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이온의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곧장 안심할 수 있었다.
“……뭐야? 왜 열쇠까지 따고 들어와.”
카밀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두려워서 문의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이온은 몸을 옮겨 문틈 사이를 살폈다.
창문을 꼭 닫아 놓아서 빛 한 줄기 없는 터라 안쪽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보이는 범위 내엔 카밀루스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이온의 방과 달리 카밀루스가 머무는 방은 침대가 안쪽에 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방에 들어서기 전에 이온이 어둠을 향해 작게 물었다.
“저도 들어가도 되나요?”
페드로에게 물어야 할지 카밀루스에게 물어야 할지 애매해서 어설픈 존대가 나왔다. 한데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그러고 보면 방금 카밀루스가 한 말에도 딱히 페드로가 답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이온이 입술을 씹고 있는데, 한 박자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다름 아닌 페드로 쪽에서.
“들어오셔도 됩니다, 소공작.”
“페드로.”
페드로의 목소리엔 명백한 화가 배어 있었고, 카밀루스는 왜 그러냐는 듯이 그의 이름만 나직이 불렀다.
그에 이온이 방 안에 들어서려고 하자, 뒤에서 묵묵히 있던 에렌스트 경이 갑자기 팔목을 잡아 그를 저지했다.
“지금은 안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도련님.”
“왜…….”
에렌스트 경은 뭔가를 느낀 걸까. 잡은 팔을 제 쪽으로 당기며 빈약한 이유를 덧붙였다.
“서로 주무실 시간이신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내일 아침에 뵙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치고 에렌스트 경의 손길이 꽤 완고했다. 덕분에 안쪽에 뭔가 있구나 더욱 확실하게 깨달아 버린 이온은 그의 손을 밀어 내 버렸다.
이온이 안쪽으로 들어서자 결국 한숨을 쉬며 에렌스트 경이 따라 들어왔다.
방이 넓기는 해도 전부 오픈된 구조라 당연히 얼마 안 가 침대 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시력을 잃었던 해프닝 때문에 밤눈이 어두운 이온이었다. 시각보다는 후각이 먼저 열렸다.
침대 앞으로 갈수록 은은하게 코를 찌르는 향이 있었다. 그러나 결코 기분 좋지는 않은, 또한 일상적으로 맡을 수 없는.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이온의 발이 급해졌을 때 정강이 쪽에 뭔가 부딪혀 순간 다리가 확 꺾였다.
“아, 윽!”
신음을 흘리자마자 옆이랑 앞에서 동시에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련님.”
“이온!”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혔다 보니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본능적으로 앞을 짚은 손으로 더듬어 보니 낮고 등받이 없는 의자였다.
그러는 사이 에렌스트 경이 이온의 어깨를 붙잡아 비틀거리느라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잡아 주려 하는데, 성큼성큼 다가온 발소리에 이어진 더 완고한 힘이 이온의 몸을 끌어 갔다.
기대는 감각도, 훅 끼쳐 오는 체향도 너무나 익숙했다. 카밀루스였다.
그렇지만 제 어깨를 감싼 떨리는 손과 체향에 섞인 기분 나쁜 냄새에서 위화감을 느낀 이온은 숨이 턱 막혔다.
“저기, 카밀루스. 불 좀 밝혀 줄래……? 너무 어두우니까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보여서.”
아픈 다리 덕분에 다행히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머리는 잘 돌아갔다. 하지만 이온의 요청을 카밀루스는 꽤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온, 지금은 돌아가. 내가 아침에 찾아갈 테니까. 응?”
“불, 켜 줘.”
“…….”
자세히 들어 보니 카밀루스의 숨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안정되지 못하고 조금 더 거칠었다.
카밀루스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자 그의 뒤에서 페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 제가 켜겠습니다.”
그리고 카밀루스가 말릴 새도 없이 곧바로 침대 옆 협탁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촛대에서 불이 돋워졌다.
그렇게 시야가 밝혀진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이온은 눈을 잠시 감았다. 겨우 각오를 하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는, 난처해하는 얼굴의 카밀루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엉망이 된 방 안의 풍경이 시야에 비친 건 그다음이었다.
