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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53)화 (153/317)

“꾸우…….” 

이온의 팔에 빨래처럼 걸린 채 축 늘어져 있던 욤뇽이가 카밀루스를 발견하자 눈을 댕그랗게 만들었다.

그 꼴을 내려다보며 카밀루스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뭐야, 이 녀석?”

똘망똘망하게 뜬 욤뇽이의 물빛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독 부담스럽게 보였다. 그야, 평소보다 크기가 컸기 때문이었다.

카밀루스가 꼬리 길이까지 합치면 이제 이온의 상체의 반 정도 되는 길이가 된 녀석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온이 머뭇머뭇 상황을 설명했다.

“그게, 내 방에 돌아가서 이불을 들치니까 엄청 커진 채로 자고 있더라고? 몸 줄여 보라고 했는데 몇 번 끙끙거리더니 포기했어. 이게 최소치인가 봐…….”

말소리에는 난처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이온한테 삐쳐서 카밀루스랑 고작 하룻밤 같이 잔 것뿐인데, 이만큼이나 커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크기를 키운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카밀루스를 올려다보니, 그가 볼을 긁적였다.

왠지 이온이 저와 같이 있기 위한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드래곤 녀석이 커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둘러보다가 일단 문을 열어 주었다.

“일단 들어와.”

안에 발을 들이는 소리에 페드로가 소파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자 이온이 흠칫했다.

“페드로도 있었네요?”

“예, 오늘 일을 좀 정리하느라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페드로의 시선이 이온의 품에 안긴 수상한 드래곤한테 향했다. 그가 이게 뭐냐는 의미의 시선을 카밀루스에게 보내자 카밀루스는 문을 닫으며 태연히 반응했다.

“페드로는 처음 보던가?”

“……독수리 말고 또 다른 것도 키우셨던 겁니까?”

이온의 품에 안겨 들어오는, 말랑말랑해 보이고 뚱뚱하며 새하얀 도마뱀을 눈으로 좇던 페드로는 이것의 출처가 카밀루스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아무렴, 이온처럼 평범한 사람이 이런 이상한 생물을 어디서 갑자기 주워 왔을 리는 없으니까.

이온은 페드로가 욤뇽이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하면서, 녀석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욤뇽이가 곧장 배를 딱 붙이고 그 위에 늘어졌다. 눈꺼풀이 반쯤 감긴 걸 보면 약간 졸린 모양이었다.

“꾸…….”

페드로가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이 새로운 생물은 뭔가 싶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 버린 순간, 카밀루스가 녀석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그거 드래곤이야.”

“예? 이렇게 뚱뚱한 녀석이요?”

“꾸?”

방심하다가 속마음을 훤히 말해 버린 페드로의 한마디에 욤뇽이가 얼굴을 휙 들어 올리며 눈망울을 글썽였다.

녀석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온이 얼른 다시 안으며 반박했다.

“안 뚱뚱한데요? 이 녀석은 조그마했을 때부터 이런 비율이었어요.”

그렇다면 그때부터 비만이었던 게 아닐까?

페드로는 곧장 그런 생각을 떠올렸으나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이온이 딱 봐도 제 새끼는 예뻐하는 고슴도치처럼 새하얀 드래곤을 두 팔에 꼭 안고 소파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녀석에게 또 한 번 뚱뚱하다고 했다가는 이온에게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 예…… 그렇다면.”

하긴, 드래곤이 뚱뚱하든 안 뚱뚱하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긴 했다.

그가 카밀루스에게 자긴 이제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내자 카밀루스가 작게 한숨을 짓는가 싶더니 그만 나가 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였다.

페드로도 괜히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서재에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온 걸 보면 이온의 고집도 보통은 아닌 것이 분명한 데다, 이번에는 카밀루스가 용인을 했으니 말이다.

“그럼 소공작, 저는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그런 인사를 끝으로 나가자 카밀루스가 소파 근처로 다가와 팔짱을 끼며 이온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많이 크긴 했네, 그 녀석.”

“너한테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커지는 거 같긴 했는데…… 이번엔 너무 커져서 더는 주머니에 안 들어갈 거 같아.”

“어디 한번 보자.”

카밀루스가 한숨 섞어 대꾸하며 이온의 옆자리에 마주 보고 걸터앉았다. 그러고 싫다고 버둥거리는 욤뇽이를 데려가는데, 순간 손길이 스치자 이온이 입끝을 움칠했다. 약간 얼굴이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카밀루스는 이온의 반응을 알아차렸지만 욤뇽이의 작은 손을 들어 올려 살피며 건조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이 녀석은 성장도 하겠지만 몸에 축적된 마나가 많아지면 커지는 타입이라, 같이 있는 동안 내 마나에 반응을 한 모양이야.”

