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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04)화 (104/317)

그리 중얼거리며 카밀루스는 책을 덮었다. 

곰곰이 무슨 생각인가를 이어 가던 그는 곧 일어났고, 페드로도 뒤를 따랐다. 마법에 대한 책들을 모아 둔 서가로 향한 그들은 어느 정도 감시의 눈이 멀어지자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뭔가 안 맞긴 하네요. 지금 마탑주는 선선황 폐하 때 충성 맹세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벌써 30년도 넘은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카밀루스는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살피다 관심 가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 페드로에게 건네며 대답했다.

“마법으로 얼굴을 가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말입니까?”

책등을 짚던 긴 손가락이 독특한 제목의 책에서 멈췄다.

변신학

제목을 본 순간 별 이상한 책도 다 있군 싶었지만, 재니스의 얘기를 하던 와중이라 관심이 간 터라 카밀루스는 바로 꺼내 목차를 살폈다.

그가 눈으로는 글자를 읽어 내려가며 입으로는 페드로의 질문에 대꾸했다.

“나조차도 재니스의 진짜 얼굴이 안 보여. 어렸을 땐 그게 단순히 내가 그보다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니 이상하긴 하군요.”

막상 본문에서는 딱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한 카밀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도로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또 하나의 의문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그 옆의 마리엘이라는 자. 그 사람도 수상하기로는 만만치 않지.”

말하면서 그는 이전에 케이프를 거두어 낸 마리엘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기에 잠식되어 얼굴의 반이 타들어 간 것처럼 검은 데다, 마리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나와 마기가 만나 싸우는 곳인 눈동자가 계속해서 다른 색으로 일렁이던 모습은 괴기스러운 한편 경이롭기도 하였다.

“난 그렇게 신체의 반이 마기에 잠식됐는데도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럼…….”

“마기 때문에 운용이 자유롭지 못할 뿐이지, 마리엘의 능력 역시 상당할 거란 의미야. 그것만 아니라면 그가 재니스 이상일 수 있다.”

“마탑주 이상이면 얼마나 강한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카밀루스 역시 가늠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페드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에 카밀루스는 서가의 좀 더 깊은 안쪽으로 걸어가 주위를 살폈다.

다른 이들과 충분히 거리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카밀루스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페드로, 네가 할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대공.”

“마리엘에 대해 알아봐. 어디 출신인지부터 시작해서 재니스와 어떻게 만났고, 어떤 경위로 마탑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어쩌다 마기에 잠식된 건지까지.”

명을 들은 페드로는 평소의 장난기는 전혀 비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움직이죠.”

“조심해야 해. 마탑의 일이니.”

페드로의 끄덕거림을 끝으로 카밀루스는 다시금 제 앞의 책을 꺼내 페드로에게 휙 던졌다. 페드로는 그것을 받아 맨 위에 쌓으면서 투덜거렸다.

“무겁습니다. 적당히 좀 꺼내시죠?”

“엄살은.”

가볍게 대꾸했으나 카밀루스의 표정은 평소보다 차게 굳어 있었다.

* * *

[상태 이상: 적의]

[불특정 다수의 적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1%입니다.]

상태 이상 ‘탈진’의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갔다. 하여 몸도 사릴 겸 이온은 며칠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나 사망 확률이 쭉쭉 올라갔다.

카밀루스를 만나기 전 상태로 회귀해 버린 사망 확률을 보면서 일할 의욕이 떨어져 버린 이온은 그만 안경을 벗었다. 그러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 있자 얼마 안 가 욤뇽이가 배 위로 올라왔다.

엄마 아빠를 언급했다가 눈물보를 터뜨린 지난번 일 이후 이틀간 삐쳐 있었지만 다시 평상으로 돌아온 녀석이 빤히 바라보고 있자, 이온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중얼거렸다.

“이럴 때 보면 버니언 그 자식은 역시 뇌가 없는가 싶고, 그렇지?”

“꾸……?”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한 눈빛에 이온은 픽 웃었다.

현재 이온이 불특정 다수에게 적의를 쌓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도 라치크의 길드장 찾기에 진전이 없으니, 초조해졌는지 버니언이 제국 내 각 길드를 통해 경고장을 보내왔다.

