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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03)화 (103/317)

욤뇽이가 울음을 한번 터트리면 쉽게 안 그친다는 사실을 아는 이온은 곧바로 기겁했다. 그가 서둘러 아기 드래곤의 동그란 등을 열심히 쓸어내렸다. 

“아, 알았어…… 안 물을게. 울지 마! 뚝, 뚜욱.”

“꾸이잉…….”

하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슬퍼하는 건지, 아니면 엄마 아빠의 존재 자체를 몰라서 서러워하는 건지 모를 욤뇽이는 벌써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방금까지 눈꺼풀 근처를 배회하던 잠기운이 확 달아난 이온이 침대 밖으로 나가 걸어다니며 욤뇽이를 둥기둥기 열심히 달랬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이런 거 안 물어볼게. 진짜라니까? 그러니까 뚜욱…….”

하지만 아무리 달래도 이미 터져 버린 눈물샘에서는 계속해서 누액이 흘러넘쳤다. 종내에는 욤뇽이가 훌쩍훌쩍 콧물까지 흘리자 이온이 급히 손수건을 찾았다.

협탁 서랍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낸 이온이 그것으로 코를 닦아 주는데, 이쯤 되니 드래곤 같은 반려 동물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라…….’

이온은 욤뇽이를 어르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야, 이온.〉

그때는 자신의 말실수에 워낙 당황해서 그냥 넘어가 버렸지만, 실은 그럴 일이 아니었다.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일 아니던가.

‘정말 내가 임신할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은 그냥 평범한 남자일 뿐인데…… 저주 때문에 하루 아침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저주를 시전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걸었는지도 궁금하기는 했다.

한데 잠깐 딴생각을 하자 욤뇽이가 또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온은 깜짝 놀라 다시 녀석에게 연신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네가 뭐든 상관없으니까. 응? 그냥 궁금해서 별 의미 없이 물어본 거야.”

“꾸우, 꾸.”

“자, 흥.”

다시 손수건을 코에 대 주니 욤뇽이가 코를 풀었다. 그러고 이온의 가슴에 열 오른 얼굴을 마구 비볐다.

“응, 예쁘다…….”

“뀨우.”

잠시 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욤뇽이를 침대에 내려 둔 이온은 따라오겠다고 칭얼거리는 녀석을 겨우 가라앉힌 뒤 방 밖으로 나갔다. 몸이 끈적해서 간단히 씻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복도로 나가자마자 별관으로 향하려는 그에게 전담 버틀러가 다가왔다. 상대가 손에 들린 것들을 몇 개 건네며 말했다.

“오늘 도련님 앞에 온 편지들입니다.”

“아, 그래.”

낮에 내내 자고 있어서 못 전달한 모양이었다. 버틀러에게서 그것을 받아 든 이온이 봉투만 쭉 훑은 뒤 돌려주었다.

“이따 확인할 테니 내 책상에 가져다 둬.”

“예, 도련님.”

그러고 지나가려는데, 문득 버틀러의 손에 남은 다른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 겉면에 적힌 이름이 심상치 않았다.

아스타틴 딜런

노아기사단의 부단장 이름이었다.

이온이 재빨리 제 방에 들어가려는 버틀러를 붙잡았다.

“잠깐, 그 편지는 누구 앞으로 온 거지?”

이 집안 사람들과 딱히 연관점이 없는 인물이라 물은 거였다. 버틀러의 입에서는 예상대로의 답변이 나왔다.

“대공 전하 앞입니다.”

“…….”

대답을 들은 이온은 당장 봉투를 빼앗아 뜯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꾹 참았다. 카밀루스와 친한 것과는 별개로 대공인 그에게 그런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아스타틴이 카밀루스에게 왜……?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카밀루스?’

* * *

〈너한테 선황 폐하는 어떤 의미야?〉

자꾸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탓에 카밀루스의 시선이 계속해서 책 밖으로 벗어났다.

새벽에 어디론가 다녀온 이온에게 심경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주워들은 건 틀림없는데.’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너른 황궁 도서관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카밀루스가 요청한 책들을 안고 돌아온 페드로가 책상 위에 그것들을 쿵 내려놓았다.

그에 놀라 올려다보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카밀루스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페드로가 한마디 했다.

“고민 있으십니까? 도통 집중을 못 하시네요.”

“책 고마워.”

카밀루스가 적당히 대꾸하자 옆에 털썩 앉은 페드로가 역시나 핀잔을 두었다.

“인사치레라지만 너무 대강이시고.”

자기한테 뭘 숨기냐는 빈정거림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챈 카밀루스가 결국 손짓으로 그를 가까이 오게 했다.

페드로가 몸을 기울이자 카밀루스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황성의 하인들을 눈으로 훑다가 마치 작당 모의를 하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온이 오늘 갑자기 선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뭐 때문에 그랬는지 짐작이 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요.”

