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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빠져나간 마나가 다 회복된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금세 들켜 버린 카밀루스는 다음 날까지도 거의 하루 종일 이온의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제 나름대로는 이온을 배려한 하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카밀루스는 억울해했으나 이온은 미아블레가의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한마디도 안 하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국 그런 투정―과연 이런 귀여운 표현으로 명명해도 될지는 의문이지만―마저 자신을 걱정해서 부리는 것인 터라 카밀루스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저녁의 일을 위해 낮에 실컷 자던 이온을 깨우며 생긋생긋 웃고 있었다. 그러고 이온을 안은 채 이슥한 밤, 미아블레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자박…….
카밀루스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그들이 저택의 지붕에 착지했다.
함께하는 인원은 이온과 카밀루스, 페드로와 에렌스트 경까지 네 명이었다.
일이 일이니만큼 인원이 많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 데려오는 건 부담이라 이 선에서 타협했다.
에렌스트 경이 우선 지도를 꺼내 살피며 설명했다.
“총 여섯 층인데 후작의 방은 1층에 있습니다. 집무실과 침실이 연결된 형태군요…….”
그러고 제가 선 위치를 가늠하는 듯 몇 걸음 조심조심 옮기다가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방은 대략 이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카밀루스가 그에 에렌스트 경의 위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이온은 그런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만 파악해도 괜찮겠어?”
“뭐, 적당히.”
미아블레 저택에 사전 답사는 오지 못했다. 애초에 주인 없이 하인들만 있는 곳에 들어갈 명분이 없었으니까.
문제는 카밀루스의 순간 이동은 공간 지각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거였다. 정확한 위치를 짚는 게 아니면 발동되기 힘든 모양이었다.
카밀루스가 아래쪽의 상황을 확인하다가 중얼거렸다.
“저택 안쪽의 불이 꺼지면 들어가자.”
이온이 알겠다며 가볍게 답했다. 수면 마법을 쓰더라도 진짜로 잘 법한 때에 써야 의심을 덜 살 테니 말이다.
몇몇 고용인들이 남아 관리 중이라고는 하지만, 황도에 있는 미아블레가의 저택은 생각보다 유지가 잘되어 있었다..
저택의 일원인 담장 안쪽은 잔디를 잘 깎아 두고, 눈도 깨끗하게 치워 둔 것이 보였다. 심지어 이온과 카밀루스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집사로 보이는 이가 저택 앞으로 나와 주변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때, 이온의 망토 밑에서 욤뇽이가 얼굴을 슥 내밀었다.
“꾸…….”
저택 안쪽을 바라보는 욤뇽이의 물빛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중이었다. 이온은 녀석을 다시 옷깃으로 감싸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제게 삐쳐서 침대 밑에 숨어 있었을 때는 언제고, 미아블레가의 저택에 간다는 이야기에 자기도 가겠다며 몇 시간을 찡찡거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온은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 아기 드래곤의 존재가 성전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하고.
‘그래도 설마 전설의 동물이 얘는 아니겠지.’
오브라이언을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전설의 동물 블랑셰. 그렇게 생각하기엔 욤뇽이가 너무…… 너무 위엄이 없었다.
욤뇽이가 들으면 또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눈물을 흘릴 이야기를 이온은 아무렇지 않게 떠올리며 품에 도로 넣으려고 하는데, 지켜보던 에렌스트 경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도련님, 그……건 대체 뭡니까?”
과연 사물처럼 ‘그거’라고 지칭해도 되는지 몹시 꺼림칙한 듯 에렌스트 경이 그리 물었다.
사실 저번에 봤을 때 페드로가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 따로 묻지 못했는데, 오늘 또 보고서는 이 질문을 참지 못했다.
그에 이온이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냈다. 그러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데 페드로가 대체 언제 준비한 건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의 쿠키를 욤뇽이의 입에 쏙 넣어 주며 설명했다.
“신령하신 아기 드래곤님이십니다. ……데리고 있기 힘드시면 제가 안을까요, 소공작?”
이온은 왠지 모를 부담감을 느끼며 사양했다.
“괘, 괜찮아요.”
