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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05)화 (105/317)

“그럼 마리엘이 거짓말을 했다는 건데…….” 

그에게 그럴 이유가 있나? 아니, 그보다 그 말이 오간 뒤에 버니언이 자신에게 청혼서를 보냈다는 건 그 시점에 저주에 대해 알게 됐다는 의미였다.

영문을 모르고 받은 이쪽이야 황당했지만, 버니언은 이온이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청혼서를 보낸 것이니 대충 아귀는 맞는 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다. 마리엘은 이미 어렸을 적에 저주에 걸린 이온을 봤었고, 그때는 임신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이후에는 마주친 기억이 전혀 없으니, 결국은 8년 전에 그가 아는 것을 전부 말하지는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 그럼 그가 자신의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거짓말로 눙치고 넘어가려고 했다는 의미인데.

“이상하네, 아주 많이…….”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당연한 의문이 따라붙었다.

‘왜?’

왜 그에겐 두 번의 거짓말이 필요했던 것이지?

8년 전에 마리엘이 이미 저주의 실체를 눈치채고 있었다면, 그 거짓말은 이온의 저주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리고 두 번째 거짓말은, 그가 기다린 어떤 시점에 버니언에게는 알려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야 하는 이유.’

□□가 건 이온의 저주는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신체를 변형하는 저주다.

그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이온의 눈동자가 동요로 흔들렸다.

‘마리엘은 내가 정말 황후가 되길 원한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마탑주는 재니스이고, 마리엘은 그 조수이니 재니스의 의지로 마리엘이 움직인다고 본다면 마리엘의 의지는 곧 재니스의 의지로 치환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는 재니스인가? 선황이 가지고 있었다는 보라색 물약은 역시나 자신이 걸린 이 저주를 일으키는 물건이고?

의문은 계속해서 새로운 의문만 재생성해 냈다.

카르코 백작에 의하면 선황은 그 물약을 보고 화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죽을 때까지 보관해서 카밀루스의 손에 들어왔다.

카밀루스는 그 물약이나, 그 물약과 비슷한 무언가를 이온이 마셨다고 추정하는 중이다.

지금도 온통 가정일 뿐이지만, 또 하나의 추측을 더해 선황의 그 물약이 이온이 마신 물약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이온 크레이거한테 물약을 마시게 한 사람은 역시 선황인가?’

이 경우 물약의 출처는 재니스라고 했으니 □□는 자연스럽게 재니스가 된다. 그 경우 앞선 추측들과 모순은 없었다.

마탑은 마기를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지만, 괴짜라고 소문 난 재니스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을 무한정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한 추정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톱니바퀴의 이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다. 작은 이 하나일 뿐이니 톱니바퀴는 굴러간다. 그러나 언제든 삐걱거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이온의 눈앞에 질문이 던져졌다.

[□□

나이 : ??

직업 : 마법사

특이 사항 : 플레이어에게 저주를 건 사람.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버틀러를 저주를 걸어 죽였다(추정).

카르코 백작을 죽였다(추정).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다(추정).

플레이어에게 감시용 새를 보냈다(추정).

플레이어를 죽일 계획은 아니다(추정).]

[□□와 매칭하시겠습니까?]

[1. 재니스와 매칭한다.

2. 마리엘과 매칭한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카르코 백작의 죽음에 대한 정보가 들어와서 그런지 어느새 □□의 프로필에도 약간의 업데이트가 있었다.

하지만 프로필 뒤에 이어진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아래에는 꽤나 위협적인 말이 적혀 있었다.

[매칭이 잘못될 시 최종 생존 확률이 50% 이상 낮아집니다. 플레이어가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지금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가 없다.

‘게다가 최종 생존 확률이라는 게 대체 몇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3번이 선택됐다는 메시지가 짧게 뜬 뒤 눈앞의 창들이 한 번에 소멸했다. 그러고 가끔 사망 확률을 계산 중이라고 들 때와 마찬가지로 로딩 화면이 올라왔다.

[최종 생존 확률 열람을 시도하는 중…….]

그러나 시스템이 낸 답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본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최종 생존 확률을 열람할 권한이 없습니다.]

재니스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다느니 할 때 이미 느꼈지만 시스템도 만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번 메시지는 당혹스러운 것임에는 분명했다.

권한이 없다는 건, 그 권한을 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니까.

[시스템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

계속 이런 두서 없는 메시지들만 띄우다니, 시스템이 진짜로 맛 간 건가 싶었다.

