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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26)화 (126/317)

“꾸! 꾸!” 

갑작스러운 포옹에 이온과 카밀루스 사이에 껴 버린 욤뇽이가 숨 막힌다며 낑낑거렸다. 그러다가 녀석이 이온의 팔 사이에서 빠져나가 휘릭 날아갔지만, 카밀루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품 안의 이온을 보았다.

“몸도 안 좋은데, 매번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왜 자꾸 사람 걱정하게 해?”

며칠 만에 봐서는 초장부터 잔소리를 하니 이온이 괜스레 눈을 피했다. 살짝 밀어내니 순순히 놔주기에, 이온은 얼른 뒤돌아서서 창문을 닫았다. 혹시 말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서였다.

“오늘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나온 거야.”

“겨우 그런 시시한 사업 얘기를 하러 왔다는 걸 나더러 믿으라고?”

시시한 사업 얘기라…….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이온은 솔친 후작과의 적어도 저녁 식사가 시간 낭비였다고 절하하고 싶지 않았다. 카밀루스에 대해서 더 알 수 있는 자리였던 터라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온은 카밀루스가 대공국의 일 처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선황이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북부로 돌아가 순회라도 했어야 할 그가 설마 지금처럼 황도에 눌러앉으리라고 예상했던 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오늘 대화로 그가 적어도 제 의무를 다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 때문에 그 의무를 외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온은 몰래 미소 지었다가 도로 카밀루스를 향해 뒤돌아서서 팔짱을 꼈다.

“맞아, 그런 시시한 사업 얘기만 하려고 온 건 아니었지. 다른 목적도 있었어.”

그래서 심지어 네 어머니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고.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싶어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이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카밀루스가 한마디 던졌다.

“처음 보던 옷이네.”

“응?”

“다리에 물을 엎질러서 옷이 젖었다더니 그 때문에 갈아입은 건가?”

그에 이온은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카밀루스의 말대로 처음 입는 옷은 맞는데, 기존에 입던 옷과 크게 구분될 정도로 아주 독특한 옷도 아니었다. 게다가 방 안이 그렇게 밝은 것도 아니니 눈썰미가 있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갈 법한 부분이었다.

“처음 입는 옷인 걸 어떻게 알아?”

이온의 반문에 카밀루스가 픽 웃으며 바싹 다가왔다.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아? 항상 지켜보고 있어.”

그러고 팔을 붙잡으라는 듯이 아래팔을 수평으로 해 내미는 것에 이온은 조심히 손을 얹었다.

카밀루스는 침대가 아닌, 불이 지펴진 난로 앞의 흔들의자로 이온을 이끌었다. 의자는 하나였지만 그는 주저없이, 그러니까 상대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온을 안은 채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이 앉자 흔들의자가 기익, 하고 힘겹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온은 의자 밑을 내려다보며 불안해하는 음성으로 물었다.

“의자 부서지는 거 아니야?”

“전혀. 네가 가벼워서 안 그래.”

대답하면서 카밀루스는 이온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게 기대게 했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보면 둘의 관계를 아주 수상하게 여길 만한 자세였다.

심지어 너무 가까운 나머지 심장 소리마저 들렸다. 맞닿은 몸을 통해서 카밀루스의 심장이 얼마나 거세게, 그리고 빠르게 뛰는지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여 이온이 민망해하고 있는데, 카밀루스는 늘 그렇듯 태연한 얼굴로 이온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쏟은 게 뜨거운 물이었다며, 다리 봐도 돼?”

다리 봐도 되냐니…… 옷을 벗기겠다는 소리 아닌가.

밤의 분위기 때문인지 묻는 말이 그리 순수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온이 눈동자를 굴려 카밀루스를 마주 보았다. 그렇지만 “응?” 하고 채근하는 카밀루스의 목소리에는 아직 열기가 없었다.

그냥 걱정하는 것에 불과한데 제가 너무 심하게 의식하는 건가 싶었던 이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허락이 떨어지자 카밀루스가 실례하겠다며, 평소와 같이 제 나름대로의 매너를 지키며 이온의 바지를 내렸다.

그럼에도 민망한 상황인 건 맞아서 이온이 시선을 딴 데 두고 있으니 긴 손가락이 바지를 벗기는,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해 왔다.

손끝이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감촉 때문에 어쩐지 볼에 열기마저 올라왔다. 이온이 속으로 설마 아예 다 벗기나 싶어 슬쩍 눈을 굴려 보려는데, 때마침 허벅지가 붉어진 것을 발견한 카밀루스가 미간을 찌푸리게 보였다.