황실은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고, 그를 통해 얻은 이문과 정보를 이용해 오브라이언의 귀족 사회에 큰 분란을 일으키는 라치크의 길드장에 대하여 공개적인 경고를 보낸다.

버니언 퍼렌도 클로델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이상의 교란 행위를 중단하고 정상적인 길드로서 본연에 충실하여 제국민들을 위한 봉사를 해야 하는 제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

이 시각 이후로 또 한 번 황실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할 시 반드시 찾아 엄벌에 처할 것이니, 이 점을 명심하라.

말만 경고장이지, 사실상 공개 수배령과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만 해 놔도 알아서 충성을 할 이들은 당장 아는 정보를 닥닥 긁어다가 갖다 바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스타틴은 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는 후문이었다.

‘역시 지난번 편지를 뜯어 볼 걸 그랬나.’

그 편지를 카밀루스는 당연히 읽었을 텐데, 이후로 마주쳐도 딱히 아스타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노아기사단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은근히 떠보기도 했으나 왜 그러냐는 시선만 받았을 뿐이다. 다른 때는 여전히 눈치가 귀신인 걸 보면 아무래도 일부러 언급을 피하는 것도 같았다. 덕분에 이쪽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비밀은 없다고 했으면서.’

순 거짓말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괜스레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데, 에렌스트 경이 노크로 기척을 냈다. 욤뇽이가 얼른 책상 밑으로 숨자마자 그가 서류 한 무더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각각 뭐가 뭔지 설명을 듣는 동안 이온이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에렌스트 경은 기어이 마지막 서류까지 차분히 내려놓았다.

“이건 지난번에 말씀 주셨던 내용들을 정리한 겁니다. 각 가문의 산파들에 대한 것.”

이 경우는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던 터라 이온도 자세를 바로 했다. 다시 안경을 쓴 그가 깨알 같은 글자들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특이 사항은 있었어?”

“비렌시움 대공이 태어난 해에는 딱히 특이점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범위나 시기를 더 확장을 했는데, 아직 내용을 다 살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알렉.”

적당한 말로 인사치레를 한 뒤 이온이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에렌스트 경은 책상 앞에 서서 그런 그를 지켜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상 없어.”

“상황이 좋지 않으니 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이럴 때 소공작께서 또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비단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공작께서도 매번 걱정이 크시고요.”

“응. 아버지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다 신경 쓰고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에렌스트 경이 매번 아버지에게 불려 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쓰러졌을 땐 카밀루스랑 응접실에서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둘 모두 입을 다물고 있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도련님.”

“왜?”

“별건 아닙니다만, 제가 좀 신경 쓰이는 말을 들어서요.”

크레이거 가문의 산파에 대한 내용을 볼 차례라 내심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는데, 마침 에렌스트 경이 다른 화제를 붙여 오자 이온이 서류를 덮었다.

“뭔데?”

“현 황제가 도련님께 청혼서를 보낸 것 관련해서 알아보던 도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그 직전에 마탑주와 그 조수가 황태자궁에 든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재니스와 마리엘은 항상 세트로 다니는 모양이다.

그런 쓸데없는 감상을 떠올린 이온이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심드렁히 반응했다.

“뭐, 황실이랑 지금의 마탑은 꽤 긴밀한 관계이니 교류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아?”

“예, 그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만…… 그때 안내하던 시종이 이야기를 조금 엿들었다는데, 내용에 의문이 드는 게 있습니다.”

“뭐길래?”

“조수인 마리엘이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쓰러질 뻔한 도련님을 우연히 봤다고 했다더군요.”

말을 듣자마자 이온은 에렌스트 경이 가졌다는 의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챘다.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짧게 물었다..

“……나를?”

“예.”

에렌스트 경의 대답을 듣고 이온은 머릿속을 뒤졌으나 역시나…….

“난 기억에 전혀 없는데.”

백지였다.

하루이틀 아팠던 것도 아닌 터라, 제 몸에 대해 워낙 잘 알게 된 이후론 길거리에서 쓰러진 일 자체가 드물었다.

에렌스트 경을 바라보는 이온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알렉, 너는?”

“저 또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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