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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22)화 (122/317)

“앞으로 내가 섬길 주군이 누군지는, 내 손으로 선택해야겠다.” 

“……!”

이온의 거침 없는 발언에 에렌스트 경이 급히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이온에게 더 바짝 다가서서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를 냈다.

“설마 대공이 적통입니까?”

“그래. 로제니아 클로델의 아들이야, 카밀루스는.”

이온에게도 나름대로 이러한 추측을 하는 근거가 있었다. 게다가 시스템 창의 정보가 업데이트되었고, 퀘스트가 완료되었으니 헛다리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된 셈이었다.

이온이 리아라냐라는 이름을 본 곳은 크레이거 가문에서 퇴직한 유모의 동향 보고가 적힌 서류에서였다. 그녀가 한 달간 다녀왔다는 고향이 바로 남부 리아라냐였다.

카밀루스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건 선황이 즉위하고부터 황후 로제니아 클로델이 죽기 직전까지의 한 달 남짓한 기간 중 어느 때이다.

사생아라고는 하지만 선황이 그 존재를 내내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탄일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짧은 한 달 중에 어느 하루라는데 말이다.

하지만 만약 알려지지 않은 게 아니라 일부러 숨긴 거라면? 카밀루스가 마녀의 아들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그를 멸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선황이 단지 사생아를 미친 듯이 싫어하고, 관심조차 두고 싶지 않아 두 가지 사실을 외면했다고 하여도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연막으로 두 가지가 필요했다고 하면, 그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추론이다.

선황은 카밀루스의 생일이 언제인지, 누구의 배에서 나왔는지 제삼자는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추측 위에 선황이 로제니아 클로델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점, 황위에 오르기 전에 황태자비였던 로제니아가 굳이 궁정의의 치료를 뒤로하고 요양을 떠났다는 점, 그리고 그 요양지로 크레이거 가문의 산파가 이동했다는 사실을 더하면 완성된 그림이 나온다.

로제니아는 단순히 몸이 아파 요양을 한 것이 아니라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기 위해 떠났다. 그때 태어난 황실의 아이가 카밀루스다.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마녀’는 사실 로제니아였던 것이다.

이건 카밀루스의 나이가 24살이 아니라 25살이라고 알려졌다면, 전혀 헷갈릴 일도 없을 사실이었다.

‘솔직히 왜 숨겼는지까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심지어 당시 이미 공작위를 이어받은 뒤였던 이온의 아버지 역시 카밀루스가 적통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에렌스트 경도 당연히 그것에 의문을 표했다.

“그럼 대공이 왜…… 사생아로 알려진 겁니까?”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온이 중얼거렸다.

“카밀루스는 본인이 황후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럼 황실 도서관에 드나드는 건 아마 그 이유란 걸 찾기 위해서였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게 본인이 탑에 갇힌 이유와도 같을 테니까.”

반대로 말하면 카밀루스가 탑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온 크레이거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그 카밀루스 클로델을 탑에서 꺼내 준 아이다.

저주가 정말로 카밀루스를 탑에서 꺼내 오는 과정에서 걸린 게 맞는다면, 당연히 저주가 걸린 연유와도 연관이 될 수 있다.

그때, 새로운 퀘스트 창이 올라왔다.

[황성 탑으로 향하기]

‘이 퀘스트가 언제 나오나 했는데…….’

퀘스트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이온의 감상은 그랬다.

[황성 탑의 결계를 걷어 내고 황성 탑 안쪽으로 진입하십시오.]

[본 퀘스트 완료 시 플레이어의 탑과 관련한 기억 일부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회복되는 기억에 따라 □□가 특정될 수 있습니다.]

‘……!’

‘□□’가 특정될 수 있다. 확정된 뉘앙스는 아니었지만 이온은 보자마자 이 극악 난도의 퀘스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온이 들어가서 카밀루스를 데리고 나오기 전에도 금지였지만, 그 이후에 황성 탑은 마탑주의 결계에 의해 진입이 완전히 막혔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이온은 마탑주의 결계를 뚫지 못할 것이 뻔하기도 하고, 결과가 정해진 와중에 황실의 엄한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정해진 위험을 자처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간 탑에 가 보지 않았다.

지금도 탑에 가려면.

‘카밀루스가 돕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하지만 ‘□□’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저 가고 싶다고 하면 카밀루스가 그런 위험한 곳에 왜 가냐고 난리를 피울 것이 뻔히 보여, 막막할 뿐이었다.

