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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63)화 (6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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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옷은 얻다 버리고 오신 겁니까?”

버니언이 수도에 있는 동안 머물 곳을 지정해 주긴 했지만 거절하고 온 카밀루스는 오래전 자신이 살던 집으로 향해 왔다.

어리고 작은 소년이었던 자신이 키 큰 청년이 되어 온 만큼, 집 역시 많은 부분이 변해 있었다.

방치되어 있던 탓에 집 주변의 잔디는 무성해져 종아리까지 올라왔고, 관리가 안 된 저택의 외벽엔 푸른 이끼가 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녀의 집이냐고 놀리는 소리를 하는 페드로와 자신의 기사들을 이끌고 저택 안으로 들어선 카밀루스는 방 하나하나를 다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달칵, 달칵.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2층에 있는 카밀루스에게 1층의 누군가가 외쳤다.

“각하, 여기 방도 별 이상은 없습니다.”

“대신 곰팡이가 잔뜩 끼었네요!”

그러면서 어떤 인간은 주방은 도무지 못 쓸 거 같다고 외쳤다.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집의 상태에 기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문이 안 열려서 못 들어가는 방은 없었다.

카밀루스는 이전에 침실로 쓰던 방으로 들어와 더러워진 창문의 틈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방금 전 페드로의 옷을 어디다 버렸냐는 빈정거림을 듣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페드로의 표정은 그야말로 썩어 있었다. 어제 연회장에서 버니언한테 꽤 시달린 모양인지 안 그래도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의 마스크인데, 조금 더 늙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겉옷이 없어 하얀 드레스 셔츠만 입은 카밀루스는 자신의 상체를 내려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제 첫사랑을 만났는데 추워 보이길래 걸쳐 줬어. 오늘 찾으러 가야지.”

“갑자기 첫사랑이요? 어제 크레이거가의 영식과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카밀루스는 굳이 말해 주지는 않았다. 대신 입꼬리를 올려 웃은 그는 가구 위에 잔뜩 쌓인 먼지를 검지로 찍어 보았다가 입바람을 불어 날려 보냈다. 그러고 위를 올려다보니 거미줄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가운데에 화려한 색의 커다란 거미가 걸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카밀루스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쳐다보던 페드로가 손가락 하나 크기의 커다란 거미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런 집에서 대체 어떻게 사시려고요? 차라리 따로 집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귀족가에 손님으로 머무는 편이 나으실 겁니다.”

그러나 카밀루스는 집을 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땅을 하나 얻어서 집을 새로 지을 생각이었다. 북부에서처럼 자신의 집에 모두 모여 축제를 벌일 만큼 넓은 부지를 황도에서 얻기는 어려울 테지만, 적어도 자신의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면 했다.

속내를 숨긴 카밀루스는 페드로에게 핀잔을 두었다.

“속 편한 소리 하지 마. 황제가 그걸 가만히 놔두겠어? 괜히 도와준 사람한테 불똥만 튈 일이지.”

“어제 보니까 크레이거가의 영식이랑 구면이신 것 같던데, 그쪽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크레이거 공작가면 황제도 함부로 건드리진 못할 텐데요.”

페드로의 말에 바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러워진 창문을 열어 보던 카밀루스의 손이 멈칫했다.

“……영식은 몰라도 공작은 날 안 좋아할 거다.”

사실 자신이 북부에 있는 동안 들려온 여러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이온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어쨌든 그는 이제 소공작으로, 현재의 크레이거 공작이 세상을 떠나면 공작가를 이어 갈 후계자였다. 그런 위치의 그가 자신을 아무 생각 없이 대할 리는 없었다.

다만 이온이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카밀루스는 충분히 휘둘려 줄 의향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한데 살며시 어두워진 카밀루스의 미묘한 낯빛을 무어라 해석한 건지 페드로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황도에 와서 신이 났는데, 대공께서는 그렇지만은 않으신 모양입니다.”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니까. 뭐, 당장 황제가 내 목을 따러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야.”

“설마 실패할 암살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그냥 정치적으로 처리하려고 할 테니 밤잠은 편하게 주무세요.”

“그래, 그럴 예정이다.”

