르바에스입니다. 폐하께서 환후가 좋지 않으시니 바로 저택으로 안내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카밀루스는 그에 자세를 펴 몸을 일으켰다. 잠시 보온을 위해 짐승의 털로 뒤덮은 마차를 힐끗한 카밀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그러고 먼저 말에 올라타 천천히 앞서가기 시작하자 노아 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다.
아이오딘으로 황제가 행차한 것은 대가 마흔두 번 거듭되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을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구경거리였다. 저마다 집 밖으로 나와 기웃거리는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카밀루스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황제의 사생아, 카밀루스 클로델.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위치가 되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죽음 직전,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찾아온 황제의 행차는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당신은 나를 증오하는 걸까.
아니면 이 또한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인가.
그렇게 결론이 나지 않는, 나지 않을 그 질문을 거듭하며 겨우 저택에 도착했다. 다그닥다그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일시에 멈추자, 카밀루스가 먼저 말에서 내렸다.
제 기사들이 앞으로 나아가 저택의 정문을 열고 카밀루스가 그 앞으로 가 걸음을 멈춘 뒤 뒤돌아섰다. 그는 여전히 털에 둘러싸인 채 닫혀 있는 마차를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도 강인했던 제 아비의 여윈 모습을 볼 준비를.
기사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 천천히 마차의 털을 거두어 내고, 문으로 다가가 고리를 잡아당기는데 문득 카밀루스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제 몸의 열 배는 넘는 크기의 강인한 몬스터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가 긴장으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드디어 황제의 발부터 마차 밖으로 나왔다.
기사들 여럿의 도움이 없이는 운신조차도 못 하는 늙은 황제.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 카밀루스의 주변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소문에 과장이 섞였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의미가 담긴 탄식이었다.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는 물론이고, 살 하나 없이 가는 뼈가 드러난 목과 누군가 받치고 있음에도 떨리고 있는 팔, 그리고 굽어진 몸까지.
어딜 봐도 8년 전 카밀루스가 기억하던 부황의 모습은 없었다.
카밀루스는 잠시 굳어 있다가 그래도 여전히 형형한 황제의 파란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뒤이어 그의 말을 따라 하는 제 기사들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는 사이 저벅저벅, 느릿한 발소리가 제 쪽으로 다가왔다.
얼마 안 가 카밀루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고, 검은 신발의 앞코가 카밀루스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카밀루스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을 때였다. 늙은 황제가 힘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카밀루스의 어깨를 짚었다. 묻는 말에는 나직한 한숨 소리가 배어 있었다.
“잘 지냈더냐…… 아이야.”
“…….”
그런 부황을 올려다보면서 카밀루스는 8년 전, 그의 앞에서 무릎 꿇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건 네 힘이지, 그렇지 않니?〉
〈……네.〉
어쩔 수 없이, 제 무능을 스스로 고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을.
어린 제 세상을 무너져 내리게 한, 세상에서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 * *
저택에 드는 즉시 황제는 카밀루스의 방 가운데에 있는 침대에 누워야 했다. 그리고 황제의 뜻에 따라 그를 모시고 온 노아 기사단은 물론이고, 카밀루스의 기사들까지 모두 저택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방 안에는 황제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카밀루스는 그런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창문가에 서 있었다.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다행히 잘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카밀루스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돌려 제 아비를 확인했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 이미 한번 충격을 받아서인지, 침대 밖으로 살며시 드러난 가는 손목을 보아도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았다.
“예상하셨던 일 아닙니까. 여기서 제가 죽었으면 아마도 자살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하냐.”
“예, 전 그럴 생각이 없었을 뿐입니다.”
대답하고는 카밀루스가 걸음을 옮겼다. 삐걱, 삐걱. 그의 묵직한 무게에 짓눌린 낡은 목제 바닥이 작게 기우는 소리가 났다.
카밀루스는 몇 걸음 떨어져 늙은 아비의 모습을 살피다가 잠시 후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 침대 밖으로 나와 있던 야윈 손을 잡아 올렸다.
“부황께서는 많이 여위셨습니다.”
목을 보았을 때 짐작했지만 손등도 살이 다 빠져서 뼈만 남아 앙상해졌다. 힘 없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잡고 있으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병을 얻었다…….”
깊은숨과 함께 토해진 말에 카밀루스는 지금 이 모습이 제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던 아비에게는 가장 적절한 최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자도 고쳐 줄 수 없는 병이었나 보죠?”
“아니, 더 살아 봤자 의미가 없으니 치료하지 않겠다고 했다.”
“…….”
황제의 말에서 딱히 후회의 감정은 엿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은 카밀루스는 저도 모르게 황제의 손을 꽉 쥘 뻔했다.
“하루라도 빨리 네 어미의 곁으로 가고 싶었어.”
화가 나서.
카밀루스는 표정을 차갑게 굳힌 채 황제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찌 그런 표정을 짓느냐.”
“제 어미의 이야기가 생소하여 그렇습니다.”
카밀루스는 지금껏 황제로부터 자신의 어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듣지 못했다. 그의 아비는 물어도 대답을 준 적이 없다. 따라서 카밀루스가 들은 이야기라고는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넌 네 어미를 참 닮았다.〉
황제는 그런 말만 간간이 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비의 손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더니 카밀루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보고 싶었다, 아이야. 넌 이 눈을 제외하고…… 코도, 입술도, 이 귀도…… 네 어미의 것을 다 물려받았어.”
뼈밖에 없는 손이 뺨을 스치는 감각이 꽤 소름 끼쳤다.
게다가 보고 싶다는 말의 대상은 제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앞에 둔 이 상황에도 아비는 카밀루스를 봐 주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 있는 카밀루스는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빼닮은 타인에 불과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여기까지 와서…….’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 있을까.
제 혈육을 이리도 잔혹하게 대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원한 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단지 나를 나로 봐 주는 것뿐인데.
얼마든지 이용해도 되는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거울이 아니라 단지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봐 주는 것뿐인데.
그게 당신에게는 이토록 힘든 일인가.
카밀루스는 왜인지 시야 한편을 어지럽히는 뿌연 것을 거두어 내기 위해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를 한 번 꽉 악물었다.
흐트러지려는 숨을 그렇게 진정시킨 카밀루스는 냉정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사랑, 하셨습니까?”
대답은 쉽게 돌아왔다. 너무나도.
“아직도 사랑한다.”
짧은 말이었지만, 카밀루스는 그 한마디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사랑을 했다고요?”
“그래.”
“그럼…….”
순간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올랐다. 카밀루스가 미처 추스르지 못한 감정을 한 번에 쏟아 내 버렸다.
“그럼 저를 왜 이렇게 취급하셨어요! 왜, 왜 날 내쫓지 못해서 안달이 났던 건데? 얌전히 있겠다고 했잖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살겠다고 했잖아!”
숨이 거칠어진 그의 앞에 또다시 심히 간단한 답이 던져졌다.
“네가 싫었다.”
“뭐……라고요?”
반문하는 카밀루스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칼과 같은 언어는 그의 가슴을 난도질하듯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말하지 않았니? 너는 존재 자체가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