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몬스터화가 진행되겠지.’
그때만 해도 그것을 제가 마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마나와 마기를 한번에 갖는 몸.
전혀 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속에서 외졌으나 마리엘은 마탑주만 기뻐한다면 상관없다고도 느꼈다.
그만큼 마리엘의 눈도 가려져 있었다는 의미였다.
“당시의 마탑주는 아주 교활한 자였습니다.”
카밀루는 언제든 재니스와 언제 어디어 튀어나와 제 뒤를 덮칠지 모르는 마리엘을 신경 쓰며 대꾸했다.
“마리엘이 그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군. 그래서, 결국 그 약물을 마시고 마리엘이 지금의 꼴이 된 건가.”
“마나와 마기가 동시에 있는. 한마디로 그녀의 몸은 현재 몬스터 몸이자 인간의 몸인것이지요.”
“그래서, 네가 마리엘의 뼈로 만들어쳤다는 건 뭐지?”
마탑주와 잠이 든 사이 마리엘의 입술 사이로 그것이 흘러들어 왔고, 비몽사몽한 와중에 그녀는 마탑주가 입에 넣어 주는 것이면 괜찮겠거니 하면서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마리엘은 지극한 역겨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 옆에 놓인 병, 갑자기 제 안쪽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마리엘은 뒤늦게야 제가 제조했던 그 괴악한 것을 스스로가 삼켰음을 알게 됐다.
〈어, 어째서…….〉
〈마리엘. 하하하, 걱정하지 마. 넌 아주 이로운 역할을 하게 될 테니까.〉
마시고 침대 밖에 쓰러져 내린 마리엘을 마탑주는 머리를 붙잡고 책장 너머의 결계 안쪽으로 데려갔다.
마리엘은 그곳에 이미 죽어 있는 괴물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 때문에 마리엘은 순간적으로 이성은 잃었다.
뇌 끝까지 차오른 마기는 그녀를 집어삼켜 금세 신체 변형을 일으켰다. 마리엘은 손끝에서부터 검은 마기에 잠식되어 몬스터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느꼈다. 제 모습은 눈앞의 죽은 몬스터처럼 변형될 것이며, 이전에 그 몬스터가 속박되어 있으면서 마기는 뽑혔던 것과 같이 저 또한 그러한 신세가 될 것임을.
시시각각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를 오가면서 마리엘은 제 몸을 지배하려 드는 마기를 밀어 내려 애썼다. 그렇지만.
크르르르르르.
마리엘의 목에서는 그런 끔찍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탑주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즐겁게 웃었고, 완전히 몬스터화가 되기 전에 마리엘을 속박할 구속구를 채우려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마리엘은 그의 머리를 제 입에 넣었다. 머리뼈를 부수는 끔찍한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가장 좋은 판단을 했음을 알아차렸다.
마탑주의 피와 함께 흐르는 청량한 마나가, 그녀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마리엘의 몸엔 본래도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나가 녹아 있었다. 거기에 마법사 중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마탑주의 마나까지 수용해 내게 되니 몬스터화의 진행을 막아 줄 정도의 강대한 저항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 신체의 절반 이상이 몬스터화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마리엘은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곳, 오른쪽 어깨뼈를 제외하고.
〈빌어먹을…….〉
제 오른쪽 어깨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더듬던 마리엘은 욕설을 토해 냈다.
과대하게 울퉁불퉁한 근육과 몸집을 키워 나가기 위해 툭 튀어나왔던 뼈. 입고 있던 옷마저 뚫고 나왔다.
거울은 보지 못했지만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일 거였다.
마리엘은 이외에도 제 안에서 사람과 다른 부분이 있을 것임을 예감했다. 아니, 예감 정도가 아니라 어디부터 어디까지 바뀌었을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온몸의 피에 스며든 마기, 그리고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강대한 마나. 두 기운이 제 안에서 섞이지 못하고 충돌하는 것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손 역시 검게 물들었다. 그 마기는 팔을 타고 올라왔다가 다시 밀려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리엘은 제가 머리를 부순 마탑주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가 사라져 버린다면 갑작스러운 공백에 마탑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어쩌면 마리엘을 의심할지도 몰랐다.
‘그럼 어떻다고,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건데.’
제 속의 포악한 몬스터의 성향이 그렇게 속삭이며 부추겼지만, 마리엘은 이성으로 이겨 냈다.
물론 그 이성이라는 것이, 덜 잔인한 방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마탑주의 시신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대신 자신이 그것을 사역해 차라리 마탑을 접수하는 거다.
그러다 때를 봐서 마탑주를 자연스럽게 물러나도록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마리엘은 마탑주의 시신 중 멀쩡한 곳을 남기고, 제 어깨뼈를 깎아 부서진 머리의 뼈를 새로 만들어서 이었다. 그러고 그 위에 마탑주의 얼굴 가죽을 덧씌웠다.
죽은 시신을 사역하는 일은 한 번도 실험조차 해 본 적 없지만, 어째선지 마리엘은 본능적으로 그 방법을 알게 됐다.
몬스터의 피란 그런 건가.
