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틴이 뛰어들어 소파 위의 버니언을 끌어 내리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버니언은 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가 저를 감싸고 있는 아스타틴에게 말했다.
“씨발, 저거 날 노리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고 다행히 아직 침착함을 잃지 않은 아스타틴이 괴물을 돌아보았다. 노아기사단의 기사들은 이 상황이 뭔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었다.
갑자기 황궁에 난입한 몬스터라니.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버니언은 본능적으로 저것은 이 기사들로 절대 상대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괴물은 심장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부분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도약을 할 때는 아스타틴도 그것을 향해 칼을 내지르며 몸을 내달렸다.
그래도 부단장이라고 아스타틴은 확실히 부하들과는 달랐다. 그가 버니언에게 뛰어들려는 괴물의 목덜미에 착지해 그대로 다시금 심장을 찔렀고, 동시에 스펠을 외워 괴물의 심장을 불태우려 했다.
살이 안에서부터 타는 끔찍한 고통에 괴물이 소리를 내질렀다. 검은 피가 바닥에 쏟아졌고, 괴물이 잠깐 비틀거리는 사이 다시금 기사들의 검이 쇄도해 그것을 찔렀다.
그러나 몸을 뒤틀며 저항하는 그것에 검을 놓치고, 휘두르는 팔에 나가떨어지는 자들도 생겼다.
버니언은 그 광경을 보며 제 죽음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스타틴이 놈의 어깨를 찌르며 움직임을 제약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괴물은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를 공격하는 아스타틴에게로 팔을 휘둘렀다.
부하들보다 움직임이 좋다 뿐이지 아스타틴이 저 괴물을 이길 확률은 전혀 없어 보였다.
버니언이 덜덜 떨면서 몸을 튀틀었다. 아스타틴이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저를 속박하고 있는 마법을 풀고 도망이라도 쳐야 했지만 어떻게 해도 풀리지를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그동안 방 안은 더 엉망진창이 되어 갔다. 복도의 기사들이 전부 안에 들어왔지만 오히려 바닥에 쓰러져 가는 놈들만 늘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머리가 굳어서 오로지 그 생각만 났다.
그리고, 그때였다.
버니언은 저를 제약하고 있던 카밀루스의 힘이 풀렸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건 버니언만이 아닌 듯했다.
아스타틴 역시 평소 황성 결계에 억눌렸던 마나의 흐름이 몸에 도는 것을 느끼고는 의문을 가졌다.
황성 결계도, 버니언을 속박하고 있는 마법도 카밀루스가 스스로 풀지 않는 이상 이렇게 한순간에 없어질 리 없었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그가 죽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반격할 기회를 얻은 버니언이 바닥에 있는 칼을 집어 들며 외쳤다.
“물러서!”
그리고 제 온 힘을 쏟아부어 정체 불명의 괴물을 화마로 집어삼켰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황궁에 울려 퍼졌다.
퍼어엉!
버니언의 화염 마법이 괴물의 거체를 둘러쌌다. 주변의 공기를 한순간에 태우는 불길에 검은 괴물은 멈추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지만…….
버니언은 불길 속에서도 그 괴물의 안광이 꺼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여전히 저를 향한 똑바른 눈. 그것을 불길 속에서 마주한 버니언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이건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절대로.
그러한 점을 느낀 버니언은 결국 방의 입구와 반대편으로 뛰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괴물이 부수어 놓은 창문 쪽으로.
지금은 이쪽이 가장 빠른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저런 놈은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상대하는 게 훨씬 생존 확률이 높아 보였다.
“폐하!”
아스타틴의 외침을 뒤로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린 버니언의 뒤를 예상대로 괴물은 잘도 쫓아왔다.
제 뒤를 이어 뛰어내리는 검은 괴물을 향해 버니언은 다시 한번 불길을 실은 검기를 날렸다.
떨어지는 괴물의 허리 부근을 베어 내는가 싶었던 그의 공격은 단단한 몸체를 결국 뚫지 못하고 그저 괴물의 몸에 더 거센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쿠웅, 하고 떨어진 괴물의 몸이 떨어진 곳에 오히려 불길이 옮겨붙었다.
후원의 잔디들이 순식간에 타기 시작했다. 여전히 동력을 잃지 않은 파란 눈의 괴물은 그 가운데에서 버니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에 뒷걸음을 치던 버니언은 이미 느꼈듯이 황궁 위에 떠올라 있어야 할 결계의 마법진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의문했다.
