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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53)화 (53/317)

* * *

방에서 나오기 전 잠시 기회를 얻은 욤뇽이는 이온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만 주인에게 가라는 이온에게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중이었다.

이온은 녀석의 어깨 밑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며,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욤뇽이가 꼬리를 흔들며 끙끙거렸다.

“뀨우우…….”

주인에게 가라고 했을 때 안 그래도 괜히 섭섭했던 이온은 욤뇽이의 애원에 왜인지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꾹 참았다.

“헤어지는 게 그렇게 아쉬워?”

“꾸.”

그러자 욤뇽이가 보석안을 더 예쁘게 눈물로 적셨다.

그럼 그냥 보내지 말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겨우 이런 거에 마음이 약해지면 또 그에게 자꾸 의존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카밀루스한테 가도 영영 못 만나는 건 아닐 거야…….”

“꾸우.”

하지만 내가 없으면 위험할 때도 있잖아?

욤뇽이의 눈빛이 그렇게 묻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온은 그만 녀석에게 나갈 준비를 하게 했다.

“그만 주머니에 들어가.”

이온이 어깨 밑에 넣었던 손을 빼며 말했다. 그러나 욤뇽이는 작은 날개를 바쁘게 파닥거리며 허공에 둥둥 떠 있으면서 입술을 마구 삐죽였다.

“꾸.”

이온은 녀석도 아쉬워서 이러겠거니, 잠시 후면 순순히 주머니에 들어오겠거니 하면서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하지만 욤뇽이는 이온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글썽거리던 눈물을 터뜨렸다.

“뀨이이이…….”

그러고는 팩 돌아서 창문으로 포르르 날아가는 것이었다.

“욤뇽아?!”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돌아서는 녀석을 보고 이온이 놀라 붙잡으려고 했지만, 날개도 작으면서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욤뇽이는 벌써 창문을 열고 포르르 날아가 버린 뒤였다.

“욤뇽아!”

이온은 당황해 서둘러 창문 쪽으로 갔다. 녀석의 꼬리라도 잡겠다며 손을 휘둘렀지만 욤뇽이가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그 뒤 이온을 한 번 노려본 녀석이 어디론가 휙 사라져 버렸다.

때맞춰 시스템이 메시지를 띄웠다.

[화이트 드래곤이 플레이어에게 실망하여 떠나갔습니다. 호의 지수가 떨어집니다.]

[화이트 드래곤이 플레이어에게 옅은 호의를 느낍니다.]

평소 뜨는 메시지는 짙은 호의였는데, 옅은 호의로 바뀌었다. 진짜로 삐친 모양이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욤뇽이의 가출에 이온은 황당해졌다.

“아니…….”

탄식하다가 욤뇽이가 날아간 방향을 확인하던 이온은 난처해졌다. 그 방향 끝에 황성의 이름 없는 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온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따 카밀루스에게 알려 줘서 찾아가게 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찾으러 가야 할 성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만 나가야 할 때였다. 어느새 하늘 한편에 노을이 깔리면서 연회장 안에도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레이디들과 귀부인들도 입장했을 것이고, 어쩌면 연회의 주인공인 버니언도 왔을지 모른다.

그리고 카밀루스 역시, 지금은 자리하고 있을지도.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창문을 닫은 이온은 방문을 열고 2층의 회랑으로 나갔다. 그러자 살살 고막을 자극하던 현악기의 소리가 짙어졌다.

이온은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방문 앞에 진 기둥 그림자에 숨어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가 항상 부어 있는 좁은 목구멍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작게 기침을 했다.

“연약하기는…….”

몇 년을 이 몸으로 살았지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크레이거 공작가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저주 때문에 오늘내일하며 아픈 자신에게 진정으로 춤 신청을 받고 싶어 하는 레이디는 한 명도 없을 터였다.

청혼서가 아예 안 들어오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결혼 시장에서 이온은 그렇게 선호되는 매물이 아니다. 이쪽은 어차피 일찍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동생인 에밀리의 부군이 되어 공작가를 물려받고 싶어 하는 치들이 더 많은 편이었다.

솔직히 자신을 그렇게 곧 죽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막 사교계를 돌아다닐 당시에는 약점도 되었다. 심지어는 상처를 받아 위축되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문의 일을 완전히 물려받은 이후로는 콩고물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며 곁을 얼쩡거리는 인간들이 꽤 많았다.

‘오늘도 적당히…….’

버티다가 가면 된다.

