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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48)화 (248/317)

탑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마법을 썼을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사이에 카밀루스가 모든 능력을 회복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온이 지켜본 그는 단 한 순간도 마법을 못 쓴 적이 없다.

탑 안에서 재니스에게 제압당해 못 쓰는 상황에 종종 빠졌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마법을 잃는다.’라는 표현을 덧붙일 리 없다.

무언가 어긋나 있음을 느낀 이온이 의문스러움에 눈매를 구겼다. 그러자 옆에 있던 페드로가 살며시 웃었다.

“언젠가 말씀해 주시겠지요, 대공이.”

그러니 머리 아프게 지금 끙끙대지 말라는 의미에 이온은 눈앞의 아저씨가 자신을 놀리는 건가 의심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카밀루스의 명령은 그래서 뭐였나요?”

“별거 있습니까. 소공작을 절대로 지키라는 것이었지요. 대공께서는 본인이 마리엘을 상대할 때 소공작이 위기에 빠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

“분명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이온은 아직 평화로운 연회장의 홀을 내려다보았다.

그중에서 아까 발견했던 미아블레 후작과 눈이 마주쳤다. 카밀루스의 삼촌이자 아마도 그의 정통성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

‘아직 해야 할 게 많아.’

후작가의 진짜 레갈리아가 어디 있는지, 그 행방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카밀루스가 로제니아 미아블레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후작 또한 그것을 찾기 전까지는 카밀루스의 정통성에 대한 언급은 하기 어렵다는 식의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근데 이쯤 되면 감이지만.

‘또 재니스나 마리엘이 엮여 있는 것일지도.’

물론 아무 근거도 없는 추측이긴 하나, 떠올리고 나니 꽤 유력해 보였다.

정황상 그들은 카밀루스의 출생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까.

이온이 표정을 매섭게 굳혔을 때였다. 크레이거 공작도 연회장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난리가 난 것은 바로 시점이었다.

황궁에 재앙과도 같은 무언가가 나타났다.

* * *

버니언은 제 앞의 괴물을 보았다.

그것은 괴물이라고 하지만 눈만큼은 달랐다.

사람의 안구가 틀림없는 그것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 * *

처음엔 카밀루스와의 일에 동참한 아스타틴을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던 버니언은 어느 순간부터 힘이 빠져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널 언젠가 죽여 버릴 거야.”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버니언의 중얼거림에도 아스타틴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카밀루스가 나간 뒤로 처음 입을 연 것이었다.

버니언은 그 내용에 실소했다.

“거짓말하지 마. 너희는 어차피 날 배신하려고 했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폐하를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적어도 폐하께서 제 상관의 목을 조르기 전에는 말입니다.”

“…….”

“그러지 마셨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버니언은 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기대 머리를 젖혔다. 그러고 카밀루스가 걸어 두고 간 속박 마법을 풀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속박 마법은 스펠이 간단한 만큼 풀기도 쉬워야 하는데, 몸의 마나가 돌지를 않았다. 카밀루스가 조치를 취한 게 틀림없었다.

개 같은 새끼.

하나부터 열까지 재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생아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적통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그놈이 제 자리를 빼앗으러 올까 봐 계속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난 너한테 나름의 연민을 가지고 있었어.〉

감히 제가 뭔데 연민하지?

버니언은 아무리 그래도 카밀루스와 비할 바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탑에 갇힌 적 없이 궁에서 안락하게 삶을 영위했고, 결국 황위에도 올랐다.

선황은 매번 칭찬 한마디 없이 자신을 꾸짖기만 했고, 태후는 자식인 자신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던 버니언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마당에 더 떠올려 봤자 불행만 곱씹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연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버니언은 드디어 현실로 돌아와 질문했다. 아스타틴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선 채로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답을 내놨다.

“대공께서 주최하는 걸로 변경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하하…….”

거기서 황위 찬탈에 대해서 이야기하겠구나.

크레이거 공작도 동조할까.

그 경우 카밀루스의 정통성만 증명이 된다면 사람들은 의외로 매끄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크레이거 가문이 제국 내에서 쌓아 온 신망이란 그런 것이니까.

몸에서 힘이 쭉 빠진 버니언은 이내 체념하고 소파에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어차피 황궁이 황제의 최측근인 노아 기사단에 이렇게 점령된 마당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법조차 못 쓰는데 뭘 어쩌겠는가.

끝나면 아이오딘으로 보낼 거라 했으니 거기서 어떻게 살지를 궁리하는 게 더 유익할지도 몰랐다.

다만 당연하지만 그렇게 편안한 마음은 아닌 터라 지금 그런 걸 궁리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눈을 감았으나 잠도 오지 않는다.

결국 버니언이 다시 눈을 뜨고 천장만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그륵, 그륵.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던 것은.

그르륵.

가래가 잔뜩 낀 목으로 말소리 내는 걸 실패하면 이렇게 나지 않을까 싶은.

버니언만 들은 것은 아니었는지 아스타틴도 소리의 근원을 돌아보았다. 창문 밖이었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뭔가 보일 턱이 없으므로 결국 그가 발을 옮기려 한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뒤덮었다.

‘아니…….’

검은 그림자가 아니다. 그냥 몸체가 검은 거였다. 그 나름대로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그 사실을 파악한 버니언이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파장창!

“……!”

그들의 방에 있는 유리창이 깨지면서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검은 물체, 그러니까 몬스터인가 싶었지만 제가 아는 그 어떤 것도 아닌 검은 생명체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크르르르르…….”

갑작스러운 사태에 아스타틴도 당황한 듯했으나 단숨에 칼을 뽑았다. 그가 버니언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나도 몰라.”

안쪽에서 일어난 소란에 밖에서 무슨 일이냐 묻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스타틴은 서둘러 들어오라고 외쳤다.

그동안 버니언은 이를 드러내는, 아마도 몬스터인 그것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시선은 정확히 버니언에게 향해 있었다.

버니언은 그것의 파란 눈동자를 보며 심장이 쿵쾅 뜀을 느꼈다.

저것은 분명 자신을 죽이려고,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다. 직감한 버니언이 다리를 휘저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창문까지 뛰어오는 녀석이 버니언의 그런 발버둥 따위를 신경 쓸 리는 없었다.

“크륵.”

작게 이 갈이를 하고 저를 향해 뛰어오르는 것에 버니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질척한 액체가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버니언이 눈을 뜨고 돌아보자 주변에 기사들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 버니언에게 괴물이 뛰어들기 전에 그들이 저지한 거였다.

하지만 상처를 입고도 괴물은 움직였다.

“크르르륵.”

버니언은 저를 향한 살기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괴물을 보며 공포감을 느꼈다.

쿵, 쿵.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 파란 눈.

마치 사람의 안구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과 닮아 있었다.

놀랍게도, 그렇게 느껴졌다.

쿵, 쿵…….

누군가 가슴으로 북을 치는 듯이 심장이 요동을 친다.

버니언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주변의 기사들은 절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아스타틴조차도.

그렇지만 몸이 묶여 있는 그가, 몸에 마나가 돌지 않는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없었다.

그사이 다시 몬스터가 도약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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