“꾸우…….”
페드로의 품에 안긴 욤뇽이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며 낑낑거리고 있는 게 보인 것도.
이온은 저를 감싼 카밀루스의 팔을 밀어 내며 안쪽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방에 들어올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 했는지 흐트러지고 구겨져서 방바닥에 떨어진 침대 시트, 떨어진 칼, 그리고…….
그리고 근처에 흩뿌려진 피와 안쪽이 시뻘겋게 물든 나무 들통까지.
아까부터 제 코끝을 자극했던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다. 피 냄새.
이온은 마치 살인 사건이라도 난 것 같은 그 광경이었다. 에렌스트 경도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는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온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려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카밀루스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그러자 카밀루스가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미치겠네, 라는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게 아주 명백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카밀루스의 입술이 새하얀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제가 아플 때처럼 말이다. 안색도 허여멀건 게, 진짜로 환자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답이 돌아오지 않자 이온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뭐냐고! 대답 안 해?”
그에 카밀루스가 페드로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제게 집중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울컥한 이온이 카밀루스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시선을 끌었다.
“대답 안 하냐고.”
“…….”
카밀루스에게선 한숨만 흘러나왔다. 그에 이온은 제가 알아서 답을 찾겠다는 듯이 침대 근처로 걸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흐트러진 침대 시트를 들쳤다. 그리고 꽤 많은 피가 담겼던 듯 안쪽이 푹 젖은 통을 보고 이온은 참지 못해 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빈 속인데도 토가 쏠리는 듯한 기분에 이온이 서둘러 입을 막으며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다 어금니를 악물었다.
꽤 피를 많이 흘린 게 정황상 분명한데, 그 많은 게 전부 증발이라도 한 듯이 전부 말라 붙어 있었다.
이온은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단지 추측이 아니었다. 확신했다.
다시 카밀루스의 앞으로 돌아간 이온이 손을 내밀었다.
“네가 가지고 있지? 보여 봐.”
이온의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밀어진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 카밀루스는 저보다 훨씬 작은 이온을 내려다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온.”
“왜? 문제가 있어? 어차피 나한테 줄 거였잖아.”
물론 이런 상황에서 건네리라고 예상한 건 아니었겠지만.
왜인지 그가 어떤 계획이었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마 똑같은 목걸이를 만들어 놓고서 자는 사이에 바꿔치기를 하려고 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들켰겠지. 제 빌어먹을 시스템이 그에 따라서 사망 확률을 조정해 줬을 테니까.
그럼 자신은 그를 추궁도 하지 못하고 미안해만 하게 됐을 터였다. 하여 이온은 차라리 이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이온이 카밀루스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자, 카밀루스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끝내 이온이 요구하는 걸 내보이지는 못했다. 대신 그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다.
“……잘못했어, 이온.”
“결국 잘못한 일을 했다는 거네.”
“…….”
“그런데 나한테 안 들켰으면 평생 반성 안 했을 거지, 너.”
이온의 날 선 일침을 카밀루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전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온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날려 버렸다. 짝,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싸늘하게 갈라 버렸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정적.
그 속에서 카밀루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맞은 뺨이 아팠기 때문이 아니었다.
거친 숨을 한 번 들이켠 이온이 눈물을 툭 떨어뜨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미처 제어하기도 전에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것에 이온도 당황해 서둘러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러고 아무 말 없이 카밀루스의 옆을 지나갔다. 카밀루스가 급하게 손목을 잡았다.
“이온, 잠…….”
잠깐, 하는 짧은 한 마디조차 완성하기 전에 이온이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탁!
거칠게 쳐 내는 손길에 카밀루스가 움찔하는 사이, 이온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고는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에렌스트 경이 급하게 도련님, 도련님 하고 그를 부르며 뒤쫓아 왔지만 제 방에는 혼자 들어가 바로 문을 잠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이온은 제 침대까지도 걸어가지 못한 채 문에 기대어 힘없이 몸을 무너뜨렸다. 주르륵 흘러내려 그대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천장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온의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 대신 가빠진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있는 어둠이 가득 찬 이 공간이, 작은 지옥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