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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29)화 (229/317)

그렇지만 진짜로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것같이, 우울증 증세마저 보이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묘해졌다.

카밀루스는 버니언이 한동안 깨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한 뒤 뒤돌아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자마자 시종들과 기사들의 눈초리가 전부 저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다가 카밀루스가 혼자서 문을 열고 나오니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밀루스는 그중에서 제일 근처에 있는 시종에게 적당히 상황을 알렸다.

“폐하께서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니 살펴라.”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갑자기 잠들었다고 하니 몹시 수상해 보일 게 분명했으나 카밀루스는 별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대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고 황궁 밖으로 나갔을 때 카밀루스는 앞이 텅 비어 있는 것에 잠시 멈칫했다. 이온과 타고 온 마차가 사라진 건 둘째 치고, 제 부관인 페드로도 새 마차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시종들도 조금 당황한 듯 카밀루스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아직 이온이 집으로 못 돌아갔나?’

그럴 리는 없었다.

이래 봬도 버니언의 두서가 없고 쓸모도 없는 말 사이에서 재니스와 마리엘에 대한 이야기를 뭐라도 하나 더 들어 내려고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작저와 황궁의 거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온이라면 공작 저에 돌아가고도 이렇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리 없었다.

단신으로 공작 저까지 가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해가 안 돼 멈추어 있다가 카밀루스는 문득 시야 안에서 점멸하는 표시 하나를 발견했다.

[현재 ‘이온 크레이거’가 사망할 확률은 21%입니다.]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공작 저를 막 떠나왔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수치였다.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래서 아직 공작 저에도 도착하지 못한 상황인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밀루스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황궁 중앙 정원을 지나갈 무렵 때마침 자신의 독수리가 머리 위에서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황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독수리가 그의 뻗은 팔 위에 푸드덕거리며 앉았다.

「도련님, 마차를 중간에 세워 놨어.」

“당연히 어딘지 알고 있겠지? 빨리 안내해.”

카밀루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걸 알아차렸는지 다행히 독수리는 군말 없이 날아갔다.

* * *

다행히 가는 길에 마차를 세워 두고 기다리고 있는 이온을 발견하고 카밀루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는 동안 혹시나 이온이 잘못됐을까 봐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욤뇽이가 보여 준 기억의 구슬에 담긴 얼굴 때문에 놀란 이온은 공작 저에 도착할 때까지도 안색이 썩 좋지는 못했다.

저택에 도착한 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막상 제 방으로는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이온이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카밀루스의 방으로 향했다.

탁.

페드로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들어왔고, 에렌스트 경은 옆에 서서 연신 이온의 불안한 상태를 살폈다. 그러다 네 사람 중 그 누구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영상을 또 보기에는 많이 불안해하실 것 같으니 제가 설명드려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문제가 된 예의 기억 구슬을 앞에 두고 주저하고 있던 카밀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저희가 황궁으로 떠난 직후에 마탑주의 조수가 도련님의 방 안에 침입한 것 같습니다. 저 구슬에 그런 내용이 담겼고요.”

“…….”

“비운 시간을 알고 있었다면 외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리일 겁니다.”

그에 카밀루스가 제 어깨에 앉아 대화와 자신은 별 상관 없다는 듯 털을 다듬고 있던 독수리를 흘끗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기 시작한 독수리가 얼른 페드로에게 날아갔다.

페드로는 처음 있는 일임에도 얼른 팔을 내주었고, 독수리가 변명을 시작했다.

「새는 아닌 게 분명한데? 근처에 있었던 애들은 다 잡았어!」

카밀루스가 아닌 다른 이들에겐 독수리가 새 소리를 내는 것으로 들리는 탓에, 이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근처에 감시용으로 추측되는 건 딱히 없었다는데. 그럼 방 안에 있는 물건에 마법이 걸려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이온.”

“방 안에?”

카밀루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온이 걱정이라도 됐는지 욤뇽이가 작게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꾸우…….”

이온은 제 마음도 진정시킬 겸 얼른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대꾸했다.

“그럼 안으로 뒤집어야 할 수도 있는 거네.”

“아마 계속 지켜봐야 했을 테니까 근처의 자주 쓰는 물건이었을 거야.”

카밀루스의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듣던 이온이 ‘지켜본다.’라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기색을 알아차린 카밀루스가 이온의 반응을 다르게 해석하고 물었다.