이온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난간을 잡으며 계단 쪽으로 향하자 이쪽으로 몇몇이 시선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구석에 서서 1층의 홀에서 즐겁게 시를 낭독하는 귀부인을 바라보고 있던 크레이거 공작도 이온을 발견했다. 그러자 공작의 옆에 어색하게 서 있던 에밀리가 공작의 눈짓에 계단을 올라와 이온의 옆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에 데뷔탕트를 치른 에밀리는 붙잡았던 치마를 놓고 이온의 손을 잡았다.

“오라버니, 쉬고 나온 거야?”

“아, 어, 에밀리. 언제 왔어? 어머니도 왔니?”

질문에 에밀리가 눈짓으로 공작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공작 부인을 눈짓했다. 왜 못 봤는지 모르겠다. 발견한 이온이 고개를 끄덕이니 하얀 장갑을 낀 에밀리의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아 왔다.

이온은 손을 마주 잡으며 1층을 둘러보았다.

“새 황제는 아직도인가?”

“응, 그래서 방금 도착한 부인들끼리 서로 시 낭독을 하던걸. 내 차례는 안 왔으면 좋겠다.”

“하하.”

시 같은 건 고루하다고 덧붙이는 에밀리의 말에 이온은 잠깐 웃었다. 그런데 막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을 때였다.

에밀리가 잡은 손에 힘을 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온은 뭔가 싶어 에밀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멈칫했다.

방금 막 연회장의 홀로 들어선 인물로 인해 1층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어머나.”

누군가의 그 작은 감탄사가 시작이었다.

“비렌시움 대공이 저분이신 거예요?”

“저도 얼굴은 처음 보는걸요…….”

“폐하와는 정말 안 닮으셨어요.”

사교계에는 물론이고, 애초에 8년 전 황도를 떠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카밀루스였다.

저보다 나이 많은 부관을 데리고 전희를 즐기고 있는 연회의 홀로 발을 들인 카밀루스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아 버렸다.

연회장에 있는 누구보다도 키가 커 눈에 띄는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유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비치는, 생각보다 더 근사한 모습에 몇몇 레이디들은 놀란 모양이었다.

그건 에밀리도 마찬가지였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뭐야, 잘생겼잖아……?”

그를 발견하고 잠시 넋이 빠져 있던 이온은 그 직접적인 표현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 괴물처럼 생기기라도 했는 줄 알았어?”

“아니, 하지만 북부에서 그 무서운 몬스터들을 다 썰고 다닌다길래 훨씬 우락부락할 줄 알았지? 게다가 같은 핏줄인데 지금 폐하는…… 성질 더럽게 생겼잖아…….”

에밀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계속 가만히 서 있기는 애매해서, 이온은 어느새 걸음을 멈춘 에밀리를 재촉했다.

“어서 내려가자.”

그렇게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가며 이온은 카밀루스를 지켜보았다. 벌써부터 그에게 다가가려는 이들의 면면이 보였다.

대관식 때 보여 준 그의 가늠할 수 없는 강함은 아마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일으켰을 테지만, 또한 호기심도 불러왔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에게 위험한 야망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버니언의 치세를 불안해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카밀루스는 엉겨 오려는 그들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이 눈길도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연신 시선을 돌렸다.

옆의 부관이 그런 그의 태도에 난처해하는 듯했지만, 이온은 카밀루스를 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뭘 찾는 건가?’

그러다가 이온이 무심코 나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

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쳤다.

그 순간, 썩 건조해 보였던 카밀루스의 눈에 어떠한 감정이 돌기 시작하더니 부드럽게 휘었다.

더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이미 다른 곳에서도 두 번이나 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온은 제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전보다 심장이 확연히 더 빨리 뛰었다. 왜인지 현기증이 일 것만 같은 느낌에, 이온은 에밀리의 손을 꽉 잡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라버니?”

에밀리의 예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아 왔지만 이온은 듣지 못했다. 대신 저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비렌시움 대공, 카밀루스 클로델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모두의 시선을 뒤로한 채 2층의 층계를 올랐고, 한 계단 밑에서 신분이 더 높은 자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이온에게 재회의 인사를 했다.

카밀루스가 살며시 허리가 굽히며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크레이거가의 소공작,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에 당황한 에밀리가 이온을 돌아보았다. 이온이 굳어 있는 사이 카밀루스가 오른손을 내밀며 청했다.

“제가 소공작을 부축해도 괜찮겠습니까?”

그가 앞에 나타나자 요즘 부쩍 게을러진 시스템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나이 : 24세

직업 : 대공, 대마법사

특이 사항 : 전 황제의 사생아. 마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상태 이상: 호의]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이 플레이어에게 극도의 호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이 당신에게 부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1. 에밀리 리아나 크레이거를 밀어내고 손을 잡는다

2. 대공의 신분으로 이러면 안 된다고 거절한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본 선택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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