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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59)화 (59/317)

아마 이런 생각은 이온만이 아니라 에렌스트 경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태연히 이온을 부축해 마차에 올라타게 하며 에렌스트 경에게 당부했다.

“황성 결계는 마나의 흐름을 억제하는 결계이기 때문에 소공작은 이곳에 오래 머물면 힘들어할 거다. 그러니 앞으론 이렇게 긴 시간 끌지 않도록 유의해.”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으며 카밀루스가 제 겉옷의 단추를 풀더니 옷을 이온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데 웬 호들갑인가 싶었던 이온이 곧장 그것을 거두어 내려고 했다.

“안 추운…….”

그러나 거절의 말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카밀루스가 그의 손을 지그시 누르며 속삭였다.

“내일 옷 찾으러 갈게.”

그 뒤 이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카밀루스가 먼저 문을 밀었다. 완전히 닫히기 전에 틈 사이로 그의 다정한 작별 인사가 들려왔다.

“조심히 돌아가, 이온.”

“…….”

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 가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뭔가 얼렁뚱땅이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온은 마차의 벽에 기대었다.

“꾸.”

혼자가 된 것을 알고 답답한 주머니에서 기어 나온 욤뇽이가 안아 달라고 칭얼대기에 이온은 녀석을 품에 들였다.

그러고 두꺼운 옷감으로 만든 카밀루스의 옷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양 뺨을 발그레 물들였다.

‘완전히 말렸어.’

이온은 옷에서 풍기는 옅은 체향을 맡으며 왜인지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오늘 내내 카밀루스가 보여 주었던 다정한 태도 그대로, 부드러운 향기였다.

그것을 느끼며 이온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좋아하는 건가, 나도?’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헷갈렸다.

그를 보면 은근히 설레는 이 마음이, 자신의 감정인지 아닌지.

하지만 오랫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 마음을 언제까지 이렇게 미상의 상태로 놔두어야만 하는지 이온 역시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거부하지도 못하면서.’

결국은 카밀루스를 보기만 하면 흔들리는 마음이다.

갈대처럼, 속수무책으로.

이온은 품 안의 욤뇽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나 진짜 우유부단하다, 그렇지?”

그러자 욤뇽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꾸?”

그 행동의 의미를 해석한 이온이 눈썹을 실그러뜨렸다.

“안 그런 적이 없다고? 아니거든……?”

혼날 것 같자 욤뇽이가 얼른 얼굴을 이온의 목덜미에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이온은 그런 녀석의 미끈한 등을 쓰다듬으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귀여운 건 알아서는…….”

* * *

마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가 보다. 마차가 흔들리는데도 푹 잠들어 버렸던 이온은 마차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소공작, 도련님.”

에렌스트 경의 목소리였다. 이온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욤뇽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창문을 잠시 열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허락이 떨어지자 에렌스트 경이 이온이 앉아 있던 쪽의 창문을 살며시 열었다. 마차와 속도를 맞춰 말을 달리며 그가 작게 이야기해 왔다.

“누가 쫓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온은 갑자기 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누가?”

“죄송합니다, 그건 저도 잘……. 사실 미행도 방금 알아챘습니다.”

이온은 창문 사이로 비치는 풍경으로 위치를 추측했다. 이미 마차가 꽤 달려온 다음이었고, 다행히 공작 저에 거의 도착해 가고 있었다.

이런 시내에서 미행이라니.

게다가 에렌스트 경이 이제야 눈치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이라는 뜻이었다.

“딱히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데…… 아스타틴일 확률도 있을까?”

최근 아스타틴이 자신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는 소문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온의 질문에 에렌스트 경은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가 마법사이긴 한 것 같습니다만, 그라면 굳이 미행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확실히 아스타틴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노아기사단을 이끌고 와 앞에서 덮치는 거라면 몰라도, 미행을 하진 않을 것 같아 보이긴 했다. 황실 소속인 그는 어딘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다.

‘아니면 카밀루스를 쫓는 사람이라거나.’

그렇지만 겨우 오늘 황도에 도착한 그를 위해하려 굳이 이쪽을 칠 사람이 있을까.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온은 판단을 보류했다.

