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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97)화 (97/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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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대단하세요, 전하…….”

오븐에서 노릇노릇해져서는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나온 쿠키들에 에밀리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모양 좋게 어디 하나 주름진 곳 없이 예쁘게 부푼 게, 처음 만들어 본 거라고는 믿기 어려운 솜씨였다.

물론 이상한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아기자기한 쿠키들 사이에 보름달처럼 커다란 게 하나 있었던 것이다.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정도는 못 본 척했다. 다른 쿠키들은 멀쩡하니까.

그녀가 눈을 반짝이고 있자 콧대가 높아진 카밀루스가 기꺼이 그녀의 칭찬을 받아들였다.

“뭐, 이 정도로요.”

아무리 어려운 미션이라도 그는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에밀리는 어차피 자기가 다 가르쳐 준 건데 괜히 칭찬했나 싶어졌지만 이내 웃으며 자신의 쿠키를 오븐에 넣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전하께서 북부에서 몬스터나 잡으러 다니신다는 소문 듣고 회색 곰처럼 생기셨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회색 곰…….”

그 엄청 큰 불곰을 말하는 게 맞겠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카밀루스는 육중한 몸매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그리즐리 베어를 떠올렸다.

‘내가 그런 이미지라고?’

저번에 태후도 비슷한 소리를 했던 거 같긴 했다. 곰인 줄 알았더니 여우라며. 이온 옆에서 조신하게 살고 싶은 카밀루스는 문득 자신이 북부에서 너무 심하게 날뛰었나 싶어졌다.

그러자 단짠단짠의 맛을 잘 아는 에밀리가 이번엔 의자에 앉아 카밀루스를 올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다정하신 분 같아서 다행이에요.”

“칭찬이 유난히 듣기 좋습니다, 크레이거 양.”

카밀루스는 가볍게 받아치면서 앞치마를 풀고는 갓 구워진 쿠키를 준비된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에밀리는 이번엔 정말로 사심 없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곧 자신의 자리를 빠른 속도로 정리한 카밀루스가 에밀리에게 물었다.

“크레이거 양, 테스트가 끝났으면 학생은 이만 올라가 봐도 되겠지요?”

짓궂은 동생에게 꽤 오래 잡혀 있었으니 이제 이온에게 돌아갈 때였다. 에밀리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요. 밖에 나가서 마실 걸 달라고 하면 챙겨 줄 거예요. 오라버니는 체질상 홍차를 못 마시니까 주스나 따뜻한 물을 가져가셔야 해요.”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를 한 뒤 카밀루스는 금세 돌아서려고 했다.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선을 확실히 긋는 그의 태도에 에밀리는 내심 놀랐다. 이온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카밀루스를 알기 때문에.

그래서였을지도 몰랐다. 나가려는 그를 붙잡은 건.

“그런데 전하.”

그라면 제 궁금증에 진지하게 답해 줄 것 같았다.

짧게 부르는 소리에 막 몸을 돌렸던 카밀루스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냉정해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파란 눈동자를 마주한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그게, 저, 이온 오라버니요.”

아까부터 은근히 눈치 보는 게 좀 이상하긴 했던 차라, 카밀루스는 바깥의 기색을 살짝 살폈다가 에밀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같이 들어왔던 에밀리의 하녀에게 물러나라는 눈짓을 하자 그녀는 순순히 밖으로 물러났다.

“이제 편히 말해요.”

그에 에밀리는 조금 주저하면서 물었다.

“오라버니가 혹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나요?”

“…….”

“그게, 이온 오라버니는 가끔 머리 좋은 걸 믿고 몸이 약한 걸 잊어버리거든요. 뭔가 숨기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자신감이 없어 그런 뒷말은 숨겼다.

사실 이런 의심은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온은 제 일을 시시콜콜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그에 대해 알아보기에는 에밀리는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 못했다.

“오늘도 그래요. 갑자기 왜 쓰러진 건지 저는 이유도 알 수 없잖아요. 하지만 대공께서는 뭔가 알고 계신 거죠? 전담 버틀러가 아침에 들어갔더니 이미 대공께서 오라버니를 지켜보고 있었더라는 소리를 하는 걸 들었어요.”

그러나 카밀루스는 묻는 말에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은 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에밀리는 그런 카밀루스의 눈빛에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혹시 대공께서도 저는 이온 오라버니에 대해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카밀루스의 뒷말은 채 이어지지 못하고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끊겼다.

