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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아작아작…….
옆에서 당근을 열심히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카밀루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찡얼거린 끝에 당근 하나를 얻은 욤뇽이의 입에서 나는 소리였다. 카밀루스는 그렇게 욤뇽이를 얌전히 만든 뒤 탁자 앞에 앉아 샐러드를 깨작거리고 있는 이온을 내내 지켜보았다.
이온은 자신이 남긴 음식들을 챙겨 쫓아온 성의를 봐서 먹고 있긴 했지만 그 눈빛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카밀루스의 입은 꽤 주접스러웠다.
“초식파라는 것도 귀엽다. 야채가 좋아서 먹는 건 맞아? 고기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 같은 거 아니고?”
“…….”
아까부터 인내심 있게 이온은 그를 무시했다. 그러자 카밀루스는 아까 들은 얘기를 꺼내며 자꾸만 그를 찔러 댔다.
“내 뒷조사를 얼마나 많이 했길래 동생도 아는 거지?”
이 질문 나올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안다고 해서 대비가 되는 건 아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이온은 먹고 있는 양상추가 얹혀서 체할 것 같았다.
“많이 안 했어.”
게다가 에밀리가 말했듯이 뒷조사 같은 음습……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소문을 수집한 정도일 뿐.
그렇지만 변명을 해 봤자 구차해지기만 할 것 같아 그렇게 대꾸하자 카밀루스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하긴 했다는 거네? 그래 놓고 지금까지 관심 없는 척 연기했으니 힘들었겠어.”
“연기한 적 없는데.”
“하긴, 나랑 마주 보고만 있어도 정신을 못 차리던데. 안 그래? 대관식 때도 나한테서 눈 못 떼고 있었잖아. 돌아볼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고 했다. 이온은 자기는 안 그런 척하는 카밀루스에게 얼른 반박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아.”
말을 할수록 완전히 제 무덤 파고 들어가는 꼴이었다.
어찌 되었든 방에 들어온 이후로 멈추지 않고 오해와 진실 사이, 그 어디쯤의 서사를 쌓고 있는 카밀루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이온은 쩔쩔맸다.
그 때문에 저절로 이온의 포크질이 멈추자, 카밀루스가 외면받고 있는 베이컨 접시를 들어 올리더니 그것을 포크로 말아 내밀었다.
빨리 먹으라는 듯이 입 앞에 들이대는 것에 이온은 하는 수 없이 작게 입을 벌렸다. 둘밖에, 아니 욤뇽이를 포함해 셋밖에 없는데도 상당히 민망해 얼굴이 다 빨개졌다.
포크가 빠져나가고, 오물대고 있으니 카밀루스가 흐뭇하게 웃으며 이번엔 치즈를 찍어 건넸다. 이온은 머뭇거리다가 또 받아먹었다.
평소 식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카밀루스가 자꾸만 내미는 통에 이제 슬슬 버거워지고 있었다.
카밀루스는 잘 먹는 이온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먹는 것도 예쁘다, 이온. 입이 작아서 새처럼 귀여워. 고기보다 야채 좋아하는 것도 무해해서 귀엽고, 손이 포크보다 작은 것도 귀여워. 그냥 네 모든 게 다 예쁘고 귀여워.”
“욕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예쁜 건 무조건 칭찬이지. 예로부터 미인들이 역사를 바꿔 왔으니까.”
미인이 역사를 바꾼 예시가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 듯하지만, 세부적인 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귀여운 건?”
“귀여움은 원래 세상을 구해.”
대답 참 고민도 안 하고 척척 한다.
아무래도 말을 이어 갈수록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라 이 자리를 서둘러 피하고 싶어졌다.
이온은 배가 불러 예의 ‘제 손보다 큰’ 포크를 그만 내려놓고는 카밀루스에게 툭 물었다.
“너, 아까부터 너무 부담스러워.”
“표현이 부족해 내 마음을 안 알아주나 싶어서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것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
대체 왜 이렇게 능글맞아진 거야?
자신의 앞에서는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 했던 예전의 16살 꼬맹이는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그때, 갑자기 카밀루스의 정보창이 업데이트됐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나이 : 24세
직업 : 대공, 대마법사
특이 사항 : 전 황제의 사생아. 마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플레이어의 저주를 풀어 주려고 하고 있다.
능글맞다(추정).]
이런 쓸모없는 정보는 왜 업데이트되는 거야? 가끔 시스템도 참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온은 그곳에 계속 시선을 빼앗기기보다는 그의 꿈을 지그시 눌러 주는 데 주력했다.
