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습니다.”
대답을 듣고 이온은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꽤 오래 자신의 곁을 지켜 주었던 버틀러였던지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가는 길에 묵념이라도 할 수 있도록 이온이 막 방의 문턱을 넘으려고 했을 터였다. 이상을 감지한 에렌스트 경의 눈이 커졌다.
“도련님!”
이온도 순간적으로 제 옆에 나타난 사람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그 전에 누군가 화악 두 팔로 그를 안으며 그를 뒤로 끌어당겼다.
“……!”
순식간에 몸이 돌려지면서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상대가 이온을 지탱해 준 덕에 겨우 꼴사나운 짓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품에 안긴 것 또한 놀랄 만한 사유로는 충분했다. 이온이 어깨를 떨며 숨을 삼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저 방에 들어가면 안 돼, 이온.”
그제야 덜컥 내려앉을 뻔했던 가슴을 가라앉힌 이온이 저를 안은 팔을 확인했다. 굵은 팔과 커다란 손을 본 순간 이온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밀루스?”
“그래.”
대답하며 카밀루스가 천천히 이온을 제 품에서 떨어뜨렸다. 그러고 이온의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
이온은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진짜로 카밀루스가 여기 있다는 사실에 뒤늦게 움찔했다.
급하게 온 것인지 쌀쌀한 날씨에 겉옷도 없이 하얀색 드레스 셔츠 하나만 걸친 채로 나타난 그는 자신보다 훨씬 작은 이온을 내려다보며 파란 눈에 염려의 빛을 섞었다.
온화해 보이는 얼굴에 살며시 주름을 그은 카밀루스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걸 보면서 이온은 왠지 민망해져 눈을 살며시 피했다.
“음, 카밀루스…… 여긴 갑자기 왜, 어떻게……?”
어설프게 질문을 던지는데, 카밀루스가 몸을 돌리고는 이온을 제 뒤에 두었다. 이유는 에렌스트 경 때문이었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카밀루스의 몸짓은 명백히 다가오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에 인상을 살며시 찌푸린 에렌스트 경이 못마땅해하는 감정을 담아 카밀루스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입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손한 말이 흘러나왔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소공작이 방으로 못 들어오게 막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자연스러운 명령조에 에렌스트 경은 불만스러운 듯했으나 일단 카밀루스에게 길을 터 주었다.
이온은 카밀루스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가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카밀루스는 방금 전 에렌스트 경과 마찬가지로 늙은 버틀러에게서 콧바람이 흘러나오는지 확인하는 듯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방 밖에서 기웃거리면서 물었다.
“……자연사한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집 안의 풍경도 아주 평화로운 데다, 에렌스트 경도 이상을 눈치챘으면 바로 말해 주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노인이 입은 옷의 단추를 풀어 신체를 살피면서 반문했다.
“너를 만나는 날에 우연히 침대 위에서 평화롭게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그야 아주 낮겠지…….
애초에 사람이 고통 없이 자다가 죽을 확률 자체가 높지 않으니까 말이다.
카밀루스의 말에 에렌스트 경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온이 방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손을 잡아당겼다.
왜인지 두 사람 다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것에 이온은 괜히 머쓱해졌다.
‘내가 그렇게 혼자 두기 불안한가.’
남들이 들으면 당연하다고 할 이야기를 속으로 생각하며 이온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완전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 얼마 안 가 카밀루스에게서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건을 충족하면 죽는 저주야.”
“조건이 뭔데?”
“잠이 들면 죽는 저주…….”
사실이라면 독약보다 더한 저주였다.
그런 저주에 걸렸다면, 이는 당연히 자연사가 아니라.
“누군가 작정하고 죽인 거야.”
한마디로 타살이라는 뜻이다.
결론을 내리고 방 밖으로 나오는 카밀루스를 보는데, 이온의 눈앞에 창이 펼쳐졌다.
[상태 이상: 적의]
[누군가 당신에게 적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사망 확률을 계산 중…….]
등골이 오싹해진 이온의 초록빛 눈이 흔들렸다.
