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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73)화 (73/317)

카밀루스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뭔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열어 줘.”

그 말에 페드로가 창문으로 걸어가 열어 주니 커다란 검독수리가 방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푸드덕,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나자 그제야 몸을 일으킨 카밀루스가 팔을 내밀었다.

두 발로 카밀루스의 팔을 꽉 쥐고 앉은 독수리는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끼이이이이…….”

가녀리게 우는 작은 새였다. 참새는 아니지만 참새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의.

맹금류인 독수리의 억센 입에 잡혀 공포에 파르르 떨고 있는 작은 새를 발견한 카밀루스는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입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작은 새를 빼내 주자마자 독수리가 마구 투덜거렸다.

「이번엔 안 처먹고 데려왔어.」

저번에 왜 처먹었냐고 혼냈더니 삐진 모양이다. 새대가리인데 지능은 높아서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았다.

하지만 카밀루스가 별 반응 해 주지 않고 이 작은 새는 뭐냐는 듯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으니, 독수리가 자신의 지능적인 행동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지 잔뜩 신나서 설명을 했다.

「지나가다 비슷한 냄새가 나길래 잡아 왔는데, 어때?」

카밀루스는 독수리에게 낚아채지면서 어딘가 다치기라도 했는지 날갯짓을 제대로 못 하는 아기 새가 괜히 애잔해 살살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이번엔 다른 데에서 데려왔다는 뜻인가?”

그에 독수리가 생각을 하는 듯이 노란 눈을 마구 굴렸다.

「응, 이 녀석은 황제궁 창문 쪽에 앉아 있었어.」

“버니언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아마도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칭찬받을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독수리가 목과 가슴을 두껍게 부풀리면서 구욱, 구욱 울었다.

카밀루스는 녀석의 우쭐거림을 무시하고 손안의 작은 새를 내려다보았다.

이온을 감시하고 있던 새와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럼 버니언이랑 이온을 동시에 감시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인데, 둘의 공통분모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이온부터가 버니언에 대한 벽이 상당한 편이므로.

낮에 버틀러가 죽었던 것도 그렇고, 제가 파악한 흐름 밖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꺼번에 징후가 나타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소행으로 봐야겠지.’

그게 아니라면 한 무리의 소행일 것이다.

카밀루스는 다친 새가 날 수 있는 정도로만 치료해 주고는, 이어 추적 마법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끼이이이이!”

작은 새에게서 째지는 비명이 울리더니 돌연 퍼엉, 커다랗게 터지는 소리가 났다. 놀라 눈을 크게 떴을 때는 이미 새의 형체는 사라지고 깃털만 바닥에 내려앉고 있었다.

「어, 뭐야!」

“…….”

「저번에 나한테 처먹었다고 지랄하더니, 없애 버리면 어떡해?」

독수리가 마구 화를 내는 가운데, 페드로도 카밀루스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뭡니까?”

카밀루스는 순간적으로 제가 놓쳤던 부분을 더듬었다.

“조건 마법이 걸려 있었던 거다. 추적 마법이 걸리면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죽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게.

되짚어 보던 카밀루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낭패군.”

이온을 감시하던 새는 다른 새에게 잡아먹힌 것이니 그렇다 쳐도, 버니언을 감시하던 새는 조건 마법에 의해 죽어 버렸으니 저주를 시전한 이에게 이미 정보가 갔을 것이다. 그럼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상대가 정체 들키는 걸 꺼리고 있으니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파고들려고 하지 않을까.

하면 이쪽도 똑같은 곳을 더 배회해 봤자 소용없다.

카밀루스는 남은 경우의 수가 뭔지 고민하다가 독수리의 목을 쓰다듬었다.

“지금부터는 아스타틴만 감시하도록 해.”

평소 한 번에 말을 듣는 법이 없는 독수리는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 그 아저씨는 마법사던데, 들키면 어떡해?」

“엄살 부리지 말고. 잘할 수 있잖아.”

「밥도 알아서 찾아 먹으라고 하면서…… 부려 먹긴 오지게 부려 먹어요.」

아직 날아갈 준비조차 하지 않고 제 몸의 털을 고르며 투덜투덜하는 독수리였다. 카밀루스는 게으름을 부리는 녀석의 다리를 손으로 밀어내며 딱 한 마디만 내뱉었다.

“가.”

단호한 태도에 그동안 쌓인 서러움이 폭발했는지 독수리가 눈을 세모꼴로 떴다.

「너! 지난 8년간은 나한테 엄동설한만 날아다니게 해 놓고! 네가 빌어먹게 강하지만 않았으면 나 이렇게 안 부려 먹혔어!」

그래 봤자 새인지라, 들리는 소리는 전부 짹짹거리는 것뿐이었다. 카밀루스가 빨리 안 가냐는 듯이 지그시 노려보고 있자 결국 팔에서 떨어져 훌쩍 날아가 버렸다.

