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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57)화 (257/317)

자세히 보니 아이의 배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온은 다리 힘이 풀려 약간 비틀거리면서 아이를 불렀다.

“저, 저기…… 카, 카밀루스?”

“…….”

이온의 부름에 카밀루스의 숨소리가 크게 들이켜지는 것 같더니, 모든 행동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렇지만 떨림만큼은 아직 유지되는 가운데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온의 존재에 놀란 듯한 아이의 눈은 잔뜩 커져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놀란 것은 이온이 더했다. 얼굴을 확인한 이온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덜덜 떨리는 턱 밑으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꾹 다문 입 주변이 번들거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배의 부상 때문일까.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건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데도 치료받지도 못한 채로 혼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이온은 저절로 숨을 헐떡거렸다.

카밀루스는 눈을 몇 번 힘겹게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여기…….”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려던 것 같지만 아이는 말하던 도중에 울컥 피를 쏟았다.

그 광경에 이온은 아이가 죽을까 봐 무서워 입만 벌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 두 아이는 모두 어떤 소리를 들었다.

자박.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누군가의 발소리를.

먼저 반응한 건 카밀루스였다. 계단 쪽을 돌아보던 그가 이온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빨리 나가. 순간 이동을 써!”

“그, 그런 거 못 하는……데?”

“…….”

황당해 입을 벌리는 카밀루스의 얼굴을 보며 이온은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당장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숨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는 눈앞의 카밀루스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치료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카밀루스가 흘러내린 제 피로 바닥에 무언가를 간단히 그리기 시작했다.

이온의 무지한 눈으로 보기에도 딱 마법진처럼 생긴 것이었다.

그것을 그리는 와중에도 계속 계단 쪽의 눈치를 살피던 카밀루스가 이온에게 다급히 말을 전했다.

“여기에 손이나 발을 올려, 빨리!”

이온이 얼떨결에 몸을 옮겨 그의 말대로 그곳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이거 뭐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피로 그린 마법진이 파랗게 빛이 났다.

다음 순간, 이온은 황궁의 중앙 정원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

꽃 향기가 진동하는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이온은 너른 황성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탑 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된 이온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한참 생각했다.

‘순간 이동한 거구나.’

그렇게 멍하니 떠올리던 이온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능력이 있으면서 어째서 본인은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러다 피투성이였던 카밀루스의 모습을 상기하자 이온은 입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누가, 아주 나쁜 어른이…… 그 아이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그 추운 탑에 가둔 채로.

* * *

크레이거 공작은 어느새 도서관 밖으로 나와 중앙 정원에 있는 이온의 모습에 조금 당혹한 듯했다.

그렇지만 잠시의 해프닝으로 여길 뿐, 이온이 설마 탑에 갔다 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듯했다.

이온은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며 몇 번이나 공작에게 탑에 사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온도 눈치가 있으니 제가 본 것들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종종 방에 놀러 와 함꼐 자는 에밀리의 앞에서는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대신 저를 교육하는 마법 선생님에게 순간 이동 마법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졸랐고, 선생님은 의아애하면서 간단한 마법진을 알려 주었다.

그렇지만 마법적 재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던 이온이라, 당장 쓰지는 못했다. 순간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마나의 양이 꽤 많아서였다.

이온이 잠깐 이동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1, 2미터 남짓이었다.

비루한 결과에 이온이 우울해하자 선생님은 익숙해지면 더 먼 거리도 가능할 거라고 위로해 왔지만 이온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그 애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

진짜로 천재인가 보다.

이온에게 순간 이동 못 쓴다고 했을 때 황당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피범벅이 된 채로 쓰러져 있던 아이가 떠올라 걱정이 됐다.

죽었으면 어떡하지.

계단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는데, 계속 눈치를 살피던 걸 보면 나쁜 사람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 사람이 카밀루스를 결국 죽였을까.

죽음에 대해서 떠올리자 이온은 몸서리가 나도록 무서워졌다.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도 없었다.

탑에 다녀온 뒤 며칠간 그런 탓에 집안의 어른들이 이온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딱히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니었던 터라 모두가 의아함만 느낄 뿐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이온은 다시 한번 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다행히 기회도 왔다.

이온은 스스로가 유력 가문의 아들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황실에서 여는 행사라면 무조건 크레이거 공작에게도 초대장이 왔으니까 말이다.

사이의 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황성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드문 경우도 많으니 이온은 경우가 좋은 거였다.

* * *

추수감사제가 다가와 오브라이언 전역이 축제의 날에 돌입했고, 귀족들은 황실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했다.

또 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황궁으로 온 이온은 와글와글한 아이들 그룹에 껴서 놀고 있다가 눈치를 보고 슬쩍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 연회에 오기까지, 이온은 몇 달간 이동 마법을 수없이 연습했다.

하여 몰래 정원 한쪽에 마법진을 그려 놓고 눈치를 살펴서 탑으로 향했다.

사실 연회장 건물 뒤편 정원에서 탑까지 바로 가고 싶었지만, 아직 긴 거리를 운용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탑 바로 앞에 떨어진 이온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이익, 소리가 나는 낡은 문을 닫고서 다시 카밀루스를 만났던 층으로 올라가 기웃기웃했다.

더 위층으로 막 올라가기에는 저번에 다른 사람을 만날 뻔도 했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작게 휘파람 소리를 내 봤다.

휘익, 하고 기척을 흘려 봤지만 위층에서 어떤 반응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에 이온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단을 한 걸음 오르려 했을 때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또 왔어?”

놀라 비명을 내지를 뻔했지만 다행히 가까스로 입을 막았다. 이온이 뒤를 돌아보자 이전과 달리 멀쩡해진 카밀루스가 보였다.

이온이 자신보다 키가 좀 큰 그를 보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안 죽었어……?”

“…….”

카밀루스의 표정이 묘해지는 걸 보면서 이온은 뒤늦게야 제가 실언했음을 깨닫고는 다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정도로는 안 죽어. 죽도록 아프기는 하지만…….”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카밀루스의 반문에 이온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걱정돼서 계속 생각났어.”

대답하는 말을 듣고는 카밀루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아직 계단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온의 팔을 잡아당겼다.

카밀루스는 계단 밑의 어두운 공간으로 이온을 이끌며 변명을 덧붙였다.

“누가 올지 모르니까 이런 데 숨어 있는 게 나아.”

이온은 카밀루스와 나란히 앉으며 물끄러미 얼굴이며 몸을 살폈다. 옷 안쪽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렇지만 지난번의 모습을 본 이상, 그리고 손목에 있는 족쇄를 본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널 괴롭혀?”

카밀루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대답하는 대신 이온에게 다른 걸 물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말 안 해 줬었나?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이온 크레이거.”

“이온…….”

이름을 곱씹던 카밀루스가 아까부터 이온의 시선이 닿고 있는 제 손목의 족쇄를 더듬었다. 그러고는 씁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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