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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60)화 (260/317)

카밀루스의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자고 있었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온이 초록빛 눈을 크게 뜬 채로 몇 번 깜빡이고 있는데, 카밀루스가 발개진 눈가를 비비며 이름을 불러 왔다.

“……이온?”

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카밀루스가 이온을 와락 안아 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온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굳어 있는데, 카밀루스가 금세 숨소리를 거칠게 내뱉으며 이야기해 왔다.

“날 잊어버렸는 줄 알았어.”

이온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똑같은 말을 듣자 기분이 묘해졌다. 그렇지만 오해를 산 것 같아 이온이 급하게 변명을 입에 올렸다.

“저, 그게, 난 여기 자주 못 와서. 여기는 원래 황제 폐하가 사는 성이잖아. 그래서…… 난 허락받을 때만 올 수 있어.”

이온의 말을 듣고 카밀루스가 안았던 팔을 풀었다. 카밀루스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지 눈을 댕그랗게 떴다.

약간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이온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듯 잠시 멍하니 있던 카밀루스가 곧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 그렇구나.”

그러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매번 왔다 갔다 하니 당연히 아무 때나 올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냥 다시는 안 오는 줄 알고……. 이런 음침한 탑에 역시 나 따위 보러 오는 건 싫어하겠지 싶었어…….”

약간 울음기가 배어 있는 목소리로 잔뜩 움츠러들어서 하는 말에 이온은 당황해 반사적으로 물었다.

“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응.”

이온의 물음에 카밀루스는 주저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보고 싶다는 걸 별로 숨길 생각도 업는 그 반응에 이온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생각해 보니까 보고 싶다는 걸 숨길 이유는 없잖아……?’

근데 왜 ‘응.’이라는 한마디에 이렇게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괜스레 가슴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온은 다음 말을 고민했다.

나도 보고 싶었다고 말해 줘야 할까.

너랑 놀고 싶었다고.

아니, 그보다 널 꺼내 주려고 열심히 고민했었다고.

이온은 머리를 팽팽 굴리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헤맸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그런 이온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사과해 왔다.

“미안…….”

이온은 왜 갑자기 카밀루스가 의기소침해졌는지 몰라 되물었다.

“뭐가 미안해?”

“갑자기 안아서. 그…… 내가 너무 더럽잖아?”

카밀루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온은 그의 몰골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자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카밀루스의 손도 발도 새까맸다.

살이 많이 내려앉은 건 아닌 걸 보면 밥은 먹이는 거 같긴 한데, 그 이외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모양이었다.

이런 음침한 탑에 가둬 놓고 키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이를 관리해 줄까 싶기는 하다마는.

이온은 카밀루스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썼어.”

이온의 말에 카밀루스는 안심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직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 살짝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이온은 그 말을 듣고 서글퍼졌다. 가슴이 뭉클해져 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로라하는 공작가의 아들인 이온 크레이거는 카밀루스가 이 탑에서 겪는 고통이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방금의 그 말들로, 카밀루스가 저와 너무나 다른 아이라는 걸 느껴 버렸다.

스스로를 ‘나 따위’라고 지칭하고, ‘더럽다’라고 표현하는 그런 마음이 무엇인지 이온은 잘 몰랐다.

그렇지만 무척 슬픈 일이라는 사실쯤은 잘 알 것 같았고, 카밀루스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싫어졌다.

이런 게 동정심인 걸까.

동정심이란 나쁜 걸까.

하지만 이 탑 안에서 짓눌려 살아가는 불행한 한 아이를 이온은 외면하지 못할 듯싶었다.

‘역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꼭 꺼내 주어서 카밀루스에게 밝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 탑에서 나오면, 카밀루스가 분명히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온은 억지로나마 웃으며 카밀루스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놀라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이 반응을 보니 자신이 안 오는 동안 며칠을 울었는지, 또 얼마나 좌절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이온은 미안해졌다.

“나도 너 보고 싶었어.”

“…….”

“마법 가르쳐 주기로 했잖아. 오늘은 뭘 알려 줄 거야?”

