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루스가 이온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껴 왔다. 꽈악 압박하는 그 손길에 이온은 손가락을 바르르 떨었다. 그동안 입술 사이로 잠식한 카밀루스의 두툼한 혀가 이온의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와 온통 점령해 버렸다.
할짝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민망함에 눈이 질끈 감겼다. 입술에서부터 시작된 떨림과 열기가,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자 숨도 함께 뜨거워졌다.
“하아, 하…….”
이온이 카밀루스가 전하는 농밀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콧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특유의 차분한 체향이 밀려들어 와 몸 안에 확 퍼졌다.
어쩐지 배 안쪽이 땅기는 느낌에 몸을 빼려고 했지만, 카밀루스는 오히려 고개의 각도를 달리하면서 몸을 더 가까이했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 이온의 몸이 푹신한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잡힌 두 손을 지그시 누르며 그의 위로 올라온 카밀루스가 이온의 다리 사이로 제 굵은 허벅지를 밀어 넣으며 압박하자 이온이 순간적으로 버둥거렸으나 카밀루스는 밀려나지 않았다.
스윽, 슥, 하고 옷깃 스치는 소리가 일었다. 그것이 고막을 자극해 오고, 압박감으로 인해 배 아래에서부터 찌릿함이 올라오자 이온은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읏, 으응.”
그렇게 잠시 입술의 틈이 생길 때마다 하아, 하고 깊은 숨소리가 둘 사이에 퍼졌다. 동시에 뜨거운 공기가 주변으로 퍼지자 이온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속눈썹이 긴 눈꺼풀을 연신 떨었다.
마치 몸속이 들끓는 것처럼 뜨거워지며 이온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남들과 손잡는 것마저 별로 해 본 적 없는 이온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쯤은 자각이 되었다.
그 증거로 카밀루스 역시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흥분으로 딱딱해진 몸은 덤이었다.
이온은 이대로면 금세 제 옷도 허술히 파헤쳐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성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이미 그 상황을 준비하는 듯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손을 비틀어 보려고 했지만 카밀루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술을 천천히 옮겨 선이 예쁜 턱에, 작은 귀에 입맞춤을 하며 물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줘?”
“카밀루스, 읏!”
그는 마치 표식이라도 새기는 듯이 귓바퀴를 물었다. 따끔한 감각에 이온이 놀라 흠칫했다. 흥분감으로 인해 약간 눈물이 어린 눈으로 곁눈질하자, 제 몸의 온도와 다르게 조금은 서늘한 카밀루스의 눈이 보였다.
“죄책감에 착각하는 거라고? 내가 널 되찾으려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그런 소리 절대 못 해.”
무슨 뜻이야?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카밀루스가 다시금 돌아와 입술을 훔쳤다. 아까와는 달리 짧은 버드키스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맞부딪치고, 그의 떨림이 예민한 입술을 타고 내려왔을 즈음이었다. 카밀루스가 애절히 속삭여 왔다.
“사랑해, 이온. 난…… 나는 너 절대 못 잃어.”
“…….”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이온의 얼굴을 감싸며 눈을 마주쳤다. 방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그의 간절한 호소가 와닿았다.
“아프지 않게 해 주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내 말 좀 따라 줘. 내가 빌게, 네가 하라고 하면 무릎이라도 꿇을게.”
“카밀루스…….”
혹시 울어?
그런 물음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다소 뜬금없는 메시지가 이온의 시야를 채웠다.
[시스템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비밀……?’
내용도, 타이밍도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원래 눈치 없어야 할 때는 있고, 있어야 할 때는 없는 전형적인 청개구리 타입이었다.
이온의 의아함을 풀어 줄 의사도, 의무도 없는 녀석은 연달아 퀘스트창을 띄웠다.
[시스템의 비밀 파헤치기]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치십시오.]
[본 퀘스트 완료 시 시스템 적용이 종료됩니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요구였다. 자세한 설명이나 힌트 없이 달랑 저게 끝이라니 말이 안 됐다.