이온은 불안함 마음에 저도 모르게 목에 걸린 마나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아직 에렌스트 경이 제 앞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내고, 고갯짓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혼자 있어야겠으니 나가 봐.”

이온이 마나석을 손에 꼭 쥐는 것을 보면서 에렌스트 경은 불안해졌는지 주저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고요해진 방 안에서 이온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히고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자연스럽게 이전에 보았던 마리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망토 아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양쪽의 색이 다른 눈동자…….

그때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이온은 그가 자신에게 적의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재니스와 마리엘은 같은 편이 맞기는 할까?’

당장은 답을 낼 수 없는 질문 앞에서 막혀 버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복잡한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것이긴 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더는 고민해 봤자 확실한 것이 없는 이상 삼천포로 빠져 버릴 테니까.

이온은 하는 수 없이 에렌스트 경이 가져왔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안경을 걸치고 읽어 내려가는 그의 태도는 상당히 무성의했지만, 이 자리에는 어차피 지적할 사람도 없었다.

아까 멈췄던 크레이거 공작가의 산파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는 역시나 별다른 게 있지는 않았다. 이미 퇴직해 이 집안에 남아 있지 않은 그녀는 크레이거 가문의 유모 역할까지 했던 하녀였다.

그녀가 이동했던 건 카밀루스가 태어난 시점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 1년 전쯤 잠시 휴가를 간다면서 고향으로 향했고, 한 달 정도 있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뭔가 나오면 어쩌나 싶어서 긴장하며 봤는데 다행히 시기가 안 맞는 것에 이온은 안심했다.

이후 다른 집안들에 대한 보고는 대충 눈으로 훑으며 넘겼다. 에렌스트 경의 말대로 특이 사항이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도 컸다.

아무래도 빌어먹을 시스템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 영향인 듯했다.

정신 차려야겠다 싶어진 이온은 결국 겉옷을 걸치고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밀려드는 찬 공기에 이온은 어깨를 조금 떨었다. 오늘은 날이 흐려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추워졌다.

그는 옷을 끌어당겨 휑한 목을 가리며 문득 카밀루스의 방 쪽을 돌아보았다. 이런 날씨에 당연하지만 발코니의 문이나 창문이 열려 있지는 않았다.

‘방에 없나?’

아직 한창 낮 시간이니 허탕 칠 가능성이 높기는 했지만, 심심함을 못 이긴 이온은 결국 카밀루스의 방으로 향했다.

방이 너무 가까운 것도 위험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노크하는데 안쪽에서 반응이 없었다. 대신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께선 지금 자릴 비우셨습니다. 아마 곧 돌아오실 겁니다.”

“……!”

흠칫한 이온이 뒤를 돌아보니, 카밀루스의 부관인 페드로가 허리 굽혀 인사를 해 왔다. 기사라 체격이 다부진 데다 키도 큰 그를 이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다보았다.

“전하와 항상 같이 다니는 거 아니었어요?”

질문에 페드로는 자상한 미소를 띠며 카밀루스의 방 문을 열었다.

“사정이 있어서 요즘은 각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어, 그래도 되나요?”

“소공작이시라면, 아마도요.”

카밀루스가 저를 좋아한다는 걸 숨기지도 않고 떵떵 외치며 다니니, 그의 부관에게도 특별 취급을 받게 된 모양이다. 왜인지 부끄러워진 이온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페드로의 손짓을 따라 들어선 카밀루스의 방 안은 조금 어둑했다. 커튼을 열어도 환해지지 않자 페드로는 몇몇 곳에 촛불을 놓았다.

그사이 이온은 어색하게 소파에 앉았다가 그 앞의 탁자 위에 정리되어 있는 편지 더미들을 발견했다. 이미 다 확인한 모양인지 봉투의 실은 다 뜯어져 있었다.

이온은 실에 찍힌 인장이나 겉면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가라앉혔다. 이것들만 봐도 카밀루스가 얼마나 바쁠지 짐작이 된 탓이었다.

편지가 한두 군데에서 온 게 아닌데, 전부 다 다른 곳에서 온 데다 이름들을 훑으면 꽤 유력한 가문에서도 보내온 편지들도 섞여 있었다.

내용이야 보지 못했지만 소소하게는 저택 방문을 청하는 편지부터 파티 초대장이나 청혼서까지도 있으리라는 건 쉬이 짐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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