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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32)화 (132/317)

등 뒤에서 작게 윽, 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안 되겠다 싶은 이온은 다시 숨을 얕게 쪼개 쉬었다. 

“아, 하아…… 하.”

그러자 카밀루스는 이온의 손목을 잡았던 손을 올려 깍지를 낀 뒤 꽉 움켜쥐었다.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지만, 이온의 숨은 진정되지 않았다. 지나친 긴장과 압박감 탓이었다.

카밀루스는 이온의 주의를 분산하기 위해 연신 질문을 던졌다.

“혹시 느껴져?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신없었지만 이온도 그의 질문에 따라 느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파들파들 떨었다.

몸을 바짝 붙이고 있던 카밀루스는 제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온의 떨림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깍지 낀 손에 힘을 더했다.

정신이 없는데도 카밀루스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 게 느껴졌다. 침대의 출렁임이 더 거칠어지고, 귓가에서 흩어지는 숨소리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왜인지 건조하게 들려야만 하는 끼익거리는 소리까지 젖어 있는 듯했다.

“앗, 하아, 아!”

갈급한 숨을 들이켜느라 살짝 벌어진 이온의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더러운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관념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민망한 건 제가 적나라하게 흥분하고 있다 사실 그 자체였다.

치켜올린 엉덩이 밑으로 자꾸만 무언가 툭툭 떨어지는 중이었다. 제 안에서 뒤범벅이 되어 흘러내리는 걸 알고는 이온은 눈을 꽉 감았고, 날카로운 감각은 더 거세게 밀고 들어왔다.

이온의 상태 때문인지 카밀루스의 몸짓이 더 다급해지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는 카밀루스가 마침내 길을 찾아냈는지 한곳을 집중적으로 들이받자 결국 이온은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질렀다.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몸짓에 떠밀린 이온은 상체를 더욱 바짝 침대 위로 붙였으나, 이미 잔뜩 예민해진 몸은 이불에 휩쓸리는 것조차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허억, 헉.

숨소리를 한 번 내뱉을 때마다 머릿속도 그만큼 아득해져만 가는 기분이었다. 그에 쾌감의 배에 몸을 싣고 있던 카밀루스도 급히 이성을 되찾았다.

“이온, 이온?”

그러면서 몸을 물리려고 하는 것이 느꼈다. 이온은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마구 저으며 제 손을 움켜쥔 카밀루스의 손을 꽉 붙들었다.

“아, 헉, 허억…… 아, 안에, 안에다.”

그러면서 일부러인 듯 안을 확 압박해 오는 것에 카밀루스는 무의식중에 욕설을 뱉고 말았다.

결국 내리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진짜 허리가 부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안 카밀루스 역시 어떻게든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기색이었다. 얼마 안 가,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뜨거움이 배 안쪽으로 확 퍼지는 것이 느껴진 찰나, 이온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카밀루스가 다급하게 이온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더는 눈을 뜰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 *

다각, 다각, 다각.

지면을 치는 말발굽 소리가 솔친 후작 저택에서부터 멀어져 갔다.

카밀루스와 이온을 각각 태운 두 대의 마차가 후작 저의 대문을 넘어간 뒤, 그들을 배웅하던 솔친 후작은 저택 안으로 서둘러 되돌아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선두의 마차에 몸을 실은 카밀루스는 평소보다 더 피곤해하는 얼굴로 어제의 일을 곱씹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온은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허리가 아파 오는 것을 참으며, 벽에 기댄 채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맞은편에 앉은 에렌스트 경이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몸이 안 좋으십니까, 도련님?”

“조금…….”

“그럼 마차를 멈추라고 할까요? 안색도 안 좋으니 쉬고 가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이온이 아프다고 하면 항상 과한 반응을 해 오는 에렌스트 경이 역시나 당장 마차 문을 열려고 하는 것에 이온이 얼른 그를 막았다.

에렌스트 경은 그럼에도 불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마차를 멈출 만큼은 아니라는 이온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제 결국 기절해 버리고 말았지만, 카밀루스가 제 나름대로의 조치를 모두 취한 덕분이었다.

아침에 유리창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햇볕에 눈을 뜨자마자 이온은 솔직히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난리가 날 수도 있겠다고.

그런데 베개도 이불도 모두 깨끗했다. 심지어는 어젯밤의 일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바지도 제대로 입혀져 있었다. 그저 몸을 일으키다가 느껴지는 허리의 묵직한 통증만이 어제 있었던 일이 실제였음을 증명해 주었을 따름이었다.