원래 이 시스템 퀘스트가 늘 그렇듯 완료 시 얻는 것도 메리트인지 디메리트인지 헷갈린다.
그뿐인가. 지금까지 퀘스트는 보통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상황에서 발동됐는데, 지금은 눈앞의 카밀루스와 키스한 것밖에는 없었다.
‘아니면.’
이 시스템이 적용된 게 카밀루스와 관련이 있다는 걸까.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는데…….
무척이나 당혹스럽지만 이렇게 계속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온은 카밀루스와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억지로나마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
이온의 말에 힘이 빠졌는지 손목을 잡고 있는 카밀루스의 손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그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여전한 터라 이온이 그의 밑에서 빠져나오려 몸을 틀었다.
“그, 자세도 민망하니까 일단 좀 비켜 주고…….”
카밀루스는 꽤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온의 말대로 해 주었다. 먼저 침대 밖으로 나가 이온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작게 고맙다고 속삭인 이온은 카밀루스를 어색하게 마주 보다가 집무실로 넘어갔다. 그 뒤 그곳의 나무 모양 옷걸이에 걸어 둔 두툼한 옷을 가져왔다.
꽤 크고 묵직한 그것을 내밀며, 이온이 상대를 불렀다.
“카밀루스.”
카밀루스가 눈을 마주쳐 오자 이온은 왜인지 자신의 앞에선 늘 조급해지는 그를 달래듯이 말했다.
“내가 너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야. 좋아한다고 해서 꼭 한쪽이 손해를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난 우리가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어.”
“…….”
그게 정답이 맞느냐고 묻는 듯 지그시 바라보는 카밀루스 때문에 이온 역시 말하면서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대체 넌 왜 그렇게 서글퍼하는 걸까.
어떤 연유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온의 돌아오지 않은 기억 속에 혹시 다른 무엇이 있는 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왜 이렇게 초조한 거야? 난 8년 동안 이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잖아.”
카밀루스는 그제야 옷을 받아 펼치고는 어깨에 걸치며 답했다.
“네가 너무 위태로운 짓만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
“무슨 소리야? 밖에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긴데. 귀족가 영식 중에 나보다 더 오래 자는 녀석은 없을걸.”
“…….”
이온의 반박에 카밀루스가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는 양.
물론 거짓말이었고, 카밀루스가 뭘 아는 것처럼 보여서 뜨끔했지만 여기서 말릴 수는 없었다. 이온이 부드럽게 미소까지 띠며 말을 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로 나도 위험 감지는 확실히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내 기사인 알렉도 실력이 출중하고.”
“에렌스트 경과…… 그렇게 친한 건가?”
안심하라고 한 말인데, 에렌스트 경의 애칭을 들은 카밀루스가 말꼬리를 잡았다. 이온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설마 질투해?”
“당연한 거잖아.”
“알렉은 내 기사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카밀루스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이온의 발언을 듣고는 말소리에 한숨을 섞었다.
“넌 안 해도 다른 자식들이 하니까 문제잖아. 그래, 그러고 보니 버니언 그 자식이 청혼했다는 얘기는 또 뭐야?”
“그건 그냥 질 나쁜 장난일 뿐이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 청혼서는 보자마자 찢어 버렸으니까.”
크레이거 공작이 설마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온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더 짜증이 인 카밀루스가 곧장 사납게 이를 갈았다.
“내가 그 새끼 가만 안 둬.”
“우리 둘뿐이라지만 황제 폐하가 되신 분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말해도 돼? 게다가 네 동생이잖아.”
이온이 흥분하지 말라며 한 말에 카밀루스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잘라 말했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같을 뿐이지.”
그것도 부자의 정을 나눈 적 없는 아버지였다. 그쪽을 통해 연결된 다른 형제가 있다고 해서 애틋한 마음이 생길 리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이는 카밀루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명제였다.
“내 중심은 너야, 이온.”
무조건.
〈네 이름은 뭐야?〉
이건 어쩌면 탑에 찾아온 이온이 아무도 불러 주지 않으려 했던 제 이름을 물었을 때부터, 카밀루스가 이온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이야기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