이렇게 쿠키를 맛있게 먹는 신령한 존재도 있냐고 묻고 싶은 걸 꾹 참은 채.
그러고 저택 주변을 한 바퀴 꼼꼼하게 도는 집사를 보며 대체 언제 들어가나 생각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겨울의 밤이라 그런지 공기가 꽤 차가웠다. 털 망토를 둘러도 안쪽에 서늘한 공기가 차오르는 것에 이온이 어깨를 살짝 떨자 시스템이 경고를 시작했다.
[추운 날씨로 인하여 플레이어의 사망 확률이 2% 올라갑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18%입니다.]
마나석을 새로 써서 그런지 어제 오늘 컨디션이 상당히 안정돼 있었던 터라, 다행히 위협적인 수준의 사망 확률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되면 수치가 더 올라갈 터였다.
이온이 하얀 입김을 내뱉고 있으니 카밀루스가 차가운 손끝을 제 손바닥으로 감싸 잡아 주었다.
“괜찮아, 이온?”
“아직은 버틸 만해.”
어차피 저택의 불이 꺼질 때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늦은 시각이었으니까.
드디어 집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저택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며 주변이 서서히 암흑에 잠기기 시작했다.
곧 카밀루스가 이온을 감싸 안으며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잘못하면 기물이 있는 곳에 떨어질 수 있으니까 주의하도록.”
“예, 대공.”
이내 몸이 쑥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저택 안쪽으로 이동되었다. 바닥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이동된 탓에 착지할 때 약간의 소음이 일었지만 다행히 카밀루스가 염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한 곳에 사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저택에서 하인들이 가장 접근하지 않을 만한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다가 후작의 방을 선택했다. 사실 제일 먼저 뒤져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카밀루스는 이온을 내려 주고는 후작의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너무나 정갈한 책상 위, 지나치게 가지런하게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등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안 탄 방은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현재의 미아블레 후작이라면 카밀루스의 어머니의 동생 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카밀루스 입장에서는 삼촌이었다.
과연 이제 와 그에게 혈연 관계가 의미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이온은 그가 잠시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는 걸 보며 그를 작게 불렀다.
“카밀루스……?”
카밀루스가 흠칫하며 이온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민망한 듯 웃는다.
“잠깐 딴생각하느라……. 여기 책장부터 일단 살필까?”
한쪽 벽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 책장을 보며 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재가 따로 있기도 해서 여기는 책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으나, 철이 돼 있는 서류들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왠지 꺼내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정리돼 있는 책과 서류철들을 하나둘씩 훑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찾는 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성전과 관련된 미아블레 가문의 기록이었다. 남의 저택에 잠입하면서까지 수고를 들였는데 시간 낭비로 끌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온과 카밀루스가 책장 쪽을 살피는 동안 페드로와 에렌스트 경은 후작의 집무실과 침실을 하나씩 맡아서 서랍들을 뒤졌다.
기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찾아야 한다는 제한도 없는 것이라 하룻밤 안에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일이었다.
시간이 다소간 지나 에렌스트 경이나 페드로도 책을 살피기 시작하고, 확인이 끝났을 때 이온이 중얼거렸다.
“여긴 특별한 건 없는 듯한데…….”
그에 카밀루스도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 페드로가 먼저 앞장서서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어둠에 잠긴 복도. 미세하게라도 발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들 숨소리조차 단속했다.
페드로가 아무도 없다는 수신호를 보내자 카밀루스가 걸어 나가 저택 안에 수면 마법을 뿌렸다. 앞으로 몇 시간 정도는 복도와 연결된 문만 열어도 사람들이 잠들 거라고 했다.
잠시 후작 부인의 방을 확인하고, 에렌스트 경의 안내에 따라 서재에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규모는 작지만 천장까지 가득가득 차 있는 장서에 네 사람은 조금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기왕 온 거, 쉽게 쉽게 후작과 그 부인의 방에서 단서를 발견했으면 좋으련만…….
오래된 책 냄새가 가득한 그 공간에 들어선 네 사람은 한숨을 내쉬더니, 시간이 여의치 않은 본인들이 처지를 생각하고 막막한 첫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