‘게다가 직전에 싸웠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

싸웠다기보다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화낸 것이기는 하지만.

이온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사과해야겠다.”

우선 솔친 후작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겠지만.

* * *

바깥에 짙은 어둠이 찾아온 뒤에야 새 옷이 왔고, 솔친 후작의 급한 요청으로 불러들인 자신의 전담 버틀러가 옷시중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온이 아픈 게 더 이상 연기가 아니게 되었다. 낯선 환경인 데다 집이 오래돼서인지 은근히 웃풍이 든 탓에 어느 순간부터 감기 기운이 스며든 것이다.

하여 기침 소리를 이끌고서, 하인의 전언에 따라 1층으로 식사하러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페드로는 아니고, 차림새를 보니 카밀루스가 북부에서 데려왔다는 기사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솔친 후작은 그의 전언을 들으면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걱정이 된다고 하시면 당연히 모셔야지.”

‘모셔야지’……?

마치 카밀루스가 곧 이곳에 올 거라는 식으로 들리는 이야기에 이온은 기침 소리를 삭였다. 하지만 흡 하는 소리가 흘러나가 솔친 후작이 살짝 고개를 돌린 순간, 앞에 있던 카밀루스의 기사가 얼른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후작 각하. 그럼 바로 돌아가 대공께 알리지요. 그럼.”

의도적으로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것 같은 낌새에, 이온이 기사의 뒷모습을 눈길을 따르며 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1층 바닥을 디디자 솔친 후작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소공작, 몸은 괜찮은 건가?”

“예, 각하와 집안분들의 보살핌 덕분에…….”

대답하다가 의도치 않게 쿨럭, 하는 소리가 튀어나가자 후작이 움찔했다. 그러자 오히려 옆에 서 있던 후작 부인이 침착하게 식당으로 가자며 손짓했고, 이온은 그곳으로 발을 옮기며 말을 마무리했다.

“큰 이상은 없습니다.”

이온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자 솔친 후작의 얼굴이 풀렸다.

“다행이네. 우리 집에 손님이 왔는데 푸대접을 받고 간다면 부끄러운 일 아니겠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동의한 이온은 조금 전 카밀루스의 기사가 걸어간 홀 쪽을 돌아보았다.

“그보다 방금 그 사람은 비렌시움 대공의 사람 아닙니까?”

“역시 알아본 모양이군. 자네가 걱정되니 결례지만 찾아와도 되냐는 물음이었네.”

대답을 듣고 이온은 눈을 깜빡였다.

……카밀루스가 진짜로 온다고?

“대공께서요?”

놀란 나머지 걸음이 다소 늦어지자 후작이 앞서가다가 돌아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눈빛이었다.

그야 문제가 있었다. 방 안에서 싸웠는데 어떻게 얼굴을 볼지 고민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꽤나 바쁜 모양인지 크레이거 공작가에 의탁한 이후로 카밀루스는 하루를 온전히 집 안에서 쉬는 경우가 드물었다. 듣자 하니 황도에 있는 귀족 가문들 몇몇의 초대에 응하고 있기도 한 것 같았다.

특히나 최근엔 부관인 페드로와도 개별 행동을 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활동하는 듯했는데…….

후작이 서신에 뭐라고 썼길래 카밀루스가 당장 오겠다고 하는 거지?

하지만 서신의 내용을 캐묻기도 모호해서 머뭇거리는 사이, 솔친 후작이 들떠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시간도 시간이니 저녁을 함께하는 것이 좋겠지? 다행히 미리 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하라고 일러두어서 대공께서 오셔도 융성히 대접할 수 있을 것 같네.”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라도 귀족가의 체면이 있지, 손님을 계획도 없이 막 받아도 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온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기침 소리만 계속 삼켰다. 그러자 조금 뒤에서 따라오던 후작가의 버틀러가 손수건을 건넸다. 낮의 일 때문에 많이 신경 쓰는 게 티가 나는 행동이었다.

이온은 입을 가리며 몇 차례 더 기침을 토하다가, 겨우 수습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느신 게 아닌가 싶군요.”

“그런 말 말게나. 대공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니. 게다가 황도에 와서 크레이거가 외에 처음으로 머무시는 것 아닌가?”

그런 게 아니라며 손을 저으며 하는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던 이온이, 잠시 후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설마 카, 아니 대공께서 이 집에 내일까지 계시기로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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