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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73)화 (173/317)

* * * 

카밀루스의 의외롭고도 놀라운 요리 솜씨 덕분에 에밀리의 일일 셰프 놀이는 순조롭게 끝났다.

물론 중간에 위기는 한 번 있었다. 카밀루스의 행방을 찾던 페드로가 난입해 앞치마를 입고 요리하는 대공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주책이냐고 핀잔을 두는 대신 이온을 한 번 보더니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이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대공은 공처가가 꿈이신가 보죠……?〉

그 말에 괜히 옆에서 듣는 이온이 다 움찔했었다. 그렇지만 페드로도 결국 잠시 뒤 카밀루스가 내민 음식 그릇을 다 비워 에밀리와 카밀루스를 뿌듯하게 해 주었다.

정말 놀랍지만…….

‘맛있었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식당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은 이온은 굴욕적이지만 인정하고 말았다.

특히나 고기류를 먹으면 속이 부대끼고는 했는데, 카밀루스가 다른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스테이크를 할 양고기를 레몬을 뿌린 끓는 물에 고기를 살짝 데쳤다.

그러고 나서 굽자 연한 육질에, 핏물과 기름기가 잘 빠진 스테이크가 완성되었다.

〈이런 방법도 있었네요?〉

에밀리는 저도 처음 보는 방법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부드러운 램 스테이크를 먹어 보고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었다.

그러자 이온의 옆에 앉아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주던 카밀루스가 누가 봐도 뿌듯해하는 어투로 설명했다.

〈지난번에 소공작이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지나친 기름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너무 로맨틱하세요, 전하…….〉

이온 때문에 생각해 본 방법이라는 이야기에 에밀리는 또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안 그래도 카밀루스와 죽이 잘 맞았던 에밀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단순한 동지를 넘어 그의 팬이 된 것 같았다.

이후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에밀리는 카밀루스를 칭찬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카밀루스를 부려먹을 다음 타이밍을 재기 위한 큰 그림인 것같이 보였다.

어쨌든 이온은 그 부담스러운 자리를 빨리 파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제 앞의 음식들을 해치웠고, 카밀루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뿌듯해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배를 채운 이온은 식사 자리에서 겨우 해방돼 도로 2층으로 올라갔다.

꿀 같은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갈 때였다.

* * *

이온은 카밀루스가 머무는 방의 문의 닫히자마자 소리쳤다.

“욤뇽아!”

“뀨우, 뀨!”

이온의 부름에 카밀루스의 방 안쪽에서 뒹굴고 있던 욤뇽이가 바로 화답하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온은 포르르 날아오는 욤뇽이를 품에 안았다가 카밀루스의 방으로 보냈을 때보다 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더 커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입을 벌렸다.

“……너 왜 이렇게 쑥쑥 크는 거야?”

“꾸?”

따라 들어온 카밀루스가 갸웃거리는 욤뇽이를 내려다보며 당혹스러워하는 이온을 소파 쪽으로 이끌며 대신 답을 주었다.

“저번에 말했듯이 그 녀석이 남의 마나를 빨아 먹고 사는 녀석이라 그래.”

이온은 권유에 따라 일단 소파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제 옆에 자리를 잡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크다 보면 금방 성체가 될 수도 있겠네?”

그럼 평소에도 예전에 잠깐 봤던 그 어른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걸까.

그 정도까지 크면 밖에 내다 놓고 키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와중, 카밀루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해 왔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렇게까지는 안 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왜?”

“이 녀석, 이렇게 남의 마나를 빨아먹으면서도 자기가 정확히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거든. ……설마하니 비행 수단은 아닐 거 아냐. 만약 그런 거라면 엄청난 비효율인데.”

“그렇지?”

종종 구슬을 토해서 신비한 광경을 보여 주는 것만 봐도 욤뇽이는 평범한 존재가 아닌 게 분명했다.

이온도 이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몇 번 시스템한테 알려 달라고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뜨는 건.

[욤뇽이(가명)

나이 : ??세

직업 : ??

특이 사항 : 화이트 드래곤.]

……라는 물음표 가득한 정보창 정도였다.

아마 ‘이온 크레이거’가 욤뇽이에 대한 정보는 쌓아 두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지금의 자신도 이 녀석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드래곤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온이 난처해하는 얼굴로 품에 얌전하게 안겨 있는 욤뇽이의 물빛 눈동자를 내려다보는데, 카밀루스가 다소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여태껏 문제없었다고 하지만 그 녀석이 사실은 마수이거나 누군가의 사역마라고 하면 좀 골이 아파지는 문제인데…….”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쿠키 하나가 불쑥 내밀어져 욤뇽이의 시선을 빼앗아 갔다.

