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카밀루스.”
그러고 이온은 긴장해 잔뜩 어깨를 굳혔다. 한데 숨소리조차 떨리는 듯했던 그때.
“아, 뭐……?”
약간의 의문이 담긴 그 한마디에 이온이 놀라 눈을 크게 떴고, 카밀루스 역시 무심결에 튀어나온 소리에 당황했는지 숨을 삼키며 입을 가렸다. 그때까지 이온의 무릎에서 가만히 눈을 굴리고 있던 욤뇽이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를 높였다.
“꾸, 꾸우!”
날개를 파닥여 네가 감히 이온의 고백을 안 받아 주냐며 따지는 욤뇽이를 보고, 카밀루스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아니, 아니! 이건, 이온이 싫다는 게 아니라……!”
“꾸꾸!”
카밀루스가 변명을 입에 올리려는 찰나 욤뇽이가 입을 쩍 벌리더니 제 눈앞에 있는 카밀루스의 검지를 콱 물어 버렸다. 말랑한 몸체와는 전혀 다른 단단한 이빨이 검지를 물고 놓아주지 않자, 카밀루스가 경악해 손을 흔들었다.
“야, 이 망할……!”
“뀨우우!”
“아니, 그러니까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다시 만난 이후 카밀루스가 이 정도로 당황한 모습을 처음 본 이온은 어리둥절해하는 눈빛으로 투덕거리는 욤뇽이와 카밀루스를 말똥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욤뇽이를 확 안으며 뒤로 뺐다.
“그만해, 카밀루스가 잘못했다잖아.”
이온의 타이름에 욤뇽이가 그제야 물고 있던 카밀루스의 손을 놓아주며 이온을 올려다보았다.
“꾸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래. 이제 욤뇽이는 피곤하지? 옆방 건너가서 자도 돼.”
“꾸……?”
누가 봐도 카밀루스랑 둘만 있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한 이온의 말에 욤뇽이가 커다란 눈을 서운함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온은 욤뇽이를 제 옆에 내려 두고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끼이잉…….”
욤뇽이가 가기 싫다며 몸을 침대 위에 눕히고 서러워하는 티를 팍팍 냈지만, 이온은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결국 욤뇽이는 이온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란 걸 알아채고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솔친 후작 부처가 카밀루스의 방으로 내준 옆방으로 건너가기 위해 창문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자 아직도 귀 끝을 발갛게 물들인 카밀루스가 이온을 보고 이 말 저 말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미안, 이온. 근데 나도 당혹스러워서, 그게, 그게 뭐가 당혹스럽냐면, 아, 씨…….”
횡설수설하다가 이번엔 욕설을 뱉을 뻔했지만 카밀루스는 간신히 한숨을 섞어 내쉬며 멈췄다.
“그게, 아, 너무 좋아도 대처가 안 되네, 이게, 그러니까.”
좀처럼 문장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 카밀루스를 보다가 문득 이온이 풋, 웃어 버렸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웃다가 울다가,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이온의 반응에 카밀루스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뭘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입술만 달싹이는 것에, 이온이 다시 그의 몸에 기대어 두 팔로 끌어안았다.
“……널 좋아해.”
카밀루스의 파란색 홍채에 난처해하는 빛이 섞였다. 그의 기준에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보니 이상한 질문을 하게 됐다.
“이온, 너 내일 어디로 떠나? 혹시 공국으로 돌아간다든가.”
“그럴 리가 있어? 네가 내 저주를 풀어 줄 공주님인데 어디로 떠나?”
“……공주님.”
얼마 전 자신을 왕자님이라고 불러 줬던 일을 떠올리며 카밀루스를 공주님이라고 지칭해 주자, 그가 조금 충격을 받은 듯 예의 단어를 곱씹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온이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한 듯 웃어 보이자, 이온도 마주 미소 지으며 질문을 꺼냈다.
“그러니까, 너도 지금의 날 사랑해 줄 거지?”
이온으로서는 답변이 간절한 질문이었다. 중요하고 또 중요한…….
하여 숨조차 멈추고 카밀루스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그가 이마를 콩 맞대고는 속삭였다.
“물론이야. 난 널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
“겁쟁이든, 비겁자든 상관하지 않을게. 네가 뭐든 다 사랑해 줄 테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이온은 카밀루스의 이 말이 거짓 한 점 없는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을 안아 주는 다정한 품이 지닌 온기가, 허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 몸의 주인인 이온 크레이거에게도, 카밀루스에게도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놓기 싫어.’