몇 마디 시시한 얘기를 나눈 뒤 카밀루스는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었는지 얼마 안 가 그의 조수인 검독수리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팔을 내밀자 활공하던 녀석이 내려와 앉았다.

페드로는 거의 매일같이 카밀루스의 독수리를 보는 입장이지만, 아무래도 맹금류인 터라 볼 때마다 긴장하게 됐다. 그가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을 힐끗 확인한 카밀루스가 왜인지 오늘따라 불룩한 독수리의 배 부근을 쓰다듬으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대체 뭘 먹고 왔지, 응?”

그러자 독수리가 목 울음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이온의 감시자.」

생소한 말에 카밀루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감시자?”

「조그만 까마귀 새끼였어.」

갑자기 이온한테 감시자가 붙어 있다고?

이온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카밀루스는 어금니를 물었다.

새를 감시자로 붙이고 있다면 마법사일 텐데,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이온을 건드리려 하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포식자 때문에 증거가 하나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 카밀루스가 이를 갈았다.

“이 멍청한 조류가……. 그렇다고 그걸 처먹어?”

「하지만 몇 번을 위협해도 계속 제자리에 돌아오잖아! 자꾸 마주치다가 내 정체가 들키면 어떡해?」

넌 안 그래도 덩치가 커서 곧 들킬 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카밀루스는 참았다. 아무리 다 알게 된다고 해도 늦게 알려지는 편이 낫기는 하니까.

“그럼 한 마리뿐이었어?”

「내가 보기에는…….」

자신만만하던 독수리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카밀루스는 짜증이 확 일었다. 지금 이 새 새끼가 오랜만에 자기가 사냥한 먹이를 집어 먹느라 신나서 제 할 일을 안 한 게 틀림없었다.

“이온, 지금 어디 있어?”

「아침에 어디로 나가는 건 봤는데…….」

“그래서 어디 갔냐고 묻는 거잖아.”

독수리가 노란 눈동자를 도르르르르 굴렸다. 딴청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제 물음에 대한 답을 떠올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잠시 후 나온 녀석의 대답을 들으면 아마도 전자였던 같지만.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근데 그…… 옛날에도 데리고 다니던 그 호위 기사 있잖아. 그 녀석이랑도 같이 나갔어.」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지만, 결론은 어디로 갔는지 방향도 모른다는 거였다.

에렌스트 경과 함께 갔다면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카밀루스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온의 곁에 자신이 모르는 위협이 있다는 건 한시도 참지 못했다.

“이온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 어서!”

「아, 알았어.」

팔에 앉았던 독수리가 날아가자마자 카밀루스가 뒤돌아섰다. 페드로가 방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뒤를 얼른 따라붙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잠깐 나갔다 와야겠어. 집 정리는 나중에 고용인들을 들인 다음에 해도 되니 일단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오늘은 휴가다.”

방금 전까지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돌연 휴가를 선언하자 페드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수년간 카밀루스를 보좌해 온 그가 말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불안해진 그가 1층으로 서둘러 내려가는 카밀루스를 졸졸 따라가며 얘기했다.

“갑자기 어딜 가시는데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어느새 저택 문 앞까지 걸어간 카밀루스가 걸음을 우뚝 멈추고 페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날카롭게 일침을 놓았다.

“겉옷 찾아오라며. 데이트 방해할 거야?”

“아니…….”

데이트하러 가는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험악합니까?

페드로는 잔뜩 경직된 카밀루스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더는 기회가 없었다.

눈앞에서 약하게 푸른빛이 일더니, 계속 봐 왔던 것이 마치 환영이었던 것처럼 카밀루스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

“어, 전하께서 어딜 가신 겁니까?”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에 뒤를 돌아본 페드로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어릴 때야 논외로 치고, 북부에서는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늘 침착한 모습만 보였던 카밀루스였다. 제아무리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느긋하게 나가서 전부 제압하고 오던 그였는데…….

그런 그가 어제 대관식에서 난리를 친 것으로도 모자라, 오늘은 초조해하는 표정으로 저렇게 뛰쳐나가다니. 이런 모습을 처음 본 페드로는 당혹스러웠다.

“……대체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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