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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55)화 (255/317)

그에 카밀루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글쎄, 그런 걸 너 따위가 알 필요가 있나?”

말하자마자 카밀루스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그려져 나갔다. 순도 높은 마나의 색처럼 푸른색의 빛이 어두운 탑 내부를 밝히면서 순간적으로 주변의 마기 또한 사그라들었다.

마리엘은 제가 카밀루스가 시전하는 마법의 영역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다지 당황한 눈치는 아니었다.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

제동이 걸린 듯이 이동 마법이 먹히지 않는 것에 당황한 마리엘이 제 발밑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들어 카밀루스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림자 아래에서도 눈이 당혹으로 물든 것이 확연히 보였다.

“이거 무슨 마법이지요?”

카밀루스는 손에서 긴 얼음 창을 뽑아 내며 대답했다.

“아공간을 여는 주문이다. 너와 나 같은 죄인이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지.”

그 창의 끝이 마리엘의 배를 관통하기 직전이었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는 그대로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 * *

이름 없는 탑에 일어난 변화로 연회장에 있던 귀족들 말고도 황성 내의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는 듯했다.

이온은 누군가의 지시도 없어 아직 우왕좌왕하는 성 내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다 대정원을 지나는데 문득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련님……!”

에렌스트 경의 목소리였다. 이온이 연회장에서 사라진 것을 알고 급하게 찾다가 달려온 모양이었다.

페드로와 함께 있던 이온은 목소리를 알아듣고 흠칫했다.

“……알렉.”

페드로가 제 옷을 벗어 비를 막아 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에렌스트 경도 이온에게 겉옷을 벗어 주며 빠르게 이야기했다.

“지금 어딜 가시는 겁니까? 공작께서 연회장 쪽을 수습하는 와중에 갑자기 도련님이 없어지셨다고 하셔서…….”

“탑으로 가야 해.”

이온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에렌스트 경이 미간을 좁히더니 단호하게 대꾸했다.

“안 됩니다. 비가 오는데도 황궁에 계속 연기가 솟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라면 황성 입구가 폐쇄될 겁니다. 빨리 나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그 말에 이온도, 페드로도 탑에 집중하느라 조금 관심에서 멀어졌던 황궁 쪽을 살폈다. 에렌스트 경의 말대로 빗줄기가 꽤 짙어졌음에도 계속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탑에도, 황궁에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온에게 중요한 건 버니언이 아니라 카밀루스였다. 당연히 무슨 말을 듣든 이온의 선택은 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렉, 탑에 카밀루스가 있어.”

에렌스트 경이 하, 하고 작게 한숨을 쉬더니 어깨를 붙잡았다.

“도련님,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저곳에서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도련님은 전력이 안 됩니다.”

“…….”

반박할 데가 없는 말이라 이온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시야 한구석에서 시스템창이 뜨며 자꾸만 이온에게 저곳을 향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황성 탑으로 향하기]

이온이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페드로를 돌아봤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렌스트 경의 눈길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에렌스트 경의 말이 맞습니다. 대공께는 제가 갈 테니…….”

말을 하는 도중 이온은 입술을 꾹 말아 물더니 에렌스트 경의 손을 쳐 낸 뒤 탑 쪽을 향해 달려갔다.

“도련님!”

이온이 이럴 줄은 몰랐는지 순간 이온을 놓쳐 버린 에렌스트 경이 쫓아왔다. 어차피 금방 따라잡힐 테지만 이온은 신경 쓰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몸이 약하디약한 탓에 대정원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숨이 찼다. 금세 폐가 조이는 느낌에 이온은 헉헉, 갈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에렌스트 경이 팔로 이온의 가슴을 받쳐 겨우 넘어지는 걸 막았다.

허억, 헉.

이온이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있으니 에렌스트 경이 이온의 새파래진 안색을 살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3%입니다.]

이온은 숨을 정신없이 들이켜면서도 말했다.

“알렉, 네가 말려도 갈 거야…….”

“…….”

“내가 달려가다가 죽는지…… 헉, 아니면 탑에서 죽는지 확인할래?”

“도련님.”

“넌 내 기사야! 내 명령에 따라야지.”

스스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온은 그를 다그쳤다. 에렌스트 경은 이온의 초록빛 눈에 특유의 고집스러움이 배는 것을 보고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는 사이 이온이 콧숨을 계속해서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대공이 있으면 날 지켜 줄 거야. 이미 죽었으면…….”

말하는 도중 이온은 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이번엔 숨이 차서가 아니었다. 이온은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식혀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어차피 나도 죽어.”

계속 죽는다 하는 이온의 말에 에렌스트 경은 결국 항복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제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온을 에렌스트 경이 부축했다.

에렌스트 경은 페드로와 함께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이온을 안내하며 탑을 둘러싼 금지(禁地) 안으로 향했다.

탑의 주변은 이온의 기억 속 모습과 일치했다. 어린아이의 몸쯤은 쉽게 가릴 수 있을 만큼 길고 무성하게 자란 잔디. 그들은 그것을 헤치며 덩굴로 둘러싸인, 으스스해 보이는 탑으로 가까이 향했다.

저녁의 어스름이 깔린 가운데 이온은 탑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페드로가 열어젖혔고, 긴장했던 것과 달리 이온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탑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안쪽에 가득 차 있는 짙은 푸른빛에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야만 했다.

세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싶었다. 그러나 이내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싸 오는 것에 그때까지 진정되지 않았던 이온의 숨이 가라앉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눈앞에 여러 개의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상태 이상 : 충만한 마나(강화)]

[강화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갑니다. 본 마나의 흐름 안에 있는 동안 강화율이 유지됩니다.]

자세히 보니 탑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탑 안으로 잔뜩 흘러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결계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온은 탑으로 진입하는 동안 카밀루스가 말했던 이중 결계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1층을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굉장한 양의 마나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그 성전과 연결된 통로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페드로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굉장한데요, 이건.”

침을 꿀꺽 삼키는 이온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 알림이 떴다.

[황성 탑으로 향하기]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탑과 관련한 기억 일부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회복되는 기억에 따라 □□가 특정될 수 있습니다.]

이온은 그에 탑의 벽을 만져 보았다.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는 돌벽이, 그렇게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딱 한 번 꿈을 꿨을 뿐인데.’

죽을 뻔했을 때 주마등인가 뭔가 하는 것을 봤던 게 전부였다. 그러다 이온은 계단을 올라가며 다른 것을 떠올렸다.

‘아니, 이 탑을 또 오른 적이 있구나.’

카밀루스가 나오는 이상한 꿈.

그 속의 탑도 이곳이었다.

와 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푸른 이끼가 낀 서늘한 돌벽, 나선형의 계단…….

이온은 위를 올려다보며 언젠가 그 꿈속에서 달리고 있던 스스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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