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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09)화 (209/317)

이온은 뒷말을 꺼내기 전에 카밀루스는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카밀루스는 마법사다. 그것도 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세상의 그 어떤 마법도 구현해 낼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그리고 마법사의 덕목 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창조력. 마법사들은 대개 기존에 있던 술식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마법을 설계할 수 있다고 들었다.

황성 결계 같은 게 단적인 예였다. 30년 동안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이유에는 재니스가 그만큼 강했기 떄문도 있었지만, 그가 이용한 술식이 무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밀루스는 그보다 더 강한 결계를, 심지어 재니스가 풀 수 없는 복잡한 술식을 만들었으니 그런 부분에서 흠결은 없다는 의미다.

이온은 어쩐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제 의문을 입에 올렸다.

“내 몸에 무슨 비밀이라도 숨겨 놨어?”

솔직히 말하면 더 직접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다.

‘나’를 불러 낸 게, 혹시 너냐고.

그렇지만 그건 시스템이 금지하고 있는 질문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걸 잘 안다. 이온 크레이거를 사랑하는 카밀루스가, 다른 영혼을 이 몸에 정착시킬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을 실패한 거라면.’

자신이 이 몸으로 들어온 건 8년 전.

카밀루스는 위대한 마법사가 맞았지만, 그조차도 완벽한 마법사는 결코 아니다.

또한 그 8년 전에는 그도 아주 어렸다. 미숙한 부분이 얼마든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당시에 카밀루스는 힘만 있고 제대로 응용은 못 하는 애송이 정도였던 듯했으니까.

한데 이 가정에는 오싹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만약 그런 경우가 맞는다면 그가 한참 전부터 이 몸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을 못 하는 걸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온은 사실은 안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 버린 게 아닌가 생각을 했지만, 이미 낙장을 했으니 회수는 불가했다.

해서 제발 제 눈이 너무 큰 동요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기만을 빌면서, 카밀루스를 채근했다.

“그게 아니면 네가 나한테 이 정도의 책임감을 느낄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

카밀루스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그에 제발 대답이 좀 돌아오길 바란 것도 잠시, 시선을 내리깔며 내놓은 충격적인 한마디에 이온은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저주를 건 건 아니긴 한데.”

“그건 네가 내 몸에 뭔가를 걸었다는 거야……?”

[시스템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시스템창이 이번에도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이온은 그야말로 심장이 바닥에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싸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설마 카밀루스 네가 이 시스템의 설계자야?’

아니, 아니다.

이온은 그 가능성은 스스로 부정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단순한 마법의 영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카밀루스 역시 이 시스템 내에서 ◇◇로 대상화가 되어 있었다.

카밀루스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헤매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띄엄띄엄 문장을 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네 몸에만 건 건 아니었어.”

“그럼 너랑 내 몸이 이어지거나, 뭐 그런 거야?”

아리송한 말들에 이온은 제 머리를 팽팽 돌렸다.

마법 계약 같은 게 또 하나 숨겨져 있는 건가? 그렇지만 지금껏 본 상태 이상 목록에 마법 계약을 제외하고는, 카밀루스와 연관되어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아니면, 혹시 연동률이니 뭐니 하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있었던가?

“네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온……. 너한텐 비밀을 만들지 않기로 한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설명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거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온은 답답함을 못 이기고 재빠르게 대답했다.

“말해 봐.”

“혹시 마법사가 마법을 잃는 경우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

“그런 경우도 있어?”

“흔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지. 몸속의 마나를 다 잡아먹을 정도의 마기를 주입하거나 혹은 제 마나를 전부 쏟아부어도 시전이 안 되는 마법을 구현하는 거야.”

정말로 방법이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이온은 말을 들으면서 문득 마리엘을 떠올렸다. 마기에 잠식된 검은 몸. 혹시 그도 마법을 잃을 뻔했던 걸까, 하고.

하지만 지금 카밀루스가 하는 말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후자의 경우 마법은 시동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마법사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몸속의 마나가 소멸되어 버리니까.”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넌 마법을 잃지 않았잖아.”

“결론적으로는.”

카밀루스가 전해 온 묘한 뉘앙스에 이온이 눈썹을 살며시 들썩였다. 그는 제가 제대로 파악한 게 맞나 싶어 확인차 물었다.

“설마 그건 네가 잃은 적이 있다는 소리야?”

“……그래, 오래전에.”

이온은 입술을 움칠했다. 카밀루스가 마법을 잃은 적이 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건지 몹시 의문스러웠다.

게다가 몸속에 마나가 흐르지 않는 것에 따른 부작용은 이온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체는 극도로 약해지고,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버린다.

물론 카밀루스는 아무리 봐도 그런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애초에 마법도 자유자재로 쓰고 있고.

어떤 방법으로 한 것인지는 몰라도 회복을 한 모양이었다. 해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온이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온은 본능적인 거부감에 목이 메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이겨 내고 결국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그게 언젠데? 설마 탑에서 나오고 나서……야?”

설마, 설마…….

제발 아니라고 해.

내가 상상하는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이온은 카밀루스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카밀루스에게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이온은 긍정의 의미가 담긴 그 고갯짓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입가에 조금이나마 맺혀 있던 웃음기가 한순간에 가셔 버렸다.

이온이 제게 달라붙어 있는 카밀루스를 조금 밀어 냈다. 그리고 들고 있던 꽃다발도 툭,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너.”

그동안 짐작으로만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상상했던 것들 중 일부가 사실이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그것도 가장 원하지 않았던, 최악의 방향으로.

이온은 둔해진 머리로 제게 주어진 퍼즐을 끼워 맞추며 식어 버린 목소리를 냈다.

“정말로 전부 알고 있었구나. 내 기억 상실의 원인이라든가…….”

뒷말은 시스템에 의해 막혀 버렸다.

[상태 이상: 금어]

[상태 이상: 금어]

다 밝혀졌는데 왜 또 막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온, 그건.”

한데 변명할 부분이 있는 건지 카밀루스가 말을 붙여 오려고 했다. 이온은 그의 말이 시작되기 전에 잘랐다.

“혹시 그동안 날 기만하고 있었어?”

내가 ‘이온 크레이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설마 그런 것 때문에 갈등하는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이온은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 저를 연신 세게 내려치는 것처럼 머리가 얼얼해졌다.

그리고 그런 이온의 말에 카밀루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만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왜 내용이 그런 식으로 흘러?”

하지만 이온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했다.

그가 돌연 바깥쪽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마차 멈춰!”

“이온?”

카밀루스는 아직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마차가 멈추고, 이온이 제 어깨에 걸쳐진 카밀루스의 옷을 떨어뜨린 뒤에야 급하게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온은 그가 제게 닿기 전에 먼저 마차에서 내려 버렸다. 뒤따라오던 에렌스트 경이 급하게 달려와 부축해 주기는 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 역시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직 공작 저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온이 마차를 멈춘 곳은 번화가도 아닌 애매한 중간 지점이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신지…….”

이온은 말없이 바닥을 디딘 뒤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제야 정신이 든 모양인지 카밀루스가 마차 밖으로 튀어나와 뒤쫓아왔다.

“이온!”

그러고 손목을 덜컥 잡는데, 하필 얼마 전에 다친 오른쪽이었다. 이온이 그에 흠칫하며 인상을 찌푸리자 카밀루스가 급하게 사과해 왔다.

“미, 미안. 내가 부주의했…….”

이온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손을 확 뿌리쳤다. 그리고 냉정한 어투로 잘라 말했다.

“따라오지 마.”

카밀루스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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