“네가 날 좋아한다고 계속 강조해 봤자 어차피 너랑 난 결혼도 못 해.”
“결혼이 문제인 건가? 그럼 나도 버니언처럼 황제가 돼서 너한테 청혼서를 넣어야겠어.”
“…….”
“그 자식 청혼서에 뭐라고 쓰여 있었지? 똑같이 써서 보낼까 싶은데.”
“순 개소리밖에 안 쓰여 있었어.”
“그럼 기각.”
바로 기각 선언을 하는 그를 보면서 이온은 헛웃음을 쳤다. 그러고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며 핀잔을 두었다.
“나 놀리느라 아주 신났지?”
“아니, 사실 굉장히 기분 나쁜 상태인데.”
칼같이 나온 대답에 이온이 주춤했다. 눈을 마주치자 카밀루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기분 좋을 일이 뭐가 있는데. 어제 낮에는 너 찾으러 갔다가 저주받은 시신을 보고, 저녁에는 너한테 감정을 의심받고, 오늘 아침엔 기절한 널 깨웠어. 좋을 거 같아? 네 앞이니까, 억지로 좋은 척하는 거지.”
안 좋은 일을 나열하는 동안에도 말투가 여유로워서 내용을 제대로 안 들으면 그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헷갈릴 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난 너 하나만 있으면 돼. 그럼 지금처럼 연기해 줄게. 다른 조건도 필요 없어.”
이온은 몸을 펴고 탁자 근처에서 벗어났다. 아무래도 눈을 마주치고는 마음껏 얘기하기 힘들 것 같아, 그는 뒤돌아서 책상 앞으로 걸어가며 얘기했다.
“대공께서 지금 이 크레이거 가문에 와 있는 사실 자체가 나한테 부담스러운 상황인 건 알고 있어?”
“정략적인 이야기 말고, 네 감정에 대해 말해 달라는 거야.”
책상 앞 의자에 털썩 앉은 이온이 카밀루스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앉으니 머리가 깨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그는 쉽게 하고 싶은 말을 뱉을 수 있었다.
“널 좋아할 수 없어.”
카밀루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이온이 숨어 버린 책상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손을 뻗더니 이온이 단정히 맨 크라바트를 쥐고서 확 끌어당겼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카밀루스가 이온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키스는 할 수 있고?”
“…….”
대답이 없는 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카밀루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이더니 천천히 이온의 입술을 머금었다.
윗입술을 살며시 빨았다가, 입술을 벌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버드키스처럼 떨어졌다 다시 머금기를 반복했다. 마치 몇 번이고 이온이 피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몇 번째인지 모를 어느 순간, 그가 천천히 떨어지며 속삭였다.
“연애해 본 적 없다더니 밀당 미치게 하네, 이온 크레이거.”
“그렇게 느껴질 줄은 몰랐어.”
“그게 더 나쁘다. 자각이 없는 게.”
진짜로.
뜨거워진 숨결을 번갈아 내뱉으며 조용히 식히고 있을 무렵,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고 묻기 전에 낮은 음성이 먼저 들려왔다.
“알렉사이 에렌스트입니다.”
카밀루스가 책상에서 조금 떨어졌고, 이온도 에렌스트 경에게 입실을 허락했다.
“들어와.”
에렌스트 경은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또 이온과 같이 있는 카밀루스를 보고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에렌스트 경의 손에 들린 다량의 종이 보고서를 확인하고 일을 할 것 같으니 자리에서 빠질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카밀루스는 그 서류의 맨 위에 있는 편지를 발견하고 마음을 바꿨다.
정확히는, 편지를 봉인한 붉은 실에 찍힌 황실의 인장을 발견하고서.
카밀루스가 그곳에 시선을 한 번 두었다가 에렌스트 경에게 물었다.
“버니언한테서 온 건가?”
에렌스트 경의 답변은 제가 모시는 이온을 향했다.
“오다가 버틀러 몰래 가져온 겁니다. 저번에 공작께 먼저 갈 것 같으면 가로채 오라고 하셨기에.”
이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것부터 읽자.”
카밀루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탁자 앞 소파에 도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대견하게도 알아서 탁자 밑으로 숨은 욤뇽이를 한번 힐끗하고 있는데, 거리가 있는데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이온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이 미친 자식이.”
하지만 이 욕설은 이온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온이 놀라 카밀루스를 바라보자, 카밀루스가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그런 표정이네, 이온. 무슨 내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