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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17)화 (217/317)

후작은 카밀루스를 만나고 왕관을 돌려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금세 후작 저로 돌아갔다.

〈도난당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미아블레 가문의 본가에 침입해 가보를 빼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 이온은 마침 뜬 시스템창 때문에 더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미아블레 가문의 진짜 레갈리아 찾기]

[미아블레 가문의 도난당한 레갈리아를 찾으십시오.

가지고 있는 인물을 파악하고 플레이어 및 플레이어의 주변 인물(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제멜 두루실라 크레이거, 알렉사이 에렌스트, 에밀리 리아나 크레이거)이 습득하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활성화된 퀘스트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생존에는 영향을 안 미쳐서 다행인 건지.

어째 최근엔 해결되는 것 없이 퀘스트가 쌓여만 가는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는 중간에 해결될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몇 년 전에 도난당한 레갈리아를 단서도 없이 어디서 찾지?’

어느새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무어라 해석했는지 모르겠으나, 막 수프 그릇을 들고 따라 들어온 카밀루스가 서둘러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온, 괜찮은 거야?”

이온은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려 협탁 위로 포로로 날아와 있던 욤뇽이가 왕관이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진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카밀루스의 말과 전혀 상관없는 중얼거림을 내놓았다.

“그 레갈리아, 역시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장물로 팔린 건 분명 아닌 거 같은데…….”

훔친 이는 어떻게든 손이 잘린 걸 면했다고 해도 다른 이들은 그게 아니었을 테니 뒷세계에서 거래되었을 확률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이번에 미아블레 후작이 왕관을 찾겠다며 온갖 곳에 방을 붙인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아마도 카밀루스가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만에 하나 레갈리아를 훔쳐 간 사람이 다시 왕관을 훔쳐 가지 않았을까 의심했다고 한다.

이온의 말을 들은 카밀루스는 약간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답을 내놓았다.

“내 어머니가 누군지 밝히는 일이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그러면서 지금은 먹는 게 우선이라고, 무릎 위에 잠시 내려놓았던 수프 그릇을 들었다.

대공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카밀루스는 직접 이온의 몸을 일으키고, 감자 수프를 떠서 입에 넣어 주었다.

감자 수프 특유의 달콤함이 입 안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몇 숟갈 태평하게 받아먹던 이온이 문득 미간을 슬쩍 구겼다.

“……지금 먹는 게 중요한 건 아닌데.”

“지금의 너한텐 제일 중요해. 이젠 배 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지. 임신도 했는데 설마 안 챙길 거야?”

카밀루스의 타이름에 이온은 입술을 삐죽였다. 반박할 말은 없는 터라 카밀루스가 밀어 넣는 대로 수프를 꿀떡꿀떡 넘겼다.

식사 시간도 아닌데 뭔가를 먹는 일 자체가 드물었던 이온이었지만 왠지 목 넘김이 좋았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워 제 의무를 마친 이온이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선황의 유언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엔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 레갈리아 행방은 어떻게든 찾아야 해.”

“그렇게 따지면 왕관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은 할 수 있어.”

카밀루스의 태평한 대답을 들은 이온이 미간을 슬쩍 좁혔다.

“왕관은 미아블레 가문의 가보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데 그걸로 증명이 된다고 생각해? 조작이라고 할 게 분명한데.”

“그럼 굳이 증명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한데?”

“귀족들을 이끌려면 명분은 필수야. 아무리 우리 가문이 널 지지한다고 해도 사생아라고 알려져 있는 자가 황제가 된다면 뒤에선 다들 무시하겠지.”

“…….”

이온은 계획이 성공해서 카밀루스가 정말로 황위에 올랐을 때, 허수아비 같은 황제가 되길 원하지는 않았다. 겨우 그 정도의 목표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이온은 왜인지 모르게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는 카밀루스의 얼굴을 잠깐 눈에 담았다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직 마음 정리가 다 안 됐어? 내가 너무 밀어붙이는 거야?”

이온의 말에 카밀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나도 지금의 내 지위가 위태롭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어.”

“그럼?”

이온이 대답을 채근했으나 그저 웃는 얼굴만 되돌아왔다. 카밀루스의 그런 반응에 이온은 제 머릿속의 촉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너, 딴생각하고 있지?”

“무슨 딴생각. 내가 지금 따로 할 수 있는 선택이 있다고 생각해? 내 아이가 네 배 속에 있는데…….”

추궁하는 분위기가 시작되자 카밀루스가 곧장 반박했다. 그러면서 배 위에 손을 올리는 것에 이온이 그곳으로 무심코 시선을 따라갔다.