제 안에 마기가 흐르고 있다는 게 끔찍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몸이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가 된 것에 이상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그러고 마리엘은 마탑주를 적당히 은퇴시켰죠. 그리고 그다음엔 얼굴의 가죽을 갈고, 몸을 다듬어서 이 재니스를 만들어 낸 겁니다.”
“…….”
한마디로 재니스는 그 당시 마탑주의 걸어다니는 시신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그것도 100여 년이 다 된.
꽤 길었던 이야기를 들은 카밀루스는 재니스를 앞에 두고 있자니 갑자기 속이 좋지 못해졌다.
하지만 재니스는 카밀루스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걸어왔다.
“마리엘은 스스로의 몸에서 그 마기를 전부 몰아내길 바라고 있어요.”
재니스의 설명에 카밀루스가 눈살을 조금 찡그렸다.
마탑주의 머리를 부수었을 때 그녀가 느꼈다는 청량함. 그것을 마리엘이 다시 한번 느끼기를 바라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거 때문에 강대한 마나가 필요한 건가.”
“그것도 단숨에 마기를 몰아낼 정도의 아주 많은 양의 마나가요.”
카밀루스는 이제야 그녀가 선선대 황제와 대체 무슨 ‘거래’를 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했다.
탑에서 제게 진행된 실험과 수없이 생성된 마나석.
하지만 마리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강대한 마나 덩어리 자체인 카밀루스 클로델 본인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최후엔 마리엘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겠군.”
카밀루스의 중얼거림에 재니스가 입술을 씨익 끌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리엘은 대공께는 원한이 없으니까요.”
“무슨 뜻이지?”
“대공은 황제에 올라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잘 살게 되실 겁니다. 그저 눈감고 난 직후에, 그러니까 그 몸에서 마나의 동력이 떨어지기 전에 마리엘의 제물이 되면 그만이에요.”
“…….”
“합리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클로델 황가는 죽은 황제의 시신을 바치고, 대신 살아 있을 때는 가장 강력한 황권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게 맹세의 내용인 거군. 네가 떠들어 대는 클로델 황가의 영광의 실체이기도 하고.”
카밀루스의 정리에 재니스는 눈을 휘어 웃었다.
단지 보기만 해서는 성별 구분이 안 되는, 그 특징 없는 얼굴이 보이는 미소가 카밀루스는 역겹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몸은 이미 썩었어야 할 시신이라니, 반길 수 있을 턱이 없다.
분명한 건 마리엘도 제정신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카밀루스는 이 정신 나간 대화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마리엘은 어디에 있나.”
“전 어차피 마리엘의 조종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으니…… 근처에 있겠지요?”
그리고 카밀루스는 재니스의 답을 듣자마자 그에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어 재니스의 주변을 하얗게 감싸더니, 그곳에서 나온 거대한 얼음 송곳이 다섯 개가 그의 몸통을 관통해 버렸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재니스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카밀루스는 틈을 두지 않고 그 앞에 다가가 몸을 휘청거리는 재니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마자 재니스의 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몸속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밀루스의 손짓에 재니스는 더는 사람처럼 숨 쉬는 흉내를 내지 못했다.
“더는 역겹게 걸어 다니지 마라. 이 시신도…… 100년이나 움직였으면 쉬게 해 줘야지.”
“…….”
재니스의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한기가 목 부근까지 올라왔다. 하얗게 올라온 서리는 눈 깜짝할 새 얼굴에까지 퍼졌다. 입을 움직이지 못하게 얼린 탓에 카밀루스를 빤히 볼 뿐,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카밀루스는 그런 재니스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좀 더 힘을 주입했다. 그러자 재니스의 몸체를 가로질렀던 송곳이 커져 나갔다.
쩌저정!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재니스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재니스의 몸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조각조각 깨져 버렸다. 이어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카밀루스는 수십 조각의 얼음 덩어리가 되어 버린 재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동안 그 부스러기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허탈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쉬운 거였나.’
어차피 이건 단지 마리엘의 사역마에 불과했다.
하지만 카밀루스에게는 제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이었다. 한때 선황과 함께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던.
하지만 선황은 카밀루스에게 용서조차 빌지 않고 알아서 늙어 죽었다. 절대적인 강함의 표상이라 생각했던 재니스는 이토록 허망하게 제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복수를 위해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화풀이조차 되지 않는 결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하…….”
그사이 멀리서 지켜보며 떨고 있던 작은 화이트 드래곤이 카밀루스의 품에 뛰어들었다.
“꾸우우…….”
녀석을 얼떨결에 안아 든 카밀루스는 탑에 가득한 마기 때문에 녀석이 끙끙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마나를 조금 주입해 주니 날개가 조금 커지는 것이 육안으로도 구분이 될 정도였다.
아기 드래곤은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보다가 작은 손을 움직여 위쪽을 가리켰다.
“뀨.”
재니스를 다 처리했으니 어서 올라가자는 소리였다.
“마리엘은 역시 위층에 있겠지?”
카밀루스는 녀석의 손짓을 따라 어두움에 삼켜진 계단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다량의 마기가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카밀루스는 자꾸만 제 몸에 스며들어 저를 지배하려 드는 마기를 의식적으로 밀어 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품에 꽉 안겨 몸을 떠는 드래곤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