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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63)화 (163/317)

“태후께서 이것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거군요.” 

황태후가 앞에 놓은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카밀루스의 말대로였다. 솔친 후작가에서 흘러나왔다는 예의 소문은 ‘비렌시움 대공이 후작가에서 어머니의 유품을 찾았다.’라는 내용이었다. 예의 유품이란 회중시계라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그 생김새가 어떠했는지까지는 이야기가 돌지 않았지만, 카밀루스가 현재 내놓은 것은 그녀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 엇비슷하게 생겼다.

회중시계는 척 봐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은 것이었고, 심지어는 별 장식도 없는 평범한 물건이었다.

다만 시계 자체가 몹시 귀한 것이니, 그 가치가 낮다고 볼 수는 없을 터.

눈을 살짝 내렸던 황태후가 다시금 카밀루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누구인가요?”

주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명백히 카밀루스의 어머니가 누구냐 묻는 것이었다. 카밀루스는 그에 답하지 않고 태연히 화제를 돌렸다.

“최근 노아기사단에서 제 뒤를 캐고 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듣자 하니 황제께서 기사단장에게 저의 어머니를 찾으라 하였다고요.”

이는 네 아들이 내 어머니를 찾고 있으니 당신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당연히 카밀루스의 지적이 무슨 뜻임을 알아들었을 태후는 입을 다물었고, 카밀루스는 편하게 제 거짓말을 위한 포석을 천천히 깔았다.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 말은 당신과 나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건가요?”

태후의 말투는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말은 그런 천박한 짓을 할 것이냐는 되물음일 뿐으로서, 버니언은 버니언이고, 자신은 자신이라는 투가 명확했다.

여기서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으면 아마 태후는 바로 이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는 카밀루스를 보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아주 곤란했으므로, 카밀루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태후 폐하.”

“그럼?”

“사실, 저도 알지 못합니다.”

“…….”

태후는 몹시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당장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치지 않았다. 귀족으로서 평생 몸에 익힌 교양이 그런 짓을 막아 준 덕이었다.

덕분에 카밀루스는 한층 더 편하게 이야기를 꾸며 내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태후 폐하께서도 들으셨을 겁니다. 선황께서 서거하시기 직전에 아이오딘으로 찾아와 다섯 명의 증인이 있는 자리에서 저에게 대공위를 내리셨지요. 한데 증인들이 오기 전, 저와 잠시 독대할 때에 선황 폐하꼐선 이것을 제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건네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뒤에 아무리 애원해도 어머니의 이름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요. 심지어 눈 감기 직전에조차.”

그에게서 나온 말은 왜곡된 과거였다. 그는 과거엔 존재도 하지 않았던 친모의 회중시계의 존재를 끼워 넣었다.

물론 난데없이 튀어나온 그 말을 듣는 태후로서는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그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이전엔 듣지 못하였어요.”

“나르바에스 단장은 신중한 자이지요. 이는 유언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이니 덮어 준 듯합니다.”

“아니요, 칼이 알고서도 덮었다니 믿기지 않아요. 그이가 가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칼이 지금껏 나나 버니언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 없어요. 대공, 난 당장 칼을 불러 진위를 확인할 수 있어요. 정말로 그 자리에서 대공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나왔다면 그녀의 이름이 뭔지 말하라 추궁할 수 있지요.”

태후는 현명하게도 그의 거짓말을 경계했지만, 카밀루스는 여유로웠다. 어차피 칼 나르바에스는 제 어미의 이름을 들었지만, 그녀가 누군지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장 불러서 추궁한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얼마 없었다.

‘그 자리에서 대공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지금 자신의 말과 모순되지 않을 것이기에, 카밀루스는 주저없이 덧붙였다.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사실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전부 다 허언에 불과함에도.

* * *

이 거짓말의 시작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황태후와의 스캔들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던 이온이 하고 싶어 한 말은 결국 어떻게 하면 이쪽을 지키면서 버니언을 고립시킬지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에게서 온갖 이야기가 전부 끄집어내졌다.

