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죄가 또 뭐 있는데……?”
“…….”
“응? 알려 줘야 반성을 하지.”
카밀루스는 제 딴엔 간절히 비는 것이었는데, 이온은 그 꼴을 봐도 불만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심지어 대공께서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무릎 꿇고 반성하겠다고 말하는 중인데 왜 이렇게 당하는 느낌이 드는지 몰랐다.
제가 속이 좁은 건지, 아니면 카밀루스가 얼렁뚱땅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 이온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다시 성냥을 꺼내 촛불을 붙이려는데, 카밀루스가 얼른 쫓아와 먼저 마법으로 불을 밝혔다.
그에 노려보니 카밀루스가 채근해 왔다.
“이온, 언제까지 대답 안 해 줘? 설마 나 잠 못 들게 할 셈인가?”
카밀루스가 귀찮게 계속 물어보니 이온은 결국 툭 뱉어 냈다.
“아침에 태양궁에서 버니언이랑 한 내기에 대한 해명을 해야지?”
사실 내용이 아주 거슬려서 카밀루스가 공작 저로 돌아오자마자 버니언과의 내기는 뭐냐고 추궁할 생각이었었다. 그런데 제 저주에 대해서 알아본다면서 그 소동을 일으킨 탓에 기회를 놓쳐도 한참 놓쳤다.
한데 말을 하자마자 카밀루스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거면 나도 할 말이 많은데, 이온.”
“네가 걸릴 건 뭐야?”
“너, 그 새끼한테 왜 먹이를 줘?”
묻는 말에 이온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약간의 해석이 필요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말하는 ‘먹이’라는 게 정확하게 뭘까.
던진 먹이가 둘이었는데.
“버니언 그 자식, 아무리 널 좋아한다고 떠들어 봤자 자기 꼴리는 대로 안 되면 내팽개칠 거란 거 몰라? 근데 거기서 왜 날 거들먹거려서 자극하냔 말이야.”
〈혹시 대공을 질투하십니까?〉
그쪽이었다.
뜬금없이 라치크의 길드장을 잡아 오니 어쩌니 했던 발언은 여전히 미심쩍기는 했지만 이온은 한시름 놓으며 대꾸했다.
“알아. 근데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려면 먹이를 던지는 수밖에 없었어.”
“내가 가겠다고 했잖아. 조금만 참으면 됐어. 그리고 그 녀석이 제일 먹고 싶어 하는 건 어차피 내 목이니까 그런 거나 던져 주면 돼.”
“……이길 자신 있나 봐?”
목을 던져 주겠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카밀루스를 보고 있자니 이온은 저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조금 궁금해졌다.
“당연하지, 그 새끼한텐 뭐든 안 밀려.”
그렇다고 해도 그 내기는 어떤 방법으로 이기려고?
버니언이 자기가 이기면 카밀루스의 목을 치고 이온을 황후로 만들겠다느니 하고 있는데, 카밀루스는 어째선지 꽤 여유 있어 보였다.
그 때문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카밀루스는 이온에게 더 깊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던지 몸을 돌렸다.
그가 이제 완전히 해가 져 어둑해진 풍경이 비치는 창문가로 걸어가 서자, 이온은 그의 뒷모습에 대고 빈정거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속 편하게 네가 황제 해 먹지 그래?”
그러자 카밀루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아쉽게도 내가 사생아라 자격이 없다. 내내 아이오딘에서 몬스터나 잡고 살았으니 세력이랄 것도 마땅치 않아.”
저 말은 사실이라 이온은 반박하지 않았다. 카밀루스는 바지에 손을 꽂아 넣으면서 제 상황을 냉정히 읊었다.
“대공이니, 북부에서의 위명이니 하는 것들은 지금으로서는 다 허상이야. 마법 능력도 내 개인의 능력에 불과해. 그래서 다들 아직은 쉬쉬하고, 무시할 거라는 거 알 텐데.”
낙관론도 비관론도 아니었다. 그것이 비렌시움 대공, 카밀루스의 현주소였다. 선황이 그에게 작위를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곧바로 황도로 와 머물고 있으니 실질적인 무언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보기 좋은 허울만 있을 따름이고, 아직은 빈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온을 돌아보며 가볍게 물었다.
“혹시 버니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전복이라도 꿈꾸고 있어? 그런 거면 적극적으로 임해 보고.”
“아니.”
“그래, 넌 지금까지처럼 네 몸만 잘 간수하면 돼. 무리하지 말고, 뭘 걸지도 말고. 너 하나는, 내가 반드시 지킬 거니까.”
“……입만 살아서는. 나도 내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어.”