“왜, 짚이는 게 생각났어? 이제 괜찮으면 찾으러 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온이 말끝을 흐렸다. 방금 전의 말을 듣고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갑자기 제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게 됐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나 카밀루스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하루 종일 아파서 끙끙 앓기도 했고, 카밀루스와 별것 아닌 것으로 싸우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들키기 싫은 건.

이온은 카밀루스를 힐끗했다.

“혹시…… 막 영상으로 들여다본 건 아니겠지?”

“물건의 형태에 따라 다를 거야.”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온에게는 비상이었다.

“빨리 찾아서 없애야 할 거 같은데? 내 방으로 가자.”

이온이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그를 보면서 카밀루스는 눈치 없이 물어 왔다.

“짐작되는 거라도 있나? 너무 걱정 마. 금방 찾아낼 테니까.”

이럴 때만 귀신같이 눈치가 없어지는 카밀루스의 말에 이온은 발긋해진 얼굴로 고개만 흔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리엘이 설마 저희들 섹스를 다 들여다봤으면 어쩌냐는 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는 없었으니까.

심한 부끄러움은 공포를 이겼다.

빠르게 제 방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연 이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카밀루스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역시나 침대를 둘러보다가 묘한 압박감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여기까지 마리엘이 들어왔었다니. 아주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니, 마주 잡고 있던 카밀루스가 걱정스러워하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힘들면 나 혼자 찾을게.”

얼굴까지 새하얘졌지만 이온은 애써 용기를 냈다.

“어차피 내가 자주 쓰는 물건들에 마법을 걸어 놨을 거 아니야.”

“그렇지만 내가 손대지 않는 거겠지.”

이온은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다. 카밀루스가 손을 댔다면 거기에 마법이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으니까.

이온은 일단 에렌스트 경을 돌아보며 요청했다.

“문 좀 닫아 봐. 중간에 아버지라도 오면…… 의심스러워하실 테니까.”

에렌스트 경이 이온의 말을 따라 문을 닫았다. 그렇지만 잔소리 한마디는 빼놓지 않았다.

“각하께 굳이 숨길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차라리 알리고서 방을 옮기시는 게…….”

“아버지가 괜히 알았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 자제해.”

‘큰일’이라는 말이 대략 뭘 지칭하는지 알아차렸는지 에렌스트 경이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뱉었다.

크레이거 공작의 성격을 생각하면, 저주를 건 게 누군지 특정될 경우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의 능력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 아이들 일 앞에서 불같아지는 성미를 고려하면 나쁜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온은 카밀루스의 손을 놓고서 일단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 욤뇽이가 뒤따라와서 품에 쏙 안겨 준 덕에 약간 긴장을 푼 이온이 평소처럼 그 위에 누웠다.

남이 왔다 갔다는 걸 알고 나서라 그런가. 늘 누워 있던 침대가 불편해졌지만 일단 제가 이 방에서 평소에 어떤 일을 했는지 떠올렸다.

아파서 누워 있고, 피곤해서 누워 있고, 쓰러져서 누워 있고…….

대부분 그런 기억밖에는 나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온이 평소 제 행동을 돌이키는 데 조금 헤맬 무렵, 카밀루스가 다가와 도움을 주었다.

“일단 보통은 손이 미치는 데 위주로 물건이 배치돼 있으니까, 이온…….”

“아, 응.”

침대 위에 있는 베개와 이불은 카밀루스도 다 손대는 것들이니 예외다. 이온은 가장 가까운 협탁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픈 저를 위해서 준비된 많은 것들이 거기에 위치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인들을 부르기 위해서 치는 종, 적을 게 생각나면 사용하는 연필과 종이, 급할 때 먹어야 하는 비상용 약, 최근에는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배치해 둔 붕대가 있었다.

이외에는 어디에나 일상적으로 있는 휴지·양초, 제가 관리하지 않는 작은 식물과 먼지 쌓인 장식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부엉이 장식의 두 눈이 딱 침대를 향하고 있어서 좀 오싹해진 이온이 그걸 의심해 보았지만 다행히 카밀루스가 그건 아니라고 했다.

협탁에 올려진 물건 중에는 의심되는 게 나오지 않자 이온은 허탈해졌다.

“그럼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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