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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60)화 (160/317)

“고작 기절하는 것만으로 결계가 왜 풀리지? 그것도 방에 쳐 놓은 결계면 아주 작은 범위만 감싼 간단한 결계일 텐데.” 

“그야…… 의식을 잃어서 아닙니까?”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페드로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카밀루스는 그런 게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결계의 기본은 당연히 시전자와 상관없이 따로 운용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유지를 위해 많은 무언가를 필요로 할 리 없다.

시전자의 의지나 시전자와의 거리 등에 영향을 받는 결계라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단지 마나의 흐름만으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마나의 흐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숨쉬기만 해도 형성이 된다.

그러니 그 간단한 결계를 더는 유지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라 하면 하나의 답밖에는 안 나왔다.

죽음.

더 이상 주변 마나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른 그것 외에는 고려하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 설령 가사 상태여도 사람 몸에선 계속해서 마나가 순환하고, 그 순환하면서 생긴 흐름이 주변을 떠도는 마나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재니스 정도의 강한 마법사라면 당연히 그 영향력도 클 테고.”

“……그럼 뭘까요?”

“결계를 제 의지로 끊은 것이거나.”

카밀루스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말 사이에 잠시 틈을 두었다. 순간 골이 지끈거리는 느낌이라, 그는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안 그래도 이온의 몸을 회복시키는 동안 심력의 소모가 상당했기 때문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또 복잡한 문제를 마주해 버렸다.

“…….”

“대공?”

“기절해 있는 동안은 지금의 이온과 같이 마나 순환이 불가한 상태가 되는 거야.”

카밀루스가 지금 한 말은 페드로의 귀에도 이상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그렇게 마나가 순환됐다 안 됐다 할 수 있는 겁니까?”

“글쎄, 상상은 안 되는군. 설령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고 해도 많은 문제가 생기겠지.”

단지 기절 조금 하는 문제로 끝날 리 없다.

본래 이온처럼 내내 마나가 흐를 수 없는 몸인데 어떤 방법을 이용해 강제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경우이든, 반대로 정상적으로 순환이 되는 몸인데 기절하는 동안 잠시 흐름이 끊기는 경우이든…… 현재의 이온처럼 많은 부작용에 시달릴 공산이 컸다.

그렇다면 재니스는 혹시 이온과 같은 저주에 걸린 건가. 선황이 가지고 있던 약물을 쓴 사람은 로제니아가 아니라 재니스였던 건가.

그럼 자신을 낳은 사람이 재니스일 가능성도 다시 대두되나.

‘하지만 나도 이온의 추론이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크레이거 공작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니 아닐 거라고, 카밀루스는 속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넌 네 어미를 참 닮았다.〉

무엇보다 선황이 자신을 보며 했던 그 말.

그 말이 방금 제가 떠올린 가정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황의 ‘그리움’의 대상은 재니스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제 옆에 언제든 불러들일 수 있는 인간을 굳이 싫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떠올려야만 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그러니 재니스가 자신을 낳았을 거란 가정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안 들어맞는 게 너무 많아진다.

“뭐가 이렇게 비밀들이 많고 복잡한 건지…….”

페드로의 중얼거림에 카밀루스도 피곤함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이라도 좀 풀려야 하는데 아직은 단서가 부족해.”

이렇게 답답해질 때면 계속해서 황성의 이름 없는 탑이 떠올랐다.

그 앞에까지 눈에 띄지 않고 가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만, 어떻게 해야 그곳을 둘러싼 이중 결계를 이상 없이 통과할 수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어차피 이온의 계획대로면 앞으로 내황성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니…….

‘그걸로 시간을 때우면 되긴 하겠어.’

다행이었다, 할 일이 일단 생겨서.

* * *

본래 소문이란 두세 다리만 건너도 금세 그 근원도 잊히고, 말 자체도 점점 변질이 되는 법이었다.

특히나 기억에 잘 안 남는 밋밋한 것은 소거되고, 쉽게 각인되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들만 남아서 와전이 된다.

그러니 중간의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자극적인 요소들을 섞다 보면 본질은 호도된다.