곧바로 그의 입에서 살벌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거 어떤 새끼가 실수한 거야? 안드레아? 아니면 널 보호 못 한 에렌스트 경을 혼내야 하나?”

누구 하나 지목만 하면 바로 튀어나가서 잡아 족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온은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이건 내 실수야.”

누구의 탓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카밀루스의 살벌한 눈빛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온은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재차 강조했다.

“진짜로.”

그제야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켠 카밀루스가 이온의 가는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은근한 손길에 움찔했던 것도 잠시, 이온은 곧 따끔했던 것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마법 시전에 의한 빛이 미약하게나마 일고 있었다.

카밀루스는 이온의 좀 전에 떠오를 듯 말 듯 했던 뇌 내 망상을 차단하듯이 곧바로 바지를 올렸다. 그러고 딱딱한 목소리로 이온을 다그쳤다.

“다쳤다는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는 알아? 몸 함부로 대하지 마. 훨씬 더 주의하라고. 알았어?”

그에 이온은 왠지 마음속이 푸시식 식는 느낌이었다. 하여 괜스레 바지의 버클을 잠그려는 카밀루스의 손마저 야속해져 그것을 밀어 내고 제 손으로 갈무리했다.

카밀루스가 뭐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이온은 이유 모를 서운함으로 볼을 부풀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심지어 부모님 앞에서도 별로 어리광 부린 적이 없는데 카밀루스 앞에서는 어째선지 고집쟁이가 되고 싶어졌다.

“잔소리만 들으면 네가 무슨 우리 부모님인 줄 알겠…….”

“이온.”

“응, 주의할게.”

이온이 건성으로 대꾸하자 카밀루스가 실소를 흘렸다. 불쾌함의 표시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짙은 눈웃음을 띠고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더니, 이온의 허리를 두 팔로 꽉 안고는 속삭였다.

“새침한 것도 왜 이렇게 귀여워?”

“제 눈에 안경인 거지.”

“그럼 네 눈엔? 네 눈엔 그 안경 없어?”

이온은 태연히 장난을 쳐 오는 카밀루스를 바라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간신히 아무렇지 않은 척은 하고 있지만 자신은 이렇게 똑바로 마주 보는 것도 아직은 민망하면서도 불편한데, 또 제 맘을 떠보는 걸 보면 카밀루스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방금 그 말, 네가 날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종전에 그렇게 상처받아 놓고서는.

이온의 입장에선 그의 태도를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몰라 솔직히 난감했다.

다만 이전에 카밀루스는 영문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니, 어떻게든 사과해야 하는 것은 맞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적기인 것 같아 이온이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카밀루스.”

“왜?”

곧장 대답해 오는 카밀루스의 말투에서는 서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이온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게, 저번에는 미…….”

하지만 어렵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허무하게도 뒷말이 카밀루스에게 먹히고 말았다. 그의 입술이 이온의 입을 덮어 버린 것이었다.

말하느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파고든 혀가 단숨에 이온의 혀와 얽혔다.

“읏……!”

몸이 끌어당겨지면서 흔들의자 역시 기울었다. 무게 중심이 확 넘어가면서 마치 카밀루스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자 당황한 이온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정작 뒤로 넘어가기 직전인 카밀루스는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이온의 목덜미를 붙잡고 더욱 끌어당겼다.

비스듬히 겹친 탓에 더 깊숙이 진입해, 여린 살을 탐하는 혀놀림에 타액이 뒤섞였다. 그곳에서 나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타오르는 난로의 불티가 튀는 소리보다 크게 들려오자 이온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거기다 탐색하듯 연구개를 살짝 건드리며 밀려들어 오는 그의 혀에 이온이 어깨를 흠칫대자 카밀루스가 작게 웃는 소리를 내더니 곧 입술을 떼어 냈다.

눈을 가늘게 뜬 카밀루스가 이온을 올려다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은 듣기 싫은데. 대신 다른 방법으로 달래 주면 안 돼?”

그 말을 듣자마자 아까 떠오를락 말락 했던 이온의 망상이 약간의 구체성을 띠어 갔다. 그러다 이온은 조금 전 잘못된 신호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어 제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휘적휘적 없애 버렸다.

“……다른 방법이 뭔데?”

하지만 카밀루스의 대답에 흩어 놓았던 뭉게구름이 도로 몰려왔다.

“바보야, 그걸 왜 몰라?”

의뭉스러운 말이었지만 이미 뇌 안쪽이 불순한 색으로 가득 차 버린 이온은 그쪽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됐다.

게다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비좁은 흔들의자 하나에 억지로 둘이 앉느라 자세가 아주 괴상했는데, 제 다리 밑에 깔린 무언가가 처음과 달리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거, 나만 변태인 거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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