“다만 그런 게 궁금하면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러니, 에밀리?”

“오빠!”

당황해 외치는 에밀리와 달리 카밀루스는 이온이 들어올 줄 알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실컷 자다가 일어났을 텐데도 이온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것을 발견한 카밀루스의 표정이 조금 굳었으나 이온은 태연히 다가와 카밀루스의 앞에 서서 허리를 굽혔다.

“비렌시움 대공을 뵙습니다.”

“몸은 괜찮습니까, 소공작?”

“……제가 잠든 사이에 또 고생하신 흔적이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인사치레를 하면서 이온이 눈만 살짝 들어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카밀루스를 쳐다보았다.

둘 사이에 묘한 정적이 일어나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에밀리가 끼어들어 냉각되려는 분위기를 깼다.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여기 이거 봐.”

에밀리의 말에 이온이 표정을 풀면서 카밀루스의 앞에 놓인 쿠키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갓 구워져 나와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에 이온이 조금 미소 지었다.

“직접 구운 거니?”

새침한 표정의 에밀리는 손가락으로 오븐과 앞의 쿠키 그릇을 순서대로 가리켰다.

“내 건 지금 저기서 구워지고 있고, 여기 담긴 건 대공께서 만든 쿠키들이야.”

에밀리의 말에 카밀루스가 작게 헛기침을 해 이온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칭찬을 바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온은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절 위한 겁니까?”

당연하지?

그런 대꾸를 하기 전에 이번에도 에밀리가 정의의 사도처럼 끼어들어 카밀루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다 해 줬다.

“아니면? 아니면 대공께서 이걸 왜 만들었겠어? 눈치 좀 챙겨 봐!”

“눈치 좀 챙기라니…… 오라버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흥, 그렇게 늙은이처럼 고리타분하니까 그 나이 먹도록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했지. 이번에도 도망가면 난 몰라!”

늘 그렇듯이 남매가 금세 티격태격을 이어 나갈 기세였지만 에밀리의 마지막 말에서 기묘한 뉘앙스를 읽은 카밀루스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라니, 설마 소공작을 저만큼 좋아한 사람이 또 있었습니까, 크레이거 양?”

“어…… 그게.”

이번에는 본인도 의도한 부분이 아니었던지 에밀리가 잠깐 멈칫했다. 오히려 말뜻을 금방 알아차린 이온이 먼저 반응했다.

“있긴 뭐가 있어? 절대 없었는데?”

이에 금방 흐름을 따라잡은 에밀리가 코웃음을 치더니 카밀루스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게, 오라버니가 이렇게 조그마해서는 나름대로 귀엽게 생기긴 했잖아요?”

‘이렇게 조그맣게’라고 말할 때 이온의 표정이 움찔 뒤틀렸지만, 지금만큼은 철저하게 에밀리와 한편인 카밀루스가 서둘러 동조했다.

“뭐, 그건 당연히 인정합니다. 소공작께선 귀엽고 예쁘시죠. 그런데요?”

콩깍지가 대단하네.

카밀루스의 입에서 귀엽고 예쁘다는 표현이 나왔을 때 에밀리는 왠지 속이 거북해지는 느낌이라 주춤했지만, 지금은 오빠를 놀리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갔다

“그래서인지 글쎄, 예전에 평생 병 수발 해 줄 거라면서 지독하게 쫓아다니던 백작가 영애 한 분이 있었다니까요?”

이온을 노리던 사람이 버니언이랑 에렌스트 경 말고도 또 있었다고?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이온이 한숨을 내쉬며 퉁을 두었다.

“에밀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지?”

하지만 그 반응에서 오히려 뭔가 있구나 확신해 버린 카밀루스는 에밀리와의 대화에 적절히 장작을 집어넣었다.

“백작가의 영애면 파티장 같은 곳에서도 소공작과 마주쳤겠군요?”

“그럼요, 심지어 한 번은 춤도 추고 후원에도 나간 적 있었는데…….”

에밀리가 박수까지 한 번 짝 치며 고개를 마구 끄덕끄덕했고, 그녀의 말을 중간에 받은 카밀루스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랠리를 이어 갔다.

“혹시 후원에서 그분과 몰래 키스라도 했습니까, 소공작?”

카밀루스가 눈매를 휘어 웃으며 제 앞에 서 있는 이온을 쳐다보았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 분명한데, 설마 자기가 없는 동안 그런 앙큼한 고양이 짓을 했는지 묻는 그의 눈빛이 꽤 사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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