* * *

저를 몇 개월이나 기다리면서 눈물짓던 카밀루스를 본 이후 이온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이전보다 모든 걸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귀족의 의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아무리 떠들어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카밀루스를 보고 나니 제 처지가 확실히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고,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다.

카밀루스를 여러 차례 만나고 나니 그렇게 누리고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날 여기 가둔 사람은 황제 폐하거든.〉

자신의 풍요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는 늘 자신에게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빼앗기는 것 같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처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음을 실감한 이온은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만약 크레이거 공작이 저에게 그런 짓을 하면 자신은 저항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떠올린 순간 이온은 이 세상의 심연을 보게 된 느낌이었다.

‘없다.’

아마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서 이온을 탑에 가두었다면 자신 역시 카밀루스와 같이 어디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금제로 묶어 놓고 저를 학대했다면 그게 제 인생인 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삶이 바뀌는 데는 많은 조건이 붙지 않았다…….

저택 별관의 대서재로 와 책을 보던 이온은 그런 생각을 하자 손이 바들바들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서둘러 서재의 책상 앞으로 가 그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자신을 따라온 전담 버틀러가 이온에게 염려 어린 말을 전해 왔다.

“도련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이온은 그에 늙은 버틀러를 돌아보았다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괘, 괜찮아.”

이제는 이런 주변의 배려조차 제가 받아도 되는 것이 맞는 건지 몰라 혼란스러워졌다.

이온은 이를 꾹 물고, 제가 가져온 책들을 열심히 뒤졌다.

마지막으로 탑에 다녀온 뒤로 이온은 카밀루스에게 걸린 마법이 무엇인지 일단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밀루스의 말에 따르면 그건 ‘금제’라고 했다. 이온은 공작가의 너른 대서재에서 책을 대충 훑어보며 그 단어가 보이는 책들을 전부 뽑아 왔다.

며칠 동안 그러고 있으니 아버지는 이온이 공부를 하는 줄 알고 마구 칭찬했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에밀리도 이온이 매달리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연신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게 밤잠까지 설치는 쪽으로 이어지니 크레이거 공작의 염려 어린 말들이 시작되었고, 이온이 코피를 쏟았다는 말을 전해 듣자 공작은 대서재로 뛰어왔다.

“이온?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게야? 이러다 쓰러진다, 고민이 있으면 이 아비에게 말하거라.”

그때도 이온은 예의 금제를 어떻게 푸는지에 대해서 찾고 있었다.

금제 마법은 간단한 마법인 만큼 푸는 방법 또한 너무 단순했다. 시전자가 직접 풀거나, 금제가 걸린 인물이 금제로 막아 둔 행위를 하는 거나, 금제 마법이 걸린 물체를 깨부수거나.

타인의 의지로 금제 마법을 풀려면 당연하지만 마법을 건 이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죽었다 깨나도 그런 힘은 저에게 없었다.

하여 어떻게 해야 잠시만이라도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찾고 있었다.

그 방법이 무척 위험하다는 데 있었지만.

공작의 말을 들었던 이온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카밀루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그 아이가 그렇게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카밀루스는 황제의 아들이다.

그리고 크레이거 공작은 그런 황제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 온 절대적인 충신이었다.

‘알고 있을지도 몰라.’

카밀루스를 가둬 두는 데 일조를 했는지, 아니면 알고 있지만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마음속으로는 후자이길 바랐지만…….

카밀루스가 갇혀 있는 모습을 본 이후 이온은 왜인지 어른들을 아무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황제 폐하도 무섭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군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뒤에서는 그렇게 아들을 탑에 가둬 놓고 학대를 하고 있지 않나.

설마 본인이 아들을 탑에 밀어 놓고 카밀루스의 상황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끔찍한 피투성이가 되는 것마저 그가 용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카밀루스는 착한 애였다.

몇 개월 동안 나타나지 않는 자신을 내내 기다리면서 울먹일 만큼 마음도 여렸다.

그런 애가 기억나지 않을 때부터 그곳에 갇혀 살 만큼의 큰 잘못을 저질렀을 리가.

이온은 아버지가 이 상황을 모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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