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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99)화 (199/317)

그것은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꽤 사실적으로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모사가가 묘사해 낸 그 작은 레갈리아는 크기만 작다 뿐이지, 실제 레갈리아와 비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섬세한 장식이 되어 있었다. 

파란 보석이 기둥이 받치는 홀 전체에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더하여 볼록한 왕관처럼 둥근 형태의 홀의 꼭대기에는 진주처럼 둥근 형태의 투병한 보석이 얹어진 채였다.

그것은 역시나 푸른 계열이었는데, 홀의 아래쪽을 꾸민 진한색 보석과 달리 아쿠아마린처럼 맑은색이었다.

기실 그림만 봐서는 과연 얼마나 현실적으로 묘사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아마 그림으로 다 담아내지 못한 아름다움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보석이 품은 반짝임이 그 안에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그림을 통해 미아블레 가문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이 작은 레갈리아가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는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가치가 있을 텐데, 기둥과 홀의 형태를 잡고 있는 금보다도 그 위에 세공된 보석들이 더 눈을 사로잡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해서, 흔한 반지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이 물건은 꽤 수상해 보이는 것이 분명하기도 했다.

사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기는 했다.

“이건 황제의 레갈리아와 묘하게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

카밀루스가 의문을 제기하자 이온은 그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색깔만 다르긴 한 거 같지.”

황제가 대관식 때 물려받는 레갈리아는 보통 홀의 꼭대기엔 다이아몬드가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주변부의 장식은 꽤 여러 색깔의 보석을 섞어서, 각도에 따라서 다른 빛으로 빛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아블레 가문의 후계자에게 내려온다는 이 레갈리아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오브라이언의 황제가 물려받는 레갈리아와 모양새는 얼추 비슷하지만, 전부 파란색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게 좀 달랐다.

황제의 레갈리아와 미아블레 가문의 이 작은 레갈리아. 선후 관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황제의 레갈리아를 베꼈다면 그것만으로도 미아블레 가문을 멸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줄 테니, 미아블레 가문의 레갈리아가 먼저일 거라고 추측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인 일일 터였다.

이온이 제 생각을 딱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카밀루스 역시 선후 관계를 그렇게 파악한 모양이었다.

“……블랑셰를 기리는 의미에서 황실의 후계자에게 건네는 레갈리아를 이 레갈리아와 똑같이 만들었다면.”

블랑셰라는 게 과연 어떤 동물인지, 그리고 그 실체가 있기는 한 건지는 몰라도 초대 황제를 위시한 오브라이언의 첫 번째 왕조에서는 분명 성전을 꽤 중시했었다.

황실의 모든 큰 행사를 성전을 중심으로 치렀고, 기념일마다 블랑셰에게 감사를 올리고 그를 기리는 의식을 치렀다 한다.

이제 와 그 짙은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전마저 황성 내에 있었다는 흔적만 남았을 따름이니, 그건 전설 속 이야기와 같은 것이 되어 버려 이온에게는 크게 체감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귀족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서도 오브라이언의 역사를 가르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언급하는 부분 중 하나이니, 굳이 첫 왕조에서 실제로 그랬는지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일 터였다. 괜히 의심해 봤자 힘만 빼는 일이다.

다만 블랑셰와 성전에 관련된 기록들은 현재 민간엔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터라 이온은 카밀루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황실 도서관에 보관된 기록에서 레갈리아와 관련된 건 찾기 힘들어?”

카밀루스는 미아블레 가문의 레갈리아에서 그만 시선을 떼고 무겁게 주억거렸다.

“적어도 내가 본 파트들에서는 나오지 않았어.”

“뭐, 미아블레 가문의 이 레갈리아 같은 경우에는 그냥 상징물일 뿐일 가능성도 꽤 높으니 레갈리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까지는 딱히 알아볼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뒤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지?”

카밀루스의 지적에 이온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미아블레 가문에만 남아 있는 기록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문제는 미아블레 가문이…….”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차마 꺼려져 이온이 말끝을 흐리자 카밀루스가 그가 하려던 말을 대신 읊었다.

“로제니아 황후가 자살해 죽은 이후로 후작은 물론 그 후계자도 사교계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가, 가문 전체가 완전히 칩거했다는 데에 있겠군.”