“일단 모르는 척 계속 가. 보는 눈이 많으니 바로 달려들진 않을 거야. 그리고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황성 앞으로 호위 인원을 더 보내. 날 제외하고는 다들 아직 연회장에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뒤 창문을 밀어 닫았다.

‘누구지?’

마법을 사용한다고? 그리고 에렌스트 경이 여태껏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능력이 있는 자…….

“꾸우.”

“왜?”

에렌스트 경의 눈을 피해 이온의 옆에 쏙 숨어 있었다가 슬쩍 고개를 든 욤뇽이를 이온이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욤뇽이가 안절부절못하며 손으로 마차의 의자를 긁다가 끄응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오색 영롱한 구슬을 입에서 토해 냈다.

작은 입에서 꺼내진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자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화이트 드래곤으로부터 ‘투영의 구슬’을 습득했습니다.]

아주 예전에 기억의 구슬을 토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구슬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뭘 보여 주고 싶은 거야?”

이온이 묻자 욤뇽이가 그곳에 두 손을 가져다 댄 뒤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투영의 구슬이 한차례 빛나더니 그 이름에 걸맞게 이온이 타고 있는 마차 밖의 상황을 보여 주었다.

달리고 있는 마차의 주변으로 따라오고 있는 에렌스트 경을 비롯한 몇몇 기사들이 보였다. 기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에렌스트 경의 말과 달리 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이온이 그에 살며시 미간을 좁히자 욤뇽이가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꾸우.”

“거기는 왜…….”

한참을 보고 나서야 이온은 에렌스트 경이 왜 상대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는지 알아챘다.

따라오고 있는 것은 작은 새였다. 마법사들이 으레 부리는 감시용 새 말이다. 마치 카밀루스의 독수리처럼.

“위험한 것 같아?”

이온의 물음에 욤뇽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마법사 본인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당장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온은 욤뇽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알았어, 조심할게. 고마워.”

“꾸우…….”

울보인 욤뇽이가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을 보며 이온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카밀루스는 못 불러.”

계약에 의하면 자신이 실신하면 강제 소환되긴 하는 것 같은데.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18%입니다.]

그러기엔 몸이 꽤 멀쩡한 편이었다. 그를 불러내려고 일부러 실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말이다.

“괜찮아, 곧 집에 도착하니까. 대신 지금 창문을 살짝 열어 줄 테니 욤뇽이가 날아가서 저 녀석 쫓아 줄 수 있겠어?”

“꾸, 꾸!”

이온의 말에 욤뇽이가 두 손을 주먹 쥐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좋아.”

이온은 다시 마차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욤뇽이가 재빨리 밖으로 넘어가 훌쩍 날아갔다.

찰나였는데,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 에렌스트 경이 곧바로 반응해 창문 옆으로 다가왔다.

“소공작, 방금 창문에서 뭐가 날아갔는데…….”

다행히 눈썰미 좋은 에렌스트 경도 바로 알아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욤뇽이가 날개가 작은 것치고는 빨라서 다행이었다.

이온은 재빨리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렇게 욤뇽이가 날아간 방향을 보려는 상대의 시선을 끌어당기고는 변명을 입에 올렸다.

“아, 마차 안에 낙엽이 들어와 있어서 날려 보냈어.”

“낙엽요?”

에렌스트 경은 방금 제가 봤던 것이 낙엽이 맞는 건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으나, 이온은 재빨리 그의 생각을 무마시키려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근 시일 내에 버니언, 아니 황제가 또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 큽…… 쿨럭.”

말하다가 찬 공기를 잘못 들이켜 이번엔 진짜 기침이 나왔다. 연기를 하다 보면 이놈의 몸은 만날 실제로 아파 했다.

그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하고 있으니, 완전히 이쪽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에렌스트 경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넘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이온은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을 삼켰다. 숨통이 조금 트인 뒤에야 그가 에렌스트 경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그보다…… 그러니까 혹시 황실에서 편지가 오거나 하면 아버지가 먼저 보시지 못하게 나한테 먼저 가져오라고.”

이온의 말에 에렌스트 경의 표정이 금세 심각해졌다.

“연회장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그게 문제야. 연회장에서 얼굴도 안 비치고 나온 거거든.”

에렌스트 경이 아, 하고 탄식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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