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그녀의 등 뒤에서 빠져나온 촉수들이 카밀루스의 몸을 얽매려 뻗어 오는 것을 푸른 불꽃으로 태워 보려 했으나 수많은 그것들을 전부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카밀루스는 뒤늦게야 한 가닥이 남아 스멀스멀 어깨에 닿아 온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꿰뚫고 지나갔다.
“……!”
몸의 고통은, 오래전의 감각을 떠올린다면 꽤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마리엘의 손이 까딱하는 게 보인 순간 카밀루스는 느껴 버렸다.
제 몸 안에 마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마리엘의 촉수였던 그것은 빠르게 카밀루스의 몸에 흡수되었다.
피를 타고 불온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났다.
“……허억.”
순간 들이켠 숨에도 마기가 섞여 들어오며 본격적으로 빗장이 풀린 그의 몸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카밀루스는 어느새 제 뒤로 온 마리엘이 제 어깨를 붙잡은 것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몸이 둔중해진 탓이었다.
마리엘이 그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작게 속삭였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대공께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으실 테니.”
“…….”