그가 살피는 동안 이온이 욤뇽이의 주름진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 크기면 앞으로 내가 데리고 다니기는 힘들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겠지?”

“뀨!?”

이온의 중얼거림에 카밀루스 역시 동조하자 욤뇽이가 목소리를 높이며 두 눈에 눈물을 쌓았다. 그러고는 두 손을 모아 꼭 쥐고 카밀루스를 올려다보았다.

“꾸우, 꾸!”

이온이랑 헤어지기 싫으니 어떻게든 해 달라는 애원이었다.

그렇지만 카밀루스도 욤뇽이가 커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욤뇽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튕기며 냉정한 한마디를 했다.

“원래 어른이 되려면 독립해야 하는 거야.”

“끼잉, 끼…….”

지적을 들은 욤뇽이는 금세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게 삐쳐서 왜 하필 카밀루스에게 갔냐.

이온은 등을 부들부들 떨며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한 욤뇽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며 생각하다가, 카밀루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욤뇽이는 그럼, 어른이 되면 뭘 할 줄 알게 되는 거야?”

“글쎄, 나도 이 녀석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짐작이 안 되네.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 녀석의 가능성만큼은 엄청나다는 거지.”

“꾸우욱…… 꾸.”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에도 욤뇽이는 딱히 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앞으로 이온이랑 같이 외출을 마음껏 못 하게 됐다는 것만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온은 자꾸만 낑낑거리는 욤뇽이의 작고 말랑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네가 말하는 가능성이라는 건 뭐야?”

“마나를 이만큼 빨아들일 정도면 엄청 강하지 않을까 짐작하는 것 정도야. 아니, 실제로 강하기도 하고, 이 녀석 나름대로 재주도 있으니까.”

욤뇽이의 재주라면 이온도 인정했다.

가끔 약물을 마셔 보지도 않고 구분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신령하게 굴 때가 있었다. 짐승인데 말귀도 밝고 말이다.

그렇지만 강하다니. 이전에 카밀루스가 지나가듯이 말한 적은 있지만 아직 욤뇽이가 마법을 쓰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터라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갔다.

‘머리에 있는 뿔로 들이받는 건 아닐 테고.’

이온은 욤뇽이가 머리에 돋아난 파란색 뿔로 재니스를 용감하게 무찌르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머릿속의 생각을 흩어 놓았다.

그건…… 역시 모양새가 안 좋았다.

그러면서 고개까지 마구 내젓던 이온은 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카밀루스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괜스레 제 머릿속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함에 이온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이온에게 도로 욤뇽이를 안겨 주었다.

얼떨결에 받아 들어 다시 녀석을 품에 들이는데, 카밀루스가 툭 물었다.

“이 녀석은 사실 핑계지?”

이미 네 목적은 다 간파해 버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대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에 이온이 나 괜히 왔냐고 묻는 듯이 눈치를 살피자, 카밀루스가 픽 웃었다.

“날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었어? 내가 네 아버지 말을 듣고 침울해져 있을까 봐 그런 건가.”

“……당연한 거 아니야?”

“왜 당연해?”

카밀루스의 반문에 이온은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야, 우리, 사귀는 사이니까.”

도대체가 왜 자기가 이거까지 알려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덜거림이 섞여 있는 말투였다.

대꾸를 듣고 카밀루스는 약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온은 그런 그를 보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너 설마 그런 짓까지 했는데 이런 쪽으로는 생각 전혀 안 해 봤어?”

이온의 말투는 다소 전투적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둘 사이에서 듣던 욤뇽이도 이온이 예민해졌음을 알아차리고는 불만 어린 눈빛을 카밀루스에게 쏘아 보냈다.

둘의 눈빛을 한데 받은 카밀루스는 왜인지 말문이 막혔다.

“아니, 나는…….”

운을 떼기는 했으나 뒷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온이 이렇게 쉽게 둘 사이를 어떤 형태로 규정 지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것도 사귀는 사이라니.

연인……이라니.

이온의 말을 한 단어로 줄인 뒤 입 속으로 곱씹어 본 카밀루스가 가슴 죄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애매모호한 대답을 들은 이온이 카밀루스를 흘기며 일부러 자극적인 표현을 쏟아 냈다.

“너 설마 좋아하는 사람 먹고 나면 싫증 나서 버리는 그런 쓰레기야?”

예상대로 쓰레기라고 매도당할 위기에 처하자 카밀루스는 발끈해서 바로 반응해 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절대 아니야.”

“그럼?”

“사귀는 거.”

이온의 반문에 마른 입술을 움직여 겨우 한마디 뗀 카밀루스가 잠시간 침묵했다.

이온이 눈을 크게 떠 빨리 문장을 완성하라고 재촉하자, 그에 못 이긴 카밀루스가 뒤늦게 덧붙였다.

“……진짜 맞아?”

문제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질문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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