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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96)화 (196/317)

* * * 

삭삭삭삭삭, 삭삭.

잠들어 있던 이온은 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 반짝 눈을 떴다.

창문 밖이 아직 어두웠다. 아침이 맞기는 한 건가.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떠오르니 아직은 시간 감각은 없었다.

이온은 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카밀루스를 확인하고는 아직도 삭삭, 소리가 들려오는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살짝 거두어 낸 이온은 이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욤뇽이가 제 손톱으로 발코니 문의 유리를 긁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긁던 행동을 멈춘 욤뇽이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자, 이온은 활짝 웃으며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찬 바람과 함께 오랜만에 이온의 방 안에 뛰어든 욤뇽이가 곧장 이온의 품에 폴짝 뛰어들었다.

이온은 새끼 드래곤을 무심코 안았다가, 카밀루스에게 보냈을 때보다 작아진 욤뇽이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가, 왜 작아졌어?”

“꾸우…….”

카밀루스 옆에 있으면 착실하게 잘 클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담아 보고 있으니 욤뇽이가 고개를 삭 돌리는 것이었다. 이온은 녀석의 시선을 따라 제 고개를 돌렸다가 그 끝에 카밀루스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카밀루스 때문이구나.

이온은 욤뇽이의 고자질에 또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카밀루스가 자기 전에 제 화를 풀려고 열심히 엉켜 온 덕에 침울했던 마음은 조금 가셨지만, 욤뇽이의 고자질을 들으니 역시나 화가 몰려왔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새벽빛에 반드르르하게 빛이 나는 욤뇽이의 비늘을 쓰다듬던 이온은 왜인지 카밀루스가 잠든 침대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아, 그 대신 집무실 쪽으로 향했다.

침실과 집무실을 가르는 간벽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테이블 및의 간식 상자를 꺼냈다.

새벽녘에도 쿠키를 보자마자 눈을 빛낸 욤뇽이가 얼른 테이블 위로 올라가 쿠키 하나를 두 손으로 꼭 쥐고는 아삭 깨물었다.

그동안 방 안의 촛불에 불을 켠 뒤 소파에 앉은 이온이 욤뇽이를 도로 품에 안으며 물었다.

“갑자기 왜 왔어, 응?”

“뀨.”

오랜만에 쿠키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욤뇽이가 작게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쿠키를 빠른 속도로 꿀꺽하더니 입에서 무언가를 앙, 하고 토해 냈다.

입에서 파란 기운이 일렁거리는 작은 구슬을 꺼낸 욤뇽이가 두 팔로 그것을 안은 것을 보며 이온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아주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구슬이었다. 예상대로 신비한 빛이 나는 그 구슬을 욤뇽이에게서 건네받자 시스템창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화이트 드래곤으로부터 ‘기억의 구슬’을 습득했습니다.]

예상대로의 물건이었다.

이온이 물빛 눈을 빛내며 저를 올려다보는 욤뇽이에게 질문했다.

“갑자기 이걸 주는 이유가 뭐야?”

“꾸, 꾸우.”

욤뇽이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했다. 다만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대충 눈치로 때려맞출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보기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온은 하는 수 없이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놨던 구슬을 욤뇽이가 건드릴 수 있도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욤뇽이가 예의 구슬에 두 손을 대고 작게 끙끙대다가 흰빛이 새어 나왔다.

[화이트 드래곤의 마나에 ‘기억의 구슬’이 반응합니다.]

그 메시지가 뜬 순간 이온은 함께 그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둘 사이에 영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처음엔 어둠만 비칠 뿐이라 무언지 몰랐던 이온은 이내 영상에 비치는 모습이 욤뇽이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를 달리고 있던 욤뇽이가 돌담 같은 곳에 올라선 순간, 이온은 그 장소가 어딘지 알게 되었다.

그곳은 어느 높은 곳의 창문이었다. 그것도 내황성과 그 너머가 한눈에 들어오는.

황성을 이렇게 부감하는 구도로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온은 적어도 오브라이언의 황제가 머무는 태양궁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 명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옥상에 거대한 태양을 조각해 낸 건물. 그것을 보던 이온은 입술 사이로 신음처럼 짧은 한마디를 흘렸다.

