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는 들으면서 안타까워졌다. 너무 일찍 좌절을 배운 아이는 제 안의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사람처럼 말하는 아의 모습에서 페드로는 위화감도 느꼈었다.
“대공은 평소에도 좀 남달랐습니다. 솔직히 전 대공이 천재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소공작.”
“그럼…….”
“어차피 몸에 있는 마나 같은 건 전부 가능성 아닙니까? 대공은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몬스터를 잡으면서 마법을 연마했고, 지금의 황성 결계를 만들기 위해 북부에서 이미 수없이 시도했다고 했다.
“마치 언젠가 쓸 걸 대비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화는 얼마든지 우연할 수 있고, 페드로의 과대 해석이 끼어 있을 여지가 얼마든지 존재했다.
“……단순히 본인이 능력을 갈고닦아야겠단 생각으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온의 반문에 페드로는 의외로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니 늘 확신은 못 했습니다.”
“그럼 언제 확신을 하셨는데요?”
“선황께서 아이오딘으로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당시에요.”
페드로가 이상하다고 확신했던 그 대화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황도로 보내 줄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온의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비밀 파헤치기]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치십시오.]
[본 퀘스트 완료 시 시스템 적용이 종료됩니다.]
아직 이런 것도 남아 있다, 그런 의미인지 쓸데없이 퀘스트 목록까지 보여 주는 친절에 원치 않았지만 이온은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비밀은 카밀루스와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스템의 지배를 받지 않는 페드로가 그 열쇠를 쥐고 있었다.
이온은 긴장된 마음으로 페드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시스템 메시지만 아니면 눈앞의 아저씨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할 듯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온은 그의 말을 헛소리라고 웃어 넘기지 못했다. 페드로 역시 이온이 제 말을 의외로 진지하게 들어 주는 것에 기꺼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대공은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카밀루스가 마법으로 예지라도 한다고 생각하세요?”
예지 능력이 있는 마법사들도 간혹 있다고 들었다. 실질적인 마법 능력과 별로 상관없지만, 그쪽으로 특별히 발달한 이들이 말이다.
카밀루스도 그런 유형이라고, 의심하는 걸까.
하지만 페드로는 그런 이온의 추측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이온이 눈에 의문을 띄웠다. 그러자 페드로는 선황이 죽기 직전 아이오딘으로 왔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대공은 선황이 아이오딘으로 와서 죽을 것과 대공위를 내린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모르는 게 있었던 거군요. 뭐죠?”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선황은 죽기 전 다섯 명의 증인을 요청하고, 카밀루스의 앞에서 로제니아 미아블레라는 이름을 들려 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카밀루스는 그야말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8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그를 봐 온 페드로가 카밀루스의 그 얼굴이 연기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면 그때는 연기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전 상황, 그러니까 대공위를 내리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달랐다. 당연한 걸 받는다는 양 덤덤하기만 한 얼굴이었다.
아들을 8년 동안 아이오딘이라는 거대한 빙벽에 가둬 놓았던 선황이 그에게 보인 파격이었다.
그 자리의 모두가 카밀루스의 반응을 예의 주시했을 만큼.
페드로는 그게 몹시도 의문스러웠다.
“그러고 돌이켜 보니 그 전의 대화가 몹시도 수상하게 느껴지더군요.”
“정확히 어떤 대화였죠?”
이온의 재촉에 페드로가 카밀루스가 당시 했던 이야기를 한 마디 한 마디 짚었다.
〈그럴 일은 없어. 현 황태자가 섭정을 하는 것. 그리고 내가 황도로 가지 못하는 것. 두 가지 다, 없을 거라고.〉
〈세상에는 바꾸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거든. 운명, 같은 것들.〉
〈내가 바꾸고 싶은 건 딱 하나뿐이고, 다른 건 관심 없어.〉
모아 놔서 그런가. 정말 이상한 말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 선황은 오래도록 와병 생활을 해 오던 중이었다. 아이오딘행을 결정했을 때는 이미 생명이 다 꺼져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 죽을 거라고 정확히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섭정. 선황은 황태자였던 버니언에게 그것을 허락지 않았지만, 대신들의 압박은 날로 거세어져 가던 도중이었다.
선황은 침대 위에 누워서도 계속해서 여러 현안들을 결정했으나,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기보다는 갑자기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자들이 더 많았다.
차라리 선황이 그만 내려놓고 양위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한데 카밀루스는 정확하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는 거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페드로의 결론은 뭔가요?”
“그게 의문인 상황이지요. 소공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에게 순서를 넘기는 페드로의 발언에 이온은 그를 새침하게 곁눈질했다. 그러자 페드로가 눈썹을 들썩이며 어서 의견을 말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페드로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예지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카밀루스가 왜 굳이 그런 걸 숨기느냐의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이온은 그에게서 그런 능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의외의 부분에서 철저해서 놀란 적은 있지만 그것을 예지와 연관시키지 못했다.
그렇다기엔 카밀루스는 이온에게 저주를 건 상대를 찾는 데 너무 진심이었다.
무엇보다 카밀루스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이온은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드로의 의심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뭐지……?’
혼란감에 이온이 선뜻 대답을 못 내놓았다.
카밀루스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도 말할 수 있을 때가 오면 모든 걸 밝히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왔으니까.
‘이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는 비밀…….’
이 몸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시스템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막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였던 메시지는.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프닝 멘트였다.
‘그럼 그때부터 시스템이 적용되었다고 봐야 하나?’
[시스템의 비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 것을 보았을 때, 이온의 눈이 흔들렸다.
그가 작게 숨을 들이켜며 페드로와 몸을 더 붙였다.
“페드로,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요. 카밀루스한테서 본인이 마법을 잃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대공이요……?”
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드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인 눈치였다.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이온은 역시나 싶기는 했다.
그 말을 한 건 자신에게만이었다.
그러나 이온은 의문스러웠다.
대체 카밀루스가 마법을 잃은 그 시점은 언제지?
마나석 하나를 만들고 나서도 회복을 한다며 이틀 정도는 쉬어야만 했던 그였다. 한데 마법을 잃었다고 표현했을 만큼 거의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진 건 대체 언제인 건지.
이온이 눈을 뜬 건 공작 저의 체벌방에서다.
벌을 받은 이유는 카밀루스를 탑에서 멋대로 빼냈기 때문이었다.
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