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47)화 (47/317)

* * *

[황성을 둘러싼 결계의 억지력으로 인해 마나의 흐름이 제한됩니다. 특정 시점이 지나면 저주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7%입니다.]

이온은 아까부터 제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하려 애썼다. 그러나 조금씩 느껴지는 머리의 지끈거림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게 기분 탓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사망 확률도 야금야금 오르는 중이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8%입니다.]

눈의 깜빡임도 점점 느려졌다. 그런 이온의 상태가 걱정스러운지 크레이거 공작이 계속 예의 주시했다.

장례 다음에 바로 즉위식을 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일이었다. 연달아 큰 행사를 두 개 하다 보니 소요 시간도 그만큼 한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제 아들을 염려하느라 덩달아 집중이 흐트러지는 탓에 크레이거 공작이 이온에게 귀엣말을 했다.

“많이 힘들면 어디 쉴 곳이라도 찾아가거라. 저녁에 치를 연회가 있으니 연회장에 눈길을 피할 만한 장소가 개방돼 있을 게야.”

공작의 말에 이온도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혼자 가는 것이니 조심하고.”

이곳엔 하인과 기사를 대동할 수 없었고, 시종들도 오늘은 귀족으로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

이온도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사람들을 헤치고 홀을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가는 길에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제 사정이 더 급했으므로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회랑에 나갔을 때였다. 그곳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뭔가 싶어 멈칫한 사이 그중 하나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물음표 가득한 시스템창이 떴다.

[????

나이: ??세

직업: 마법사(추정)

특징: 오른쪽 눈은 파랗고 왼쪽 눈은 검다. 얼굴이 마기에 잠식되어 늘 망토를 쓰고 다닌다고 한다.]

“……!”

아주 오래전, 자신을 살펴보러 버니언과 함께 공작 저에 방문했던 마법사였다. 왜 여기서 보는 건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그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레이거 소공작?”

돌아본 곳에는 일면식도 없는 얼굴이 있었다. 이온은 다만 옆의 사람과 똑같이 케이프를 입었기에 마탑 출신임을 짐작할 뿐이었다.

“……누구이기에 날 알아보지?”

[개체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데이터가 없는 것을 보니 이전엔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맞았다. 이온의 경계심 어린 물음에 상대가 가슴 위로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본인은 재니스라고 합니다. 위대한 클로델 황가의 종이자…….”

수식이 길었다. 이온은 자꾸만 두통이 심해져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공작가 자제인 그가 품위 없이 상대가 말하는 도중 뒤돌아설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마탑의 주인입니다.”

“마탑주……?”

그리고 소개가 끝났을 때, 이온은 움찔했다.

[개체의 정보를 저장할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었다.

‘뭐지?’

그렇지만 의문을 드러내기 전에 마탑주가 돌연 이온에게 바짝 다가서더니 얼굴을 빤히 마주 보았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동공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짙은 검은색 눈동자는 왠지 오싹한 구석이 있었다.

그때, 뜬금없이 선택지가 활성화되었다.

[재니스가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1. 수락한다

2. 거절한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본 선택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일을 하는 거야?’

막 이 몸에 들어온 초기에야 갑자기 튜토리얼이 시작된다든지 퀘스트가 쌓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삶이 제법 안정적으로 굴러가서 그런가 게을러졌다고 느꼈었는데…….

어쨌든 좀 예감이 좋지 못한 변화였고, 이온은 낯선 이에게 덥석 이유 없는 호의를 받을 정도의 멍청이도 아니었다.

당연히 선택은 거절이었다.

“아니, 큰일은 아니니 되었습니다.”

[호의나 적의 수치를 파악할 수 없는 개체입니다.]

‘뭐야, 대체?’

의문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당장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있는 유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 먼저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이온은 어쨌든 작위는 없으나 준귀족으로 취급받는 그를 향해 고갯짓으로 인사한 뒤 뒤돌아섰다. 그리고 계속 아픈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서둘러 쉴 곳을 찾아야 할 성싶었다.

이온은 꺾인 복도를 돌면서 재니스라고 했던 이를 힐끗했다. 그랬다가 옆의 오드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무슨 의미지?’

빙그레 미소를 그리는 입가.