아주 예전에, 누군가 적의를 느끼면 자신이 사망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가정을 하긴 했었다. 실제로 살면서 업보가 쌓이는 건지 사망 확률의 평균치가 조금씩 올라가기도 했고.
하지만 눈앞에 대상이 없는데도 적의를 느끼고 있다느니 하는 창이 뜬 적은 물론, 그 때문에 노골적으로 사망할 확률이 조정된 적도 없다.
‘설마 이 일이 □□랑 관련되기라도 한 거야?’
저주를 걸 수 있는 마법사.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
이온의 생각엔 □□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한데 그 순간.
[플레이어가 추측하는 □□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의 정보를 기록하시겠습니까?
1. 예
2. 아니오]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바쁘게 오갔다.
[□□
나이 : ??
직업 : 마법사
특이 사항 : 플레이어에게 저주를 건 사람.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버틀러를 저주를 걸어 죽였다(추정).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다(추정).]
그럼 새를 보낸 것도 □□인가?
생각하자 잠시 후 마지막에 멘트가 추가되었다.
[…….
플레이어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감시용 새를 보냈다(추정).]
[상대방의 정보를 이대로 저장하시겠습니까?
1. 예
2. 아니오
3. 수정한다]
이번에도 예, 하는 생각을 하자 그사이에 사망 확률에 대한 계산을 끝냈는지 수치가 출력되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1%입니다.]
카밀루스와 마법 계약을 체결한 이후 ‘충만한 마나’가 내내 강화 상태였던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였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최종 생존 확률이 2% 감소하였습니다.]
카밀루스를 세 번 만나면서 1% 올랐다고 했던 최종 생존 확률 수치가 도로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심지어 둘의 수치를 합치면 결국 마이너스다. 8년이나 걸려서 이룩한 성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지금 시점에 중요한 건 사실 이런 게 아니었다.
자신은 카밀루스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아내러 온 것뿐인데, 이런 식의 막 전개는 정말이지 곤란하다.
버틀러는 단지 이온이 만나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온은 앞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온은 창가에 누워 있는 늙은 버틀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굳이 죽여서 입을 막아야 할 만큼 그에게 ‘가치’가 있었나? □□에게, 혹은 카밀루스의 어머니가 누군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누군가에게.
이온은 방 밖으로 나와 자신의 앞에 서는 카밀루스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대체 네 어머니는 누구야?’
실제로도 입을 열어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상태 이상: 금어(禁語). 특정 단어 및 문장을 말할 수 없음. ※퀘스트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어머니의 정체 알아내기’ 완료 시 일부 해제됩니다.]
[플레이어가 말할 수 없는 문장입니다.]
‘언제는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한다며?’
이놈의 시스템은 이럴 때만 항상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본의 아니게 물리적으로 말문이 막혀 버린 이온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결국 카밀루스가 먼저 물어 왔다.
“이온, 솔직히 말해 봐. 여긴 왜 온 거야?”
표정이 굳은 걸 보니 그가 생각하기엔 꽤 심각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설마 뭔가 알고 왔나? 내가 뒷조사를 하려고 한 걸 알까?’
반반의 확률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네 어머니에 대해 캐내러 왔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온은 눈을 내리깔고 그답지 않은 변명을 입에 올렸다.
“그게, 저 사람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작년까지 날 돌봐 주던 버틀러야.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 안부 인사도 할 겸 보러 온 건데…… 이렇게 될 줄은…….”
이온은 먼지를 삼킨 것처럼 콜록콜록했다.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에렌스트 경이 장단 맞추듯이 깨끗한 손수건을 그에게 또 내밀었다.
대체 손수건을 몇 개나 가지고 다니는 거냐고 순간적으로 묻고 싶어졌지만, 참고 그것을 받아 든 이온이 입을 가린 채로 카밀루스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카밀루스의 잘생긴 얼굴 위로 동요가 비치는 것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이온은 자신을 보면서 애잔해하는 듯,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면서 조금 당황했다.
‘심지어…… 너는 속았어?’
순간 기침하는 척하느라 잔뜩 긴장된 목구멍으로 침이 잘못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