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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61)화 (261/317)

그렇지만 정말 모르는지 확인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 아버지가 카밀루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자신이 입을 뻥끗하는 순간 더는 카밀루스와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맞이해서는 안 되었다.

그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자각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온은 크레이거 공작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강해지고 싶어요, 아버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책을 보고 있으면서 ‘강해지고 싶다.’라고 하는 아들의 엉뚱한 말에 공작은 이온이 들여다보고 있는 책의 내용을 확인했다.

신체에 떠도는 마나를 증폭하기 위해서는…….

첫마디를 발견하자마자 사색이 된 그가 얼른 아들이 보고 있던 책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이온의 팔을 끌고 대서재 밖으로 나왔다.

서둘러 이온을 방에다 데려다 둔 그는 어린 아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온, 세상에 갑자기 강해지는 법은 없어. 그 책들에 적혀 있는 건 전부 잊거라. 그것들은 전부 사술이야. 결국 네게 해가 될 거다.”

“…….”

“이온? 어찌 대답이 없어?”

“알겠……어요.”

공작의 매서운 다그침에 못 이겨 이온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시간부로 크레이거 공작은 대서재에서 이온이 보던 그 책을 포함하여, 마나 증폭술과 관련한 모든 책들을 미련 없이 불태워 버렸다.

지식을 사랑하는 자로서 저택의 장서들을 소중히 여기는 공작이었으나, 어린 아들의 일탈을 원치 않는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온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선 예의 방법들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공작이 덮어 버린 그 책에 적혀 있는 말은 무척이나 간단했고, 그것이 이온에게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전신에 퍼져 있는 마나를 끌어 모아서 한순간에 쓰도록 해 주는 물약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뒤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런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많은 부작용에 시달렸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지만…….

이온은 그래도 방법이 있다면 카밀루스를 돕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의협십 같은 거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실제가 그랬으니까.

카밀루스의 말에 따르면 그 탑에 마탑의 마법사들도 드나든다고 했다. 카밀루스가 크게 다치면 치료도 해 준다고 하기에 이온이 좋은 사람들이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전부 한통속이야.〉

치료하고 회복하면 다시 마탑주인 재니스가 찾아온다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몸에서 마나석을 만들어 빼낸다고 했다. 마나석은 사람의 피를 뭉쳐서 만드는 돌이라고.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처음 들은 이온은 거짓말인 줄 알았지만, 대서재의 책을 뒤지고 그 마나석이라는 게 실재함을 알게 되었다.

듣자 하니 카밀루스의 몸에 흐르는 마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나석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마디로 카밀루스는 황금알 낳는 거위의, 거위 그 자체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배를 가르지 않고 계속 황금알을 낳는 역할인 것이다.

동화의 경우 사람의 욕심 때문에 배가 갈라져 거위가 죽어 버린 잔혹한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거위의 입장에선 죽는 게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래나 저래나 거위가 된 이상, 그 동화에는 행복한 결말이 존재할 수 없었다.

욕심 많은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거위가 자유로워질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꼭 찾아낼 거였다.

마나 증폭 약물.

그걸 들고서 카밀루스에게 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올 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온은 그 답을 사람을 찾았다.

다시 찾아간 탑의 약속한 층에 카밀루스가 없어 더 높이 올라간 이온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고, 숨을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어느 마법사의 손이 비명을 지를 뻔한 이온의 입을 막아 주었다.

갑자기 끼어든 가는 손가락.

“쉬이…….”

바람 소리처럼 작게 속삭여 오는 그 말에 이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흔들리는 초록빛 눈동자는 여전히 카밀루스를 담고 있었다.

이미 기절을 해 버린 카밀루스가 몇몇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마법사들은 카밀루스의 피를 받는 중이었다.

‘이게, 마나석을 만드는 과정인 거야……?’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광경에 충격을 받은 이온은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고 저를 뒤로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강제로 그들과 멀어졌다. 시야에서 카밀루스가 사라지고 계단 밑의 그늘에 숨었다.

이온은 그제야 고개를 젖혀 제 입을 막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이온에 비하면 머리가 훨씬 위에 있었다. 곧 케이프 후드의 그늘에 가려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절반 정도가 검은 사람이었다.

* * *

‘마리엘?’

순간적으로 흘러들어 온 기억 속에서 그녀를 발견한 이온은 흠칫해 버렸다.

[플레이어의 기억 재생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올라온 메시지에 걸음을 멈추었다.

메시지가 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찾았을 당시에는 ‘주마등’이라는 표현을 썼던 시스템이다.

그때는 죽기 직전에 본 것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오늘의 메시지는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기억?’

그러고 보니 시스템은 이온 크레이거와 이 몸에 뚝 떨어진 자신을 구분한 적이 없었다.

몸이 같기 때문에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걸까.

그보다 중요한 건 역시 마리엘이긴 했다.

‘내 저주를 건 사람은 마리엘이었겠지.’

이미 이에 대한 단서는 수없이 많은 곳에 흘려져 있었다. 그래서 놀랄 것은 아니었지만, 탑에서 마리엘을 만났었다니…… 이온은 그 시점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에 떠오른 그때에 마리엘이 바로 저주를 건 걸까?

생각하던 이온은 곧바로 부정했다.

‘카밀루스의 족쇄를 푼 게 정말로 나라면 그 당시에는 멀쩡했을 거야.’

이온은 제 머릿속의 기억이 아직 많이 비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중이었다.

카밀루스와 탈출하기까지의 기간이 다소간 남은 채였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마지막 순간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 올리듯이 시스템이 최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던 한 가지를 상기시켰다.

[상태 이상: 기억 상실]

하, 하고 한숨을 내쉰 이온은 탑 안을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러자 에렌스트 경이 바로 반응을 해 왔다.

“혹시 무슨 이상이라도 있으십니까, 도련님?”

“아, 아니…….”

고개를 저은 이온이 다만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의 그늘진 곳을 확인했다. 기억 속에서 카밀루스와 나란히 앉아 있던 곳이었다.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뒤에서 페드로가 다가와 슬쩍 말을 걸었다.

“추억이라도 떠오르신 모양이군요.”

그 말을 들으니 이온은 가슴이 옥죄어 오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숨을 쉬기가 어려워 의식적으로 크게 들이쉬었다.

이 층만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도 딱 이 위치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다 갔었다.

“……여기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사실 카밀루스와 만남은 그렇게 여러 번은 아니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 가끔의 만남이, 이온에게는 특별했고 아마 카밀루스에게는 더 특별했을 것이었다.

몇 개월 만에 나타난 자신을 기다리다가 눈물지었던 어린아이가 떠오르자 이온도 눈가가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맞은편의 구멍 뚫린 창 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재생된 기억에는 없었지만 어느새 일부가 흘러들어 왔는지 둘이 나란히 그곳에 매달려서 바깥을 내다본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엔가는 마탑에서 온 아저씨들이 들려줬다면서, 재미있는 얘기도 해 주고…….”

이온의 눈앞에 카밀루스가 울퉁불퉁한 창틀에 살짝 웃는 모습이 펼쳐졌다.

탑 안에 있으면 불행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카밀루스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깥을 배웠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풍경들을 보면서 바깥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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