“탑……?”

“꾸꾸!”

의문을 담아 작게 흘린 그 소리를 듣고 욤뇽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추측이 맞는다는 소리였다. 이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황성의 이름 없는 탑.

카밀루스가 갇혀 있던 바로 그곳.

이온은 곧 욤뇽이가 제게 무얼 보여 주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카밀루스와 욤뇽이는 바로 그 탑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주 먼 과거에 대해서 알려 주고 싶은 거였다. 카밀루스가 그 탑에 갇혀 있던 어느 시절의 일을.

구슬을 올려 둔 이온의 손이 살짝 떨렸다. 설마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던 이온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영상에 비치는 게 황성의 탑이라는 걸 인식한 순간 어쩐지 속부터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그에 이온은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잠깐, 잠깐만, 욤뇽아.”

“꾸?”

갑자기 멈추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온의 말이 의아스러웠는지 욤뇽이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그렇지만 이온의 말에 순순히 따른 욤뇽이가 구슬에서 손을 떼고 빛을 살짝 잦아들게 했다.

이온은 저를 큰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는 작은 생명체를 꼭 안으며 속삭였다.

“그게, 내가 이걸 보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꾸…….”

이온의 이런 말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욤뇽이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말을 못 하는 욤뇽이야, 가끔 몸으로 이래저래 표현하는 것 외에는 이런 걸 통해서밖에는 제 의사를 전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자리에서 욤뇽이가 이온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밀루스의 방에서 몰래 건너왔겠지.

대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언지 전혀 예상은 안 되지만, 욤뇽이가 꺼낸 이 기억에 무언가에 대한 꽤 중요한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

이온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면 못 볼 것일지도 모르고, 회피해 봤자 저만 손해일 것 같았다.

결국 용기를 낸 이온은 다시 욤뇽이 앞에 구슬을 내밀었다. 허락의 뜻을 알아들은 욤뇽이는 이온과 한 번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녀석이 다시 구슬에 손을 댔다.

영상은 이전에 멈췄던 부분부터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보니 첫 부분에 나오는 어두운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되었다.

욤뇽이가 탑의 외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던 터다.

인식하고 나니 좀 더 집중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온은 역시나 속이 좀 불편해지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끊지 않았다.

과거의 일. 자신이 알아야 하고, 알고 싶은 그 시절의 일이다.

욤뇽이가 보여 주려는 이 장면은 제 기억과는 관련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탑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알아 둬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곧 탑의 바닥에 폴짝 뛰어내린 욤뇽이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인지 시야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얼마 안 가 어두운 내부의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위층의 모습이 펼쳐진 순간 이온은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 참고 본 영상 안에는 어린 카밀루스가 있었다.

창문을 통해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어두운 방의 한구석에 지친 듯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아이.

이온의 기억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팔과 다리에 무거워 보이는 금제가 달려 있었는데, 그때와 달리 아이는 조금 더 작고 어려 보였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진 것처럼 어린 카밀루스가 축 늘어져 있는 돌바닥에는 잡기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채였다.

〈너…… 또 왔어?〉

욤뇽이가 다가가 손을 톡 건드리자 기절한 줄 알았던 카밀루스의 눈꺼풀이 살며시 들어 올려졌다. 그러고 입에선 기운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뒤 바닥을 손으로 짚고 상체를 일으키는데, 아이는 그마저도 힘겨운지 단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온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에 카밀루스가 한 말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너한테 줄 마나가 전혀 없는데…….〉

〈꾸우?〉

〈거짓말 아니야.〉

이온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낡은 옷 아래로 살며시 비치는 가는 팔은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채 다 아물지 않은, 어딘가에 베인 듯한 날카로운 상처.

그는…….

〈마나석이라고 알아?〉

그곳을 통해 제 온몸의 피를 다 뽑힌 것일 터였다.

욤뇽이가 고개를 갸웃갸웃하자, 카밀루스가 눈에 띄게 떨리는 손을 뻗어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는 듯하더니 한마디 했다.

〈그 이상한 돌을 만든다고, 다 써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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