왜인지 불길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 * *

크레이거 공작의 말대로 저녁에 연회장으로 쓸 건물로 들어선 이온은 준비로 어수선한 틈을 타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거나 은밀한 장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준비한 방이 그곳에 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온은 그중 적당히 침대가 준비된 방으로 찾아 들어가 거의 쓰러지듯이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안 그래도 햇빛을 자주 보지 않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그는 지긋한 두통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손은 제 살길을 찾아 저절로 목에 있는 마나석으로 향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두통을 가라앉히려 애쓰는데, 제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꾸우우.”

기지개 켜듯 팔을 쭉 펴며 이온의 몸에 눌린 꼬리를 쏙 뺀 그것은 잠시 잊고 있던 욤뇽이였다. 녀석이 상태가 안 좋은 이온의 앞에서 갸웃갸웃하다가 작은 손으로 열을 재듯 이마를 짚었다. 이온이 그 행동을 보고 쿡쿡 웃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꾸욱, 꾸.”

욤뇽이가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리더니 커다란 눈에 애절함을 띠었다. 작은 인형 같은 귀여운 모습에 그는 녀석을 두 팔로 꼭 안아 주었다.

“괜찮아, 이러다 또 나아지겠지. 그보다 이제 네 주인이 왔으니 어떡해? 돌아갈 거야?”

“꾸?”

질문에 욤뇽이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아까 카밀루스 못 봤어?”

다음 질문엔 고개를 팩 돌리고 모르는 척을 하는 모양새를 보니 그냥 외면하고 싶었던 것인가 보다. 하지만 수년간 지켜본 이온은 욤뇽이가 사실 카밀루스를 아주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여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녀석은 그새 훨씬 강해져서 온 것 같더라.”

중얼거리고 나니 방금 보았던 카밀루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못 먹고 못 큰 것처럼 아직도 작기만 한데, 카밀루스는 놀라울 만큼 커졌음은 물론 단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는 제 앞에서 얼굴 붉히던 그 소년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사이 어른이 되었다. 심지어는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존재감을 압도할 정도로 아주 근사한.

그때, 욤뇽이가 목소리와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꾸우우, 꾸!”

이온은 마냥 바라보다가 8년 동안 함께한 내공으로 욤뇽이의 말을 해석해 냈다.

“네 주인은 원래 엄청 강했다고?”

욤뇽이가 목이 빠져라 끄덕끄덕한 뒤 또 열심히 손짓해 댔다. 집중해 보던 이온이 반문했다.

“아주 오래전부터……라기엔 네 주인은 이제 스물넷인데?”

드래곤은 엄청 길게 살지 않나? 그야, 욤뇽이는 아주 어려 보이니 카밀루스보다 나이가 적을지도 모르지만.

“꾸우우.”

그래도오.

다음 말은 대충 그런 뜻이었다. 이온은 픽 웃어 버렸다.

“이제 보니 너도 카밀루스한테 콩깍지가 씌었네.”

“뀨뀨!”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중 가면 결국은 카밀루스 편들 거면서.”

“꾸우…….”

더는 반박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이온은 다시 눈을 감았다. 천근에 짓눌린 듯이 머리가 무지근했다. 누워 있는데도 멀미가 날 것만 같은 느낌에 저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꾸?”

괜찮으냐 묻는 듯한 욤뇽이의 말에 이온은 그저 같이 자자는 의미로 머리를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쉽지만 카밀루스와 다시 만나면 마나석도, 욤뇽이도 돌려줄 것이다.

더는 그의 발목을 붙잡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온의 흐릿해진 초록빛 눈이 서서히 내려앉는 눈꺼풀 아래로 숨었다. 잠시 후 머리를 기웃거리던 욤뇽이도 작게 코골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잡한 하루에 조금의 평화를 찾았을 무렵.

방구석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천천히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전한 형태가 되었을 때, 그림자 밖으로 케이프를 입은 몸체가 빠져나왔다.

잠든 이온과 욤뇽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는 곧 이온의 앞에 몸을 낮췄다. 그 뒤 손을 잡고 몰래 마나를 불어 넣어 주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희미하게 빛이 이는 가운데, 나직한 목소리로 그가 혼잣말을 했다.

“보면 볼수록 기이하구나…….”

처음 봤을 때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번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야 그저 몸이 조금 왜소할 뿐인 평범한 청년으로 자라났지만, 그로서도 이 몸에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의문을 꺼냈다.

“넌, 뭐니?”

그늘진 방 안에서 마리엘이 색이 다른 양쪽 눈으로 이온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영혼의 얼굴이 다른 아이, 이온 크레이거.

카밀루스와는 또 다르게 흥미로운 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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