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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53)화 (253/317)

“뭐가 있는지 알겠어?”

“뀨, 뀨.”

질문에 욤뇽이는 물빛 눈을 촉촉이 적셨다.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긴 하지만 녀석과 관련된 무언가가 위에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중간에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니 카밀루스는 순간 이동을 이용래 천천히 한 층씩 이동했다.

이 이름 없는 탑은 황성의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높은 탑인 만큼 층도 수십 개였다. 그것을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마물이 으르렁대는 소리와 비슷했고, 그것에 반응해 카밀루스의 품에서 얼굴을 묻고 떨던 욤뇽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뀨, 뀨…….”

아기 드래곤이 우는 것을 카밀루스가 달래 주려 내려다봤을 때였다. 갑자기 팔에서 빠져나간 욤뇽이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위층을 향해 빠르게 비행했다.

순식간에 놓쳐 버린 카밀루스가 그 뒤를 서둘러 쫓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욤뇽이를 발견한 순간, 멈칫해 버렸다.

“뀨우…….”

“이건.”

눈앞에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드래곤이 보였다. 마기에 잠식된 듯 검은 몸체를 지닌 그것은 그륵거리며 신음하는 중이었다.

“뀨, 뀨.”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의 등장에 카밀루스는 당혹감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욤뇽이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걸까.

녀석은 앞에서 날개를 파르르 떨며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밀루스가 기다리던 자가 나타났다.

“그 드래곤의 배 속에 아이가 있을 겁니다, 대공.”

“…….”

태연한 목소리에 카밀루스가 위층 계단을 향하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언제나처렇 케이프 후드를 뒤집어쓴 인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리엘이었다, 재니스가 곁에 없는.

마리엘은 카밀루스가 자신을 잔뜩 경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림자 아래로 비식 웃음을 흘렸다.

“재니스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꽤 잔인하게 처리를 하셨나 보지요?”

“보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카밀루스가 바닥에서 훌쩍이고 있는 아기 드래곤을 일단 품에 안고서 마리엘과 검은 드래곤 둘 모두와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봐도 전부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저 드래곤의 존재는 대체 뭔가 싶었다.

‘어디에서 저런 성체가…….’

생긴 건 욤뇽이의 성체와 비슷하게 생긴 데다 품 안의 녀석이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면 둘이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 조그마한 녀석의 엄마라도 되는 걸까.

문제는 마기에 잠식됐는지 욤뇽이처럼 하얀색이 아니었다.

다만 마리엘과 같은 상태가 아닌가 추측되었다. 몸에 상당량의 마나가 있어서 겨우 버티는 그런 상태 말이다.

카밀루스는 눈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곧 마리엘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리엘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마리엘의 말에 카밀루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오히려 내가 해야 하는 말이야. 넌 그 몸의 마기를 몰아내려고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

그러자 마리엘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재니스가 망가지기 전에 말해 주지 않았나요? 그러라고 지시를 했었는데.”

“…….”

자신의 시체를 먹는 그 이상한 계획이 진짜란 말인가.

그런 소름 끼치는 짓을 굳이 실행에 옮기려는 마음은 전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듣기만 해도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카밀루스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은 마리엘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검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그에 대한 설명은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묶여 있는 녀석의 뿔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아이는 원래 대공의 품에 있는 그 아이처럼 하얀 드래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넘치는 마나를 소유하고 있었죠.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말해라.”

사실 마리엘이 드래곤을 어떻게 손에 넣었고 하는 것은 그리 호기심이 이는 부분이 아니었다. 다만 카밀루스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겸 적당히 받아쳤다.

“선선대 황제 덕분에 전 이 아이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지요.”

마리엘은 제가 지금껏 본 사람 중에 어리석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재니스를 만들어 마탑주로 올리고, 황실에서 부를 때마다 함께했었다.

선선대 황제의 눈초리도 이상하고 자꾸만 악수를 하자고 하는 게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재니스와 마리엘의 관계를 눈치챘다.

선선대 황제는 그 자신도 대단한 마법사였기 때문에 그들과 접촉하면서 대강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한 모양이었다.

마리엘이 예사롭지 않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챈 선선대 황제는 그녀를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어 했고, 마침내 제 욕망을 풀어냈다.