‘대체 뭐지?’
그런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조금 떨어진 황성의 이름 없는 탑에서부터 마치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온 것은.
그리고 이어서 쿠르르르릉, 하고 하늘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이 몰려올 것처럼 말이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그것을 마주 바라보고 있던 버니언까지 일순 주의를 빼앗겨 돌아볼 정도로 귓가를 크게 울리는 소리였다.
소리의 근원은 황성의 이름 없는 탑이었다. 버니언은 그 상층부가 검은 마치 하늘에 난 거대한 공동에 잡아먹힌 것 같은 현상을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새까만 구름이 몰려온 것이 보였고, 순식간에 황성 전역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하여 검은 구멍의 위로 무언가가 튀어오르는 모습이 버니언의 시야에 들어왔다.
‘새?’
새라면 아주 거대한 새…….
그러나 새하얗고 긴 몸체를 유연하게 휘며 하늘로 향하는 그것은 새라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이어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속에서 그 정체 불명의 동물이 호이이이잇, 하며 가늘게 우는 소리가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뒤 검은 구멍의 주위를 한 바퀴 돈 거대한 새는 입을 벌렸다. 제 눈앞의 탑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는 듯이.
그리고.
“크르르르…….”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버니언은 뒤늦게야 괴물의 소리를 들으며 아차했다.
제 바로 머리 위까지 도약한 괴물의 그림자가 그의 몸을 가렸다.
* * *
그 시각, 이미 대부분의 귀족들이 홀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연회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해 둔 대로 연회장에는 평화로운 선율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온은 카밀루스가 과연 제시간에 올지 조금 초조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티내지 않고 1층 홀의 한편에서 미아블레 후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빠져나온 둘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했다.
“가보인 레갈리아를 도난당한 건 이미 몇 년이 지난 일입니다. 제가 후작이 되기도 전에 사라졌으니.”
“그런 자세한 이야기는 오히려 선대 후작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네요.”
이온은 늘 그렇듯이 와인 잔에 와인 대신 물을 채워 홀짝이는 중이었다.
사실 이제는 제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시면 안 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이온의 대꾸에 후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쓸쓸해하는 어투로 이야기했다.
“저도 그걸 찾아서 대공 전하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찾기만 하면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는 건가요?”
되묻자 후작이 이온을 내려다보며 살며시 눈꼬리를 휘었다. 뭔가 싶어 바라보는 이온에게 후작이 살며시 귓속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실파의 수장이신 크레이거 공작께서 직접 나서셨는데, 그 파급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이온은 그에 작게 웃으며 홀의 가운데에서 제 어머니와 함께 다른 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 공작을 눈으로 살폈다.
공작은 아들이 미아블레 후작과 대화하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미아블레 가문 또한 비극으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선대에 황후를 배출했을 만큼 한때는 유명한 황실파의 가문 중 하나였으니 어쩌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그러니 아마 미아블레 후작 역시 얼마 전 크레이거 공작이 보낸 편지를 받았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공작가의 가신 가문과 황실파 귀족들에게 향한 것이었다.
내용은 의외로 별것 아니었다.
황실 주체의 연말 연회에 참석하여 주시게.
그곳에서 우리 크레이거 가문의 황실을 향한 영원한 맹세를 다시 한번 공고히 하려 하니.
제국의 건국 때부터 이어져 온, 영원한 2인자로서 황실을 떠받들겠다는 의지.
공작이 말한 것은 그런 부분이었으니, 오히려 버니언의 즉위년에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면 의도한 바와 다른 메시지로 읽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레이거 공작이 아직도 카밀루스를 집에서 내쫓지 않고, 몇 개월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귀족들에게는 어떤 메시지가 되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도, 누가 봐도 그 기간이 아주 과했기 때문이다.
‘그거 때문에 불안해서 버니언이 나한테 더 열심히 청혼했던 걸지도…….’
방에서의 반응을 보면 그는 마지막까지도 크레이거 공작가가 설마 제 편을 들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카밀루스는 아직도 사생아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설마 하는 자들도 많았다.
어쨌든 상황이 좀 혼란스러워 그런 걸까. 아직 퀘스트가 완료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멜 드루실라 크레이거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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