“……그래.”

아무리 그래도 제 어머니인데 로제니아 황후의 자살을 언급하는 카밀루스의 표정은 마치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듯 썩 건조했다.

살면서 온갖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왔던 그이기에 그런 사실 정도에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온은 차마 겉으로 티 낼 수는 없었지만, 그런 그의 덤덤함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도 안타까움과 별개로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미아블레 가문의 황도에 있는 저택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긴 하지만, 벌써 몇 년은 버려졌어. 자기네들 영지로 가서 칩거해 버렸으니까. 황도에 있는 저택은 하인들 몇몇만 남아 있는 상황이고.”

“인원이 적으면 몰래 들어가기는 상당히 좋겠어.”

“……아무리 그래도 대공의 체면이 있지, 도둑처럼 들어가려고?”

“체면이 문젠가? 지금 그들의 협조를 얻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만약 성전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면 당장 송년 연회가 열리기 전에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음…….”

“성전에 대해 알아냈는데 만약에 후속으로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어떡할 거지? 예를 들어서 이 작은 레갈리아를 손에 넣어야 한다든가.”

이온은 작게 앓는 듯한 신음을 뱉었다. 카밀루스의 지적은 꽤 일리가 있었다.

황실 주최의 송년 연회까지 아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황태후궁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퍼진 데다, 매년 열린 연회의 일정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 이맘때쯤 초대장이 뿌려졌다.

보통 한 달 전쯤 뿌려지는 것을 감안하면, 당장 오늘 내일 초대장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

하여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아블레 저택에 잠입을 하겠다 하면, 다음으로 걱정이 되는 건 어떻게 들어가느냐였다.

“몰래 들어갈 방법은 있어?”

“뭐, 들어갈 때 하인들의 눈을 피하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겠지.”

“기록 찾는 데 오래 걸린다고 하면? 서재에 누가 드나들 수도 있는 일이잖아. 두 번이나 찾아갈 요량은 아닐 거고…….”

들킬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작전이었다. 물론 에렌스트 경이나 페드로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 그들에게 시켜도 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즉시 가치 있는 자료와 가치 없는 자료를 구분할 수 없을 테니 결국 그들이 직접 가는 게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자료를 잔뜩 들고나왔다가 돌려놓는 번거롭고 위험한 짓을 하는 것보다는.

그런데 카밀루스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이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온, 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해?”

“응……?”

이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네가 하는 걱정은 다 쓸모가 없어. 저택에 들어가는 것 정도는 나한텐 너무 손쉬운 일이니까.”

“……아.”

“정확한 저택 구조도만 있다면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아. 순간 이동 마법을 쓰는 거야 나한텐 숨 쉬는 일만큼이나 쉬우니까. 그리고 들어간 뒤에는 저택의 하인들을 잠재우면 그만인 일이고. 안 그래?”

그렇지, 얘 마법사였지?

마나 주입하는 것 이외에는 최근에 그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놓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예의 순간 이동 마법을 쓰는 걸 눈앞에서 본 적이 있음에도.

“그러고 보니 평소에는 왜 순간 이동 마법 안 써?”

“같이 다니는 사람들 배려할 겸, 그런 걸 막 쓰고 다니면 너무 눈에 띄니까. 의심을 덜 받아야 지금처럼 필요할 때 적절히 쓸 수 있을 거 아니야.”

이온은 그의 안배에 새삼 놀랐다. 그런 것도 신경 쓰는구나 싶어서.

어찌 되었든 방법이 적당히 정해졌으니 남은 건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었다.

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 구조도는 내가 알아서 입수해 볼게. 그 정도는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러니 남은 일은…… 네 몸이 회복되는 것뿐이겠네.”

이온이 뒷말을 덧붙이며 슬쩍 눈치를 주자 카밀루스가 찔리기는 하는지 실없이 웃었다.

“네가 저기 침대 위에 날 뉘어 놓고 열심히 간호해 주면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온?”

일은 제가 저질러 놓고 간호 운운하는 그의 말에 조용히 미소 짓던 이온은 대답 대신 제 옆의 소파 쿠션을 그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베개로 한 번 맞은 뒤 면역이 생겨 버린 카밀루스가 능숙하게 받아 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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