녀석이 깃털 몇 가닥 남기면서 사라지자 페드로가 창문을 툭 잠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짹짹대네요.”

카밀루스는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을 바꿔야겠어.”

“갑자기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부관에게 합당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카밀루스는 밖으로 나갔다. 저녁이라 촛불로 붉을 밝혀 둔 복도로 나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다가왔다.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전하.”

카밀루스는 그를 지나쳐 가면서 아까 전 갔던 이온의 방 쪽으로 걸었다.

“방을 좀 바꾸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원하시는 걸 다 들어드리라고 각하께서 명하셨습니다.”

문제없다는 소리였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배정받은 구역 중에서 가장 이온의 방과 가까운 방 앞으로 갔다. 남을 시킬 시간도 아까워 그냥 문을 벌컥 열자 안에 있던 자신의 기사들이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잠을 자려 편한 옷으로 갈아입다가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허겁지겁 옷을 끌어 올렸다.

“뭐, 뭡니까, 각하.”

하필 타이밍이 이렇지.

카밀루스 앞으로 나선 페드로는 고갯짓하며 안쪽의 인원들에게 명했다.

“다 나와, 대공께서 이 방 쓰신단다.”

“에……?”

카밀루스의 충직한 기사들은 또 나오란다고 별다른 반박 없이 금세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간단히 안쪽의 사람들을 내쫓은 페드로는 먼저 들어가서 방 안을 확인한 뒤 카밀루스를 돌아보았다.

“전하께서 아까 쓰시던 방이 더 넓은 거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크기는 상관없어.”

대꾸하며 안으로 들어간 카밀루스는 방 안에 뭐가 있는지는 살피지도 않고 곧장 발코니의 문을 열고 나가 봤다.

배정받은 방 중에서 유일하게 저택의 꼭짓점에 있는 방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발코니가 꺾여 있었다.

카밀루스는 거리가 좀 있기는 해도 이온이 있는 방의 발코니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군.”

그때, 페드로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카밀루스의 옆으로 슬쩍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아무리 대공이라도 숙녀의 방에 갑자기 난입하시려고 하면 쫓겨날 겁니다?”

질 나쁜 농담이었다. 카밀루스가 그런 게 재밌냐는 뜻을 담아 옆의 아저씨를 째려보았다.

“내가 변태인 줄 알아? 미친 게 아닌 이상 숙녀 방을 허락도 안 받고 왜 들어가?”

페드로가 목을 큼큼, 하고 풀며 굳이굳이 제 의견을 피력했다.

“저는 경계하는 의미로 말씀드린 겁니다. 대공께서 혈기 왕성한 20대라 혹시 몰라서요.”

“정신 사나우니까 아저씨도 그만 가서 자.”

더 이상의 간섭은 사양하겠다는 말에 페드로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갔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하인들이 원래 있던 방에서 카밀루스의 짐을 그대로 옮겨 주었다.

긴 하루였음을 증명하듯이, 그들마저 모두 빠져나간 뒤 문이 닫히자 꽤 짙은 적막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카밀루스도 잠시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어깨에 귀찮게 걸친 겉옷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두었다. 그러고 다시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달칵.

어두운 방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자 전면에는 예전에 이온을 데리고 나갔던 뒤편의 숲이 보였다.

저녁이라 다소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자니, 이전의 기억이 귓가에 속살거려졌다.

〈진짜 나 엄청 좋아하는구나?〉

가는 밀빛 머리를 흩날리며 활짝 웃던 소년의, 초록빛 눈동자에 가득 차올랐던 행복감.

잠시라도 볼 수 있어서 기뻤고, 그 모습을 영원히 지켜 주고 싶었다.

“지금도 넌 소중해…….”

그리고 그 소망은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간절했다.

잠시 추억에 빠져 있던 카밀루스는 이내 현실로 빠져나왔다. 냉정한 눈으로 돌아온 그는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렸다.

풀썩, 가볍게 푹신한 잔디 위로 착지했을 때였다. 어깨를 톡 건드리는 것이 있어 흠칫해 돌아보니 욤뇽이가 제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꾸욱.”

카밀루스는 녀석을 보고는 놀라 물었다.

“웬일로 네가 부지런한 척을 해?”

“끄응.”

자세히 보니 녀석이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제 몸보다 좀 작은 약병이었다.

녀석이 가져가라는 듯이 앞으로 내미는 것에 카밀루스가 받아 들어 눈앞으로 가져왔다. 분홍빛의 보글보글 끓고 있는 액체를 보면서 카밀루스가 중얼거렸다.

“독특한 약이네.”

뭐 때문에 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뜨겁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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