“드래곤님을 그렇게 흉악한 존재로 생각하시는 건 대공뿐이실 겁니다.”

눈이 돌아간 욤뇽이가 이온의 품에서 쏙 빠져나가 입부터 들이대 쿠키를 와삭, 무는 것을 따라 눈을 돌리니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페드로.”

“이 용안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냉정한 생각을 하시는지.”

“꾸꾸!”

욤뇽이를 쿠키로 유혹한 페드로가 데려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욤뇽이가 하얗고 주름진 배를 드러내 보이더니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저 녀석, 자존심도 없네…….’

며칠 사이 페드로와 가까워진 모습을 본 이온은 제 자식을 빼앗긴 느낌이라 왜인지 울컥해 버렸다.

그렇지만 페드로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욤뇽이를 안쪽으로 데려가 재우려는 의도임을 곧 알아차리고, 적당히 납득한 이온은 카밀루스를 돌아보았다.

“근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 카밀루스?”

카밀루스는 페드로가 중문을 열고 욤뇽이를 안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며 팔짱을 꼈다.

“근거가 없다는 게 가장 크지.”

“무슨 근거?”

이온은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물었다. 카밀루스는 예상대로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저 녀석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온은 충분히 이해했다. 이전에 자신도 욤뇽이한테 대놓고 물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넌 정체가 대체 뭐야?〉

그러고 엄마 아빠가 있느냐고 물었다가, 욤뇽이가 울음을 터뜨려 버려서 의문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로 생각 없이 한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욤뇽이의 존재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의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드래곤이 환상의 동물일 뿐,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온은 카밀루스의 말을 듣다가 안쪽의 눈치를 살피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런 말 괜히 앞에서 잘못하면 욤뇽이 울어…….”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바뀌지 않아.”

이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와 관련한 부분에 있어 한없이 관대한 카밀루스는 그 외의 부분에서 상당히 냉정한 구석이 있었다.

계속 데리고 있었으면서 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러는 면은 특히나.

그렇지만 그의 가정이 완전히 틀렸다는 증거 또한 없는 바라, 이온은 괜스레 불안해져 왔다.

이온의 얼굴에 고민의 기색이 비치는 것을 발견한 카밀루스가 이온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흐트러뜨렸다.

“뭐,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아직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니까.”

“아직은?”

“녀석의 마나 수용 수준을 봤을 때라는 의미야. 어느 정도 주입하면 성체가 되는지 대강 알고 있으니까.”

“…….”

그러나 대강이라는 건, 카밀루스 역시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와 같기는 했다.

그런 미지의 구석이 있으니 그도 방금 전과 같이 경계의 말을 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에 이온이 더 할 말 없냐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나 카밀루스는 더 이상 이렇다 할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시 중문을 통해 조용히 나온 페드로에게 고개를 까딱해 책상 쪽을 가리켰다.

“성전과 탑에 대한 자료를 가져와, 페드로.”

욤뇽이를 데려갈 때까지만 해도 장난기가 가득했던 페드로는 카밀루스의 명령을 받자 금세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곧 그가 카밀루스의 책상 안쪽으로 가더니 잠겨 있던 서류함을 열어 몇 개의 종이 뭉치를 가지고 돌아왔다.

성전과 탑에 대한 자료라니. 이온이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것을 받아 든 카밀루스가 종이들을 휙휙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네 말대로 모든 열쇠는 탑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내가 녀석을 처음 본 곳도 탑이니, 그 녀석의 정체도 이곳에 가면 단서가 나올 가능성이 있겠고.”

카밀루스가 서류를 훑어보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자 옆에서 지켜보던 페드로가 작게 그를 불렀다.

“대공.”

중요 자료를 이온에게 보여도 되겠느냐는 물음이 그 한마디에 축약되어 있었다. 카밀루스는 가볍게 넘겼다.

“괜찮아. 이온에게 숨기고 싶은 건 없으니.”

“혹시 황실도서관에서 중요한 자료라도 발견했어?”

페드로의 반응에서 대충 상황을 파악한 이온이 그리 묻자 카밀루스가 조용히 눈웃음만 지었다. 그렇다는 의미였다.

이온과 카밀루스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서류가 던져졌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어느 건물의 설계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자료에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는 이곳을 찾아가 봐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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