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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36)화 (236/317)

카밀루스는 일단 커넥팅 도어를 아주 살짝만 열고, 제한된 시야로나마 침실 안쪽을 살폈다.

독수리의 말에 따르면 침실 안쪽엔 세 명의 기사가 있고, 침실 문은 열려 있으며, 복도에 역시 일정한 간격으로 꽤 많은 수가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중에서 두 명의 기사와 태후가 누워 있을 침대의 끄트머리가 조금 보였다.

다행히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펼쳐 둔 수면 마법이 잘 걸렸는지, 기사들이 벽에 기대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카밀루스는 그에 침실 안쪽으로 몸을 들이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침실 안쪽을 지키고 있던 세 명과 활짝 열린 침실 문을 통해 보이는 기사 및 시종 등 모두가 잘 잠들어 있었다.

안도한 뒤 카밀루스는 침대 앞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정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태후가 보였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척 건강해 보였던 태후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망가져 있었다.

여윈 손목과 이전과 달리 완전히 살이 내려 버린 얼굴.

‘며칠이나 갇혀 있었다고 했지……?’

대략 열흘 전후의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버니언이 아무리 상식이 없어도 제 어머니인데, 그리고 황태후인데 음식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을 리는 없다.

아마 저주 때문에 내내 정신을 잃었다고 하니 섭식을 제대로 못 한 탓에 이렇게 된 것일 터다.

카밀루스는 미간을 좁히며 태후의 침대에 더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덮고 있는 이불을 들쳤다.

그러자 칼 나르바에스에게 이미 들었던 바와 같이, 둥글었던 배가 쑥 꺼져 버린 것이 보였다.

“……실례하지요.”

카밀루스는 잠들었을 태후에게 작게 양해를 말을 건네며 그녀가 입고 있는 잠옷의 옷깃을 밀어 알몸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임신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커녕 뱃살조차 거의 없는 배가 보였다.

분명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태후의 볼록한 배는 환상이라도 되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제는 태후의 몸에 어떤 상처도 없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든 빼낸 뒤 치유 마법을 썼을지도 모르긴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있었다.

배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를 가져가 봤자 살릴 수가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

생각을 이어 가던 카밀루스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이온도 이렇게 되면…….’

사실 제일 염려한 부분은 그것이었다.

태후가 불쌍해서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이온과 같은 저주가 걸린 게 분명해 보이는 황태후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하러 와야만 했다.

어쩌면…… 어쩌면, 저주를 건 자가 미래에 이온을 이와 같은 상태로 만들길 원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배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카밀루스가 그녀의 신체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눈앞에 작은 창이 떴다.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 메시지를 지그시 노려보던 카밀루스가 이내 손을 뗐다.

“완전한 마나 소실 상태인 건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번에는 다른 메시지가 떴다.

[상태 이상: 마나 소실. 마나가 무조건 0이 됩니다. 내·외부의 마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죽을 확률은.”

[계산 중…….]

마치 시스템과 대화를 하듯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자신에게 내려진 이 정교한 ‘저주’는 이래서 무서웠다. 유용하고 정확해서, 오히려.

조금만 허술했어도 무시했을 텐데 이것들이 계산해서 보여 주는 수치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다 보니 더 큰 초조감을 맛보곤 했다.

다만 시스템이 계산해서 보여 주는 게 사망 확률, 목표 달성 확률 따위의 것밖에 없다. 그것들을 보다 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망할 확률은 92%입니다.]

이 정도면 곧 죽겠다. 앞으로 눈을 뜨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버니언이 더 경계를 삼엄하게 한 것은 전혀 소용이 없는 짓이 된 셈이다.

카밀루스가 제게 더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그만 태후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그때였다.

“폐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카밀루스는 태연하게 돌아섰다. 인기척은 미리 느끼고 있었던 터라 상대방의 등장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태후의 침실 안에 막 들어선 건 칼 나르바에스였다.

“……마법이 통하지 않았나? 아니면 기다렸다가 온 건가.”

“마법이 통하지 않았을 리 있나요. 기다렸다가 왔습니다. 대공께서 틀림없이 오실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쉬운 문제였긴 했겠군.”

크레이거 공작 저에서 그를 보내고 난 뒤에 칼이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계속 고민했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그는 자신이 태후를 이렇게 살피러 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방면으로 보나 그 초대를 피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카밀루스도 이 함정 같지 않은 함정에 기꺼이 걸어 들어왔다.

카밀루스는 태후를 다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마탑에 있는 재니스에게 방문을 청한 게 그대라고 들었다. 그들을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지?”

“거창한 대화를 나눈 건 아닙니다. 전 그저 제 추측을 확인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게 맞는다는 답을 얻었지요.”

“추측?”

카밀루스의 물음에 상대는 거리를 좀 더 좁혀 다가왔다. 태후가 누운 침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봤다.

곧 칼에게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재니스와 마리엘 중 본체는 마리엘입니다, 대공.”

“…….”

“그리고 그녀의 몸은 이미 절반 이상 몬스터화되어 있지요.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사람이 아닌 걸지도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선황 폐하께서 서거하시기 전까지 근 15년 동안 가장 가까이한 사람은 태후도, 황태자도 아닌 바로 저였습니다. 필요하실 땐 어디에든, 언제든 제가 그분의 곁에 있었으니까요.”

선황은 기본적으로 속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습성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선황이 목숨이 다하기 전 아이오딘으로 향하는 길에 그를 대동하고, 다섯 명의 증인 중 한 명으로 칼을 내세웠다.

〈칼은 우직한 자이니 그를 다섯 중에 포함해야 모두가 믿을 것이다.〉

선황은 사람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그 정도의 평가를 내렸으면 정말로 굉장한 신뢰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카밀루스는 상대에게 더 말해 보라는 의미로 눈짓을 해 보였다.

“알려진 것과 달리 선황께서는 재니스와 마리엘을 신뢰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건 조금 신빙성이 떨어지는 말이 아닌가? ……탑에 날 가둔 건 재니스였다. 선황이 믿지 않는 자의 손에 제 비밀을 쥐여 주었을 리는 없었을 텐데.”

“글쎄요, 저는 더 증오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두 분이 손을 잡은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만.”

“더 증오하는 사람이라고?”

그게 혹시 나였나.

카밀루스는 생각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선황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울컥 올라오는 동시에 제가 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제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데, 정작 그에 지배당하는 자신에게 그는 안갯속의 괴물과 같이 느껴졌다.

언제 다가와 목을 조를지 모를 그런 괴물.

그래서 더 벗어날 수 없는.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칼의 입에서 나온 답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선선대 황제 폐하 말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선황께서는 그분의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떠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재니스의 신뢰와 이어지는 건가.”

“대공께선 선선대 황제 폐하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 아십니까?”

칼의 물음에 카밀루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선선대 황제는 그가 태어난 직후에 죽었다. 그러니 이제는 근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이야기였다.

그러나 만약 특기할 만한 점이 있었다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만큼 너무 멀지도 않은 기간이다.

“……글쎄, 주목할 만한 사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요, 자연사였으니.”

“거기에 문제가 있나?”

“문제가 있지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습니까. 대공께서 태어난 직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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