알고 보니 이온이 기절한 뒤에 카밀루스가 전부 다 뒤처리를 한 것이다. 이온의 방에 깔려 있던 침구를 제 방으로 가져간 뒤 물 같은 걸 쏟았다는 핑계를 댄 모양이었다. 덕분에 후작가의 사람들은 이온과 카밀루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이온은 뻐근한 허리와 아직도 벌어져 있는 것만 같은 얼얼한 감각을 애써 참아 내며 에렌스트 경에게 말을 건넸다.

“그보다, 카밀루스 말이야.”

“대공과 어제저녁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무심코 이름으로 말한 이온의 호칭을 정정해 주며 에렌스트 경이 묻자 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하다 보니 안 사실인데, 북부의 귀족들과 어느 정도 관계를 형성해 놓은 모양이더라고?”

“아이오딘에서는 대공을 따르던 가신 가문이 따로 없었을 텐데요.”

애초에 아이오딘은 인구 천 명이 간신히 넘을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으니 가신 가문을 삼을 만한 세력도 없었다. 원래라면 백작령이 될 정도의 규모도 아니라는 소리다.

단지 오브라이언의 최북단에 있고, 또한 수많은 몬스터들이 출몰하여 그 남쪽의 영지들까지도 간혹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보니 변경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일 뿐이었다.

카밀루스가 아이오딘을 가게 되었을 때 사실상은 유배라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 하지만 이엘라엠과 비아트리스 쪽은 이미 우호 관계라는 듯이 말했었는데…… 사실인지 확인하고 다른 지역도 연관이 있는지 알아봐.”

이온은 카밀루스가 그런 걸로 허풍을 떨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래도 더블 체크를 안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사실이라면 이온의 입장에서도 카밀루스를 도와주기가 훨씬 수월해지기도 하니, 상당한 호재라고 할 만했다.

한데 명을 받은 에렌스트 경은 알겠다는 말을 잠시 미뤄 두고, 이온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이온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불만이라도 있어? 왜, 내가 카밀루스 때문에 위험해질까 봐?”

에렌스트 경은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께서 이미 대공의 편을 서기로 한 이상 그런 걸로 더 불만 가져 봤자 소용없는 짓일 테지요.”

이온은 픽 웃었다. 워낙 자신을 잘 아는 에렌스트 경이기에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이었다.

“그럼?”

“공작 각하를 어떻게 설득하실 겁니까?”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야. 내가 미혼이라 작위를 잇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상 공작가는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전향적인 말이었던지 에렌스트 경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차 밖의 누군가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되물었다.

“설마, 각하의 의지는 상관없다는 의미이신 겁니까?”

“아버지는 날 이기지 못할 거야. 애초에 이길 생각 자체가 없으시니.”

“…….”

물론 다음에 만났을 때 적의 수치가 상승한다고 했으니 긴장은 해야 할 테지만, 그럼에도 이온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그 자신도 버니언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편인 듯 보이니, 선황 때와 같은 충성을 바칠 리 없다는 게 이온의 판단이다.

과연 선황과는 얼마나 더럽게 엮였길래, 서먹해진 와중에 그런 지고지순한 충정을 바쳤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카밀루스의 출생에 대해서 알면서도 숨겼을 정도이니…….’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아버지의 속셈보다도 어떻게 해야 카밀루스를 키울 수 있는가였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버니언을 조금씩 좀먹어 가서 그의 입지를 좁혀 놓는 것이었다. 이온은 그러기 위한 첫 번째 발을 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렉, 귀족들 사이에 소문을 좀 퍼트려 놔야겠어.”

“말씀하십시오.”

“비렌시움 대공과 황태후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 황태후는 내심 대공이 황위에 오르길 바라고 있다고 말이야.”

에렌스트 경은 품에서 수첩을 꺼내 받아 적다가 멈칫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소문이 아닙니까? 그런 건 금세 힘없이 사그라들 텐데요.”

“상관없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은 성립될 수 있다는 걸 머릿속에 심어 두는 게 중요하니까. 믿는 건 그다음 순서거든.”

마치 카밀루스가 ‘마녀의 아들’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졌고,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카밀루스의 생모가 미천한 이일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온은 선황이 카밀루스를 진창에 처박았던 방식 그대로, 그를 다시 일으킬 생각이었다.

이온이 할 거냐고 묻는 듯이 에렌스트 경을 바라보자, 그는 이 일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듯하면서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대답을 들은 이온은 마차 창밖을 슬쩍 확인했다.

후작 저에서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루미에르홀까지 남은 거리는 상당했다.

이온은 이따 보게 될 공작과 무슨 대화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표정을 굳혔다.

‘아마도 난리가 나겠지.’

어쩌면 공작이 충격에 쓰러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온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자신에게도 지킬 대상이 생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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