핀잔을 두고 나자 문득 시선이 느껴져 이온이 탁자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러자 욤뇽이가 언제 깼는지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소파 위에서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온은 표정을 부드러이 풀며 그쪽으로 몸을 틀고 양손을 펼쳤다.
“욤뇽이 이리 와.”
“꾸!”
욤뇽이가 얼른 소파에서 뛰어내리더니 쪼르르 이온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이온은 방금 일어나서인지 비늘에서 더 윤기가 도는 아기 드래곤을 안아 올렸다.
그 모습을 카밀루스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곧바로 책상 한구석에서 쿠키를 꺼내 입에 물려 주는 이온의 모양새는 이미 충분히 드래곤 보모의 그것이었다.
저 드래곤의 출처가 자신이다 보니 차마 그렇게 잘해 주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서 카밀루스는 괜스레 질문을 던져 방해했다.
“나한테 더 궁금한 거 있지 않아?”
있을 텐데. 없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이온이 욤뇽이한테서 시선을 떼었다. 두 팔로 여전히 꼭 안고 있었지만 일단 이 정도면 주의를 돌리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생각할 시간 필요하다며. 정리 다 됐어?”
“대강…… 하지만 아직 전부 밝혀진 건 아니야.”
“아직도 모르는 부분은 뭐길래?”
“저주의 발동 방법이랑 목적.”
이온은 카밀루스의 말을 속으로 곱씹어 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날 죽이려는 저주는 아닌 걸로 보인다는 뜻이네.”
카밀루스는 이온이 역시 함의를 눈치챌 줄 알았다는 의미를 담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의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
나이 : ??
직업 : 마법사
특이 사항 : 플레이어에게 저주를 건 사람.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버틀러를 저주를 걸어 죽였다(추정).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감시용 새를 보냈다(추정).
플레이어를 죽일 계획은 아니다(추정).]
‘죽도록 아프게 해 놓고 죽일 목적은 아니라니.’
좀 기가 막힌 결론이었다.
‘저주 효과 중에 혹시 안 죽는 옵션도 포함돼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무심코 생각한 순간.
[상태 이상(Hidden): 절대 행운. LUK 수치와 상관없이 생존에 관한 한 플레이어에게 절대 행운이 따릅니다. 심장이 멈추거나 사망 확률이 100%가 되기 전엔 플레이어가 사망하지 않습니다. ※상태 이상 ‘저주’ 해제 시 사라집니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다고 했던가. 완전히 그 격이었다. 이온은 제 앞에 펼쳐진 히든 상태 이상에 할 말을 잃었다.
어쩐지…….
90퍼센트가 넘었을 때 살아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꽤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죽도록 아픈데 죽지 못하는 것이 ‘절대 행운’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이온은 품 안의 욤뇽이를 애착 인형처럼 꼭 끌어안았다.
“들을 준비 됐으니까 무슨 저주인지 말해 줘.”
“네 몸에 약간의 마기가 들어 있어. 마기와 마나는 서로 밀어내는 성질이라는 걸 이용해서 네 온몸에 퍼져 있는 마나를 한곳에 모아 둔 저주야.”
“……내가 몬스터화할 수도 있어?”
불안감을 담아 묻는 말에 카밀루스는 다행히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주 미량이라 신체의 일부만 조금 변형되었을 뿐이야.”
“신체 일부라면…….”
“여기.”
카밀루스가 검지로 스스로의 배를 가리켰다. 배꼽 근처였다. 이온은 괜스레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배 속?”
소화가 안 되는 거야 늘 있는 일인 데다, 사실 몸이 약하면 어디든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니 별로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카밀루스의 다음 말은 이온을 당혹게 하기에 충분했다.
“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야, 이온.”
“……뭘 낳아?”
“아이, 임신할 수 있다고. 전혀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아이? 임신? 두 단어 모두 자신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임신이야 남자이니까 당연히 상상해 본 적 없고, 제 2세 역시 결혼조차 힘든 몸이니 당연히 가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온은 사고 회로가 멈춰 눈을 깜빡이다가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난 남자인데? 그럼 씨는 어디로 받아?”
“씨……?”
“아.”
이온이 입에 올린 의미심장한 한 단어를 반복한 카밀루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이온은 뒤늦게 제가 아주아주 심각한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양 뺨이 화끈해지고 귀가 발갛게 물들었다. 고개가 저절로 숙어졌다.
씨는 어디로 받냐니…….
‘왜 하필 그 질문이 제일 먼저 떠오른 거야?’
이온 크레이거로 살아온 와중 인생 최악의 말실수를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