〈오브라이언이 건국한 지도 이제 너무 오래됐다 보니 우리 황실을 허수아비처럼 대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난 우리 클로델 황가의 광영이 영원하길 바라.〉

〈무엇을 원하시는 건가요?〉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한 황제를 만들어 다오. 너처럼, 아주 강한.〉

이를테면 지금의 카밀루스와 같은 후계를 만들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였다.

그 연구를 위해서 마탑이 원하는 만큼 예산을 쏟아부어 주겠다고 말했다. 마리엘도 연구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호기심이 당긴다고 여겼다.

마탑주에게 배신당하고, 몸 일부가 몬스터화되면서 죽지도 늙지도 못한 채 예상치 못하게 오랜 세월을 살게 되었지만 마법 연구를 향한 그녀의 열정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복구할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다. 하지만 복구는커녕 제 안의 마기를 몰아내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선대 황제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래전 마탑주의 머리를 깨부수었을 때의 그 감각이 떠올랐다.

제 몸을 정화해 주는 것처럼 청량했던, 그 감각…….

몬스터들이 사람을 먹으면서 얻는 쾌감이 이런 걸까.

마리엘은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느껴졌지만, 이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충동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 충동이 제 몸 안에서 마기를 몰아내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 역시.

〈클로델 황가의 광영을 지켜 드리지요. 그리고 황위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엘의 말을 선선대 황제는 바로 알아들었다.

황위에 있는 동안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은, 그 뒤에 건드리겠다는 말과 등치라는 걸.

다만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마리엘의 의견에 동조했고, 마리엘이 몇 년의 연구 끝에 내놓은 저주 물약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실제적인 무언가가 오간 뒤에야 선선대 황제도, 마리엘도 서로의 이해가 확실히 맞았음을 인지했다.

덕분에 경계가 풀어진 선선대 황제는 마리엘에게 자신의 비밀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선선대 황제는 황성의 이 이름 없는 탑으로 마리엘을 안내했다.

당시의 탑은 완전히 버려진 공간이었다. 선대의 황후들, 그리고 황성에서 있던 그 외의 사람들이 꽤 많이 뛰어 내리는 바람에 모두가 그곳을 꺼렸다.

금지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곳을 꺼렸다.

선선대 황제는 그 탑의 꼭대기에 마리엘과 함께 올라 성전 터를 바라보았다.

〈마리엘, 그대는 저 성전에 모셨던 블랑셰가 무언지 정확히 아나?〉

클로델 황가의 1대 황제가 성전을 완전히 부수어 버린 이후, 저 성전 터에 주목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더는 종교가 아니며, 우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선선대 황제는 그 우상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황권 강화를 위해.

그를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블랑셰’를 찾는 것이라 믿었고, 놀랍게도 그는 그 동물이 실재한다고 생각했다.

〈저 성전 밑에 아직 파괴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네.〉

〈저 안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리엘은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블랑셰라니, 건국 초의 이야기니 이미 천 년이 흘렀다. 어떤 생물이라도 썩어 문드러질 때가 됐다.

그런데.

〈이 탑에 신비한 동물이 살고 있어.〉

성전으로 가지 못하는, 비운의 동물이.

“이 아이를 처음 봤을 땐 대공이 안고 계신 것보다 훨씬 더 작았었지요.”

“…….”

“선선대 황제는 이것의 부활을 바랐고, 저도 이 녀석을 마탑으로 데려가 성체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양의 마나를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커지지 않더군요. …….뭔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카밀루스는 그 ‘뭔가’가 무엇일지, 희미하게나마 예측할 수 있을 듯했다.

성전과 관련된 것. 곧 미아블레 가문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아블레가의 무엇을, 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미아블레 가문의 성물을 말하는 건가.”

몇 년 전 도난당했다는 그 성물.

여기까지 들으니 그게 마리엘의 손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카밀루스의 말을 들은 마리엘도 후드 아래에서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씨익 올려 웃었다. 계속 보니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아니요, 미아블레 가문의 핏줄 그 자체였지요. 마침 황실 안에 있지 않았습니까?”

“……!”

말을 듣는 순간 카밀루스가 눈을 크게 떴다.

황실 안에 있던 미아블레 가문의 핏줄. 그것은 곧 로제니아 미아블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마리엘은 조용히 웃기만 했고, 카밀루스는 그 질척한 의뭉스러움에 눈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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