곧바로 돌아온 대꾸에 카밀루스는 짜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이 아저씨는 그냥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지, 진지하게 대답해 줄 의향이 없었던 거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빈정댄 건지.

카밀루스는 한숨을 내쉬며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나도 그냥 머릿속에서 정리할 겸 물어본 건데 아직도 뭔지 모르겠네.”

그보다 아직 황도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소리를, 자신의 기사들이 아닌 제삼자에게서 들으려면 일부러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다.

‘이온이 내 뒤를 캐고 있나?’

잠시만 눈 떼면 늘 뭔가를 하고 있는 이온이니, 자신이 흐름을 놓친 사이 꽤 멀리 가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로 그런 거면 이런 도서관에 앉아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터였다. 카밀루스는 상념들을 억누르며 펼쳐 둔 책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로제니아가 황태자비 시절에 몸이 안 좋아져 요양을 갔을 때의 이야기였다. 선선대 황제의 서기관은 이전의 서기와 다르게 문체가 좀 건조했기에, 읽기는 편했다.

며칠간 황태자비가 크게 앓고 있다는 소식에, 깊은 저녁에 황태자궁을 찾은 황제께서 황태자비의 요양을 허했다.

이에 따라 황태자비는 여장을 꾸리고 이틀 뒤 시종들을 이끌고 남부에 있는 도시에 가 긴 요양을 취하기로 하였다.

처음 요양을 하기로 계획한 기간은 대략 1년. 하지만 로제니아는 선황이 황위에 오르기까지 1년 반 가까이 남부의 도시에 머물며 몸을 추슬렀다.

당시 황태자인 선황은 주말마다 황태자비에게 찾아가 그곳에서 정무를 살핀 듯했다.

다만 자신이 태어난 시기를 생각해 보면 바로 이 시점에 임신을 했을 텐데, 서기관의 기록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없는 존재여야 하니까…….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카밀루스의 탄일은 선황의 즉위 후였고, 로제니아가 정말로 자신의 친모라면 만삭인 상태로 황궁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임신 증상에 대한 기록, 그러니까 적어도 음식을 가린다거나 운신이 힘들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한 줄도 없었다. 심지어 요양을 다녀온 로제니아는 실제로 몸이 많이 회복된 모양인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일에 대한 서술도 종종 있었다.

정말 만삭이었다면 여러 사람 앞에서 숨길 수가 없었을 텐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앞뒤로 탑에 대한 언급이나, 선황이 가지고 있었다는 물약에 대한 언급이라도 있는지 찾아봤지만 몇 번을 살펴도 해당하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았다. 종종 재니스와 그 조수인 마리엘만 등장할 뿐이었다.

‘날 가둔 사람은 선황과 재니스였지.’

24년 전에도 재니스는 선황의 옆에 있었다. 황가를 향한 충성 맹세가 벌써 30년도 넘은 이야기이니, 그의 등장은 문제가 없었다.

카밀루스가 의문스러워하는 부분은 그의 나이가 대체 몇이냐는 것이다.

탑에 갇혔을 때에도, 지금도 재니스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관리를 잘하면 늙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24년 동안 얼굴 자체가 바뀌지 않았으니 그런 이야기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카밀루스는 재니스의 이야기를 찾으며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페드로는 그사이에도 책을 이것저것 날라다 주다가 지쳐서 잠깐 옆에 널브러졌다.

“뭔가 찾긴 하셨습니까?”

카밀루스는 여전히 시선은 책에 고정한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근데 페드로, 마탑주 본 적 있지?”

“음, 대관식 때 결계 치다가 대공께 깨진 그 사람 말입니까?”

표현이 워낙 적나라해서 카밀루스는 잠깐 웃었다.

“그래, 그 사람. 몇 살로 보였어?”

질문에 페드로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대강 서른 정도?”

“그렇지? 근데 재니스의 나이는 적어도 쉰 이상일 거야. 그래야 말이 되거든.”

“예?”

재니스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하면 페드로 자신의 말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을 텐데, 지금 그는 머리 굴리기가 진짜 싫은 모양이었다.

뭔 소리냐고 눈을 끔뻑이는 그를 한번 힐끗한 카밀루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도 재니스는 그 얼굴이었어. 그리고 이때도…….”

황제의 부름에 마탑주 재니스가 황궁에 들었다. 황제의 앞에서도 케이프를 벗지 않던 재니스는 황제께 충성을 맹세한 뒤 이날 처음으로 모두의 앞에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 서기관의 예리하지 못한 눈으로는 그의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하여 궁금한 자들을 위해 조악한 글솜씨로 이곳에 간단한 인상을 적어 본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눈은 반쯤 감겨 있어 나른해 보이는 데다, 코만 살짝 점토를 붙여 놨다고 생각될 만큼 이목구비가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다.

…….

이에 본 서기는 과연 차후 만날 때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바다…….

“꼬맹이라는 언급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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