긴 손가락이 배를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했다. 그렇지만 이온은 그게 카밀루스가 결백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도 이전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대체 뭐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카밀루스가 너야말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듯이 다소 완고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모든 건 너와 내 뜻대로 될 거야. 걱정하지 마.”

“…….”

몇 번 대거리를 한 경험에 의해 이제는 카밀루스에 대해서 꽤 잘 알게 된 이온은 이럴 땐 그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대충 눈치챘다.

카밀루스는 이온에게 한없이 관대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 속에 선을 그어 두면 그 안에 숨어든 비밀은 어떻게든 사수하려 한다.

무슨 말을 해도 안 통할 걸 알기에 이온은 그와 싸우기보다는 우회로를 택하기로 했다.

이온은 몸을 조금 내려 머리를 베개에 더 푹 대었다.

“따뜻한 거 먹어서 그런지 졸음이 몰려오네. 너도 피곤할 텐데 쉬어, 카밀루스.”

“……괜찮겠어?”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카밀루스가 약간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이온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자야 할 것 같아. 저주가 강해져서인지 요즘 잠만 늘었어.”

말하면서 이온이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며 투정부리듯이 중얼거리자 카밀루스가 조용히 웃었다. 속아 주기로 한 모양인지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프면 꼭 불러.”

이온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카밀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탁자 위에 늘어져 있던 욤뇽이 역시 카밀루스의 뒤를 쪼르르 쫓아갔다.

이온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다가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렌스트 경이 들어온 것에 이온이 여전히 눈 감은 채로 물었다.

“카밀루스, 혹시 밖에 나갔어?”

“아니요, 페드로 경과 방에 들어갔습니다.”

제 아버지 같은 페드로에게는 과연 모든 진실을 말할까.

이온은 왜인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에렌스트 경을 손짓해 가까이 불렀다. 이온은 에렌스트 경을 올려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이엘라엠이랑 비아트리스에서 온 기사들은 거의 수도에 도착했어?”

얼마 전 카밀루스가 북부에 연통을 넣었다는 사실을 이온도 알고 있었다. 그 직후 이엘라엠을 다스리는 후작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엘라엠의 후작은 황도에선 거의 활동을 안 하지만 꽤 넓은 면적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는 북부 지역의 실력자였다.

에렌스트 경은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이온에게 성실히 알려 주었다.

“오고는 있다는데, 아마 일주일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오는 목적이 대체 뭐라고 생각해?”

“……공작 각하를 도와서 연회 때 이용하려는 거 아니겠냐고 짐작하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이온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가 잠시 뒤 흔들었다. 모순된 그 표현에 에렌스트 경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카밀루스한테 다른 목적이 있는 거 같아서 그래. 말을 돌리는 게 영 수상해서.”

“다른 목적이라면…….”

“…….”

아직 짐작되는 바가 없다는 게 문제다.

고민하던 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를 모셔 와 줄 수 있어? 내가 많이 아프다고 하면서…….”

“알겠습니다.”

잠시간 방 안에 혼자가 된 이온은 도로 눈꺼풀을 내렸다. 카밀루스한테 말할 때만 해도 변명처럼 피곤하다고 말한 거였는데, 실제로 몸이 좋지 않았다.

늘어져 있다 보니 붕대 감긴 오른손이 거슬려 괜히 주먹을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이 피로함의 원인인 듯한 곳을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있는 곳을.

진짜로 임신한 걸까 의심도 되었지만 카밀루스가 제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이온은 그 낯섦이 이제는 제 일부가 되었음을 빠르게 인정하며 제 아버지, 크레이거 공작의 발이 제 방 가까이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제멜 드루실라 크레이거의 배신]

저 발소리가 다시 멀어질 때면 저 퀘스트 하나가 완료되어 있기를 기대하며.

* * *

연말에 열리는 황실 연회 소식을 듣고 황도로 들어오는 귀족들이 늘어나면서 외성의 문을 통과하는 행렬이 꽤 길어졌다.

칼 나르바에스는 그에 따라 성곽의 위에 앉아서 문지기 기사들이 검문을 진행하는 모습을 심드렁하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얼마 전, 다시 아스타틴과 자신을 불러들인 버니언의 서슬 퍼런 모습을 떠올렸다.

〈대체, 씨발, 한 달이 다 지나갔는데 너희 둘 다 왜 소식이 한 줄도 없는 거야!〉

요새 더 초조해졌는지 버니언은 말끝마다 욕을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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