이게 바로 그 경우가 아닌가 싶었지만,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던 터라 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오랜만에 혼자서 식사를 하던 버니언은 제 시종장의 보고를 듣고서, 다소 히스테릭하게 느껴질 만큼의 짜증을 담아 물었다.

“누가 누구를 흠모해? 감히 어떤 놈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는 거냐?”

그러자 버니언의 옆에 서 있던 시종장, 브레히트 백작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며칠 전부터 돌던 소문이긴 했던 모양입니다만…… 어제 열린 무도회에서 조금 크게 화제가 된 모양입니다.”

그러자 입맛이 떨어졌다는 듯이 버니언이 식기를 탁 내려놓았다.

시종장은 이어서 나이프나 포크를 집어 던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입가를 냅킨으로 닦고 의자를 밀고 일어난 버니언이 시종장에게 명했다.

“그런 헛소문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들을 다 잡아들여서 벌하도록. 그리고 소문의 진원을 찾아내.”

그러자 안 그래도 작았던 시종장의 목소리가 더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폐하, 그게 어제 그 무도회는…… 가면 무도회 형식이었던 터라.”

“…….”

“다들 얼굴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그에 집무실로 돌아가려 발을 돌리던 버니언이 행동을 우뚝 멈췄다. 그가 하, 하고 실소를 내뱉더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듯이 음산한 목소리를 냈다.

“아, 그러니까 다들 얼굴이 안 들켜 누군지 모를 테니 내 어머니와 카밀루스 그 새끼가 불륜 관계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는 건가?”

“송구합니다, 폐하.”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해도 몸을 사리는 의미에서 시종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버니언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을 툭 던졌다.

“백작.”

“예, 폐하.”

“그럼 그 무도회 초대장을 받은 새끼들을 다 잡아들이면 되잖아. 그 새끼들 안에는 무조건 있을 테니까. 아니면 그 무도회 주최를 한 가문이 이 황실을 모욕하는 상황을 방기했으니 벌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무작위로 해 버리면 귀족들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폐하.”

“그럼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도는 걸 가만두라는 거야!”

버니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시종장의 허리는 더욱 깊숙이 숙어졌다. 그것은 주변의 다른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꽤 넓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순간 숨소리조차 가라앉은 정적이 찾아왔다.

숨이 막히는 상황이었으나 제가 꺼낸 말이니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하는 시종장은 조언을 이어 갔다.

“그래도 다행히 다들 잠깐 이야기하다가 말도 안 되는 걸로 결론이 났다고는 하니, 더 소문이 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더 번지지만 않는다면 그저 지켜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해지면 황태후궁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이 일에 폐하께서 칼을 직접 빼 드시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

버니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장의 말은 구구절절 맞기는 했다.

무작위로 잡아들였다가 귀족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따지고 보면 누구든 거짓이라는 걸 알 만한 헛소문인데 날뛰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당사자가 자신도 아닌데 괜히 황태후를 비호하다가 악명만 살 일임이 자명해서, 시종장의 말대로 관여하지 않는 게 어딜 보나 훨씬 나은 판단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신경이 긁히는지.

‘카밀루스 그 새끼가 연관돼 있어서 그런 거야.’

그냥 그 사생아 새끼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니까.

그리고 얼마 전 황태후궁에 들러서 그녀에게 황실도서관에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도 괜히 거슬렸다.

분명 별것 아닐 텐데…….

그렇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를 입힐 리는 없으니까.

간혹 아들을 절벽으로 밀어 내는 냉혈한 어미들도 있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닐 터였다.

혹여 무슨 야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버니언의 어머니는 아주 얌전한 사람이었다. 선황의 그늘에서 늘 조신하게 살아오며 딱히 정적을 만들지도 않았다.

‘마음이 약해서 카밀루스의 청을 들어준 것이겠지.’

제 어머니가 설마 카밀루스와 야합한다거나 하는 식의 의심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버니언은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뒤 시종을 돌아보며 요 며칠 매일같이 물었던 것을 또 물었다.

“그럼 됐고. 저번에 크레이거 가문에 보낸 내 편지에 대한 답은…… 아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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