누가 뭐라 해도 이 시간은 제 것이니까.
이 몸에 들어온 이후로 만난 카밀루스는, 자신과 추억을 쌓았다. 그 기억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몸의 본래 주인인 이온 크레이거 것이 아니라.
이온이 카밀루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체향이 코 속으로 확 밀려왔고, 이온은 그에 이끌려 입술을 가져다 댔다.
“카밀루스.”
살결에 맞붙은 입술이 움직이며 말소리를 흘리자 카밀루스에게 그 음성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카밀루스 역시 왜인지 긴장된 한마디를 내보냈다.
“응?”
이온의 초록빛 눈이 카밀루스를 잠시 올려다본 순간, 둘 사이에 미묘한 정적이 일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있던 아주 약간의 소음마저 가시자 카밀루스의 등 뒤의 난로에서 불티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이온이 얇은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그러고 입 안에 숨었다가 다시 나왔을 때, 조금 번들거리는 빛을 띠자 카밀루스가 목울대를 한 번 흔들었다.
누구 것인지 모를 한숨 소리가 둘 사이를 가른 순간이었다. 기익, 하고 침대가 기울더니 카밀루스의 그림자와 이온의 그림자가 하나가 된 듯이 겹쳐졌다.
이온은 제 위로 덮쳐드는 커다란 몸을 두 팔 벌려 받아들였다. 귀가 한 번 따끔해지는가 싶더니, 한껏 낮아진 카밀루스의 음성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너,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이온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며 그를 밑으로 끌어당겼다.
“적어도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잖아.”
그러면서 다리를 그의 허리에 걸쳤다.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손으로는 카밀루스의 겉옷과 셔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넓은 어깨가 드러나자 빛을 등지고 있는데도 그곳에 있는 흉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온은 저로 인해 생긴 그 상처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다가 이내 근육이 가득 차오른 가슴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며칠 깎지 않아 살짝 길어진 손톱 끝이 카밀루스의 몸을 간지럽히자, 섬세한 근육이 크게 움찔했다.
그러고 조금씩 달아오르는 살결과 빨라지는 숨소리를 통해 그가 다시 자신을 욕망하고 있음을 확신한 이온은, 카밀루스의 눈을 마주하며 도발의 말을 흘려보냈다.
“날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긴 싫지? ……버니언이 날 황후 만드느니 어쩌느니 하고 있는 걸 모르진 않을 테고.”
버니언의 이름이 나온 순간 카밀루스가 손을 이온의 턱을 살짝 쥐고 들어 올렸다. 그가 이온을 내려다보며 엄하게 타일렀다.
“이온, 그게 아주 못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 전에 날 네 걸로 만들면 되잖아.”
이온이 “응?” 하고 덧붙이며 그의 셔츠를 확 밀어 내렸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결국 제 손으로 겉옷과 셔츠를 침대 밖으로 벗어 던지며 이온에게로 몸을 숙였다.
그러나 금세라도 덮칠 것 같은 자세가 된 상태에서조차 카밀루스는 계속해서 이온에게 경고했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야. 난 지금 잘못하면 네 인생이 망해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해 주는 거라고.”
그렇지만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온이 그걸 각오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카밀루스의 말은 이온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카밀루스, 네가 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는 거 같은데…… 난 자의식이 아주 강한 편이야. 그래서 난 널 선택한 날 믿어.”
“…….”
이온은 먼저 그의 목을 감싸며 카밀루스와 입을 맞댔다. 버드 키스가 두어 번 이어지자 카밀루스도 결국은 이온의 쪽으로 완전히 몸을 무너뜨리며 끌려왔다.
하아…….
아직은 가벼운 숨소리가 둘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이온은 자신의 엉덩이를 그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자 잘 갈무리된 바지 밑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제 허벅지 사이에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것에 용기를 얻은 이온은 카밀루스를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이대로 책임질 일이 생기면, 네가 날 망하게 가만히 두겠어?”
질문이 끝나자 카밀루스가 굵은 팔로 이온의 허리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가만히 안 두지.”
마침내 긍정의 말을 들어 낸 이온이 희미하게 웃은 순간, 허리가 밑으로 확 끌려갔다. 순식간에 이온을 제 밑에 깔아 버린 카밀루스는 이온의 바지 버클을 풀어 내며 짙은 숨소리가 섞인 말을 토해 냈다.
“이젠 어떻게 되든 공동 책임이야, 이온 크레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