그간 서로가 알아낸 것들을 토대로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여러 단서들을 늘어놓은 채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화제 중 카밀루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어느 시점에 알릴 것인가는 꽤 중요한 화두였다. 미리 알려져 봤자 아직은 상대의 경계를 높이는 효과밖에는 없으니 일단은 숨겨야 한다는 의견은 둘이 일치했다.

사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입만 다문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 화제는 그대로 넘어가는 듯했다.

이후에 솔친 후작가에 두 번째로 찾아간 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에린이 예상대로 죽을 뻔했고, 뼈만 남은 채 움직이는 바실리스크를 발견했으며, 후작가로 되돌아왔을 때 살펴보니 에린이 중독 증상을 겪고 있었다는 이어졌다.

회복이 좀 어렵겠다는 카밀루스의 말에 에린의 일을 안타까워하던 이온은 안색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잠시 쉬겠다며 휴식을 가졌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한 뒤에야 다시 카밀루스의 방에서 모였다.

그때 이온이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카밀루스, 네 어머니의 회중시계를 구해 줄 테니 매일 가지고 다녀.〉

카밀루스가 솔친 후작에게 어머니의 유품을 찾으러 왔다는 이야기를 한 건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할 명분을 던져 주기 위함이었다.

시계라고 한 것도, 그 전날 이온이 에린에게 잠시 회중시계를 건넸다가 말았다는 것에서 착안한 말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대충 꺼낸 변명이라는 소리다. 그걸 뻔히 알 텐데 이온이 그런 말을 꺼내는 건 몹시 의외로웠기에 카밀루스도 처음엔 의문을 표했다.

〈애초에 없는 걸 어떻게 구하겠다고?〉

그에 이온은 여유롭게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언급을 했다.

〈예컨대 한 25년 정도 된, 적당히 평범한 걸로. 평민들은 구하기 어렵지만 그녀를 소중히 여긴 어느 높은 귀족이 하나쯤 던져 줄 만한 물건처럼 보이면 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듣고 나서야 카밀루스는 이온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온의 말인즉 가짜 회중시계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작된 가짜 회중시계는 하나의 표상이 퇼 터였다.

카밀루스가 그것을 들고 다니며 어딘가에 내보인다면,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카밀루스의 어머니의 존재를 누구나 쉽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허상.

〈그렇게 해서 가짜 실체를 만들자는 건가?〉

〈그래. 선황이 퍼트린 마녀의 아들이라는 소문 때문에 널 적통일 거라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당히는 알 것 같은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게 눈을 가리는 데 더 효과적일 테니까.〉

진짜 같은 가짜를 던져 준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진짜를 더 이상 떠올릴 수도 없게 될 거란 뜻이었다.

단, 진실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현재 카밀루스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은 총 일곱 명이었다.

카밀루스, 이온, 크레이거 공작와 더불어 칼 나르바에스, 페드로, 에렌스트 경, 크레이거 공작의 시종장까지.

이 중에서 이온과 카밀루스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사람이 하나 있었다. 칼 나르바에스.

〈그렇지만 노아기사단 단장은 문제가 안 돼. 진실을 알지만 말을 못 하니까. 그는 딜레마에 빠질 거야. 누가 봐도 비렌시움 대공의 어머니를 찾을 만한 단서가 명확하게 나왔으니 버니언이 그녀를 쫓으라고 할 텐데, 가짜란 걸 알면서 쫓아야 할 것인가 하는. 쫓자니 시간 낭비가 될 것은 뻔하고, 당연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단서를 찾을 수 없어. 그렇다고 쫓지 않자니, 버니언의 명령을 거부하는 셈이 되지. 그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끌릴 텐데, 버니언이 그걸 참아 낼 수 있을까?〉

이온의 질문에 대한 예상 답안은 하나였다.

‘참지 못한다.’

그 말은 곧 버니언이 칼 나르바에스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럴듯하네.〉

카밀루스의 동조에 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니 황태후가 부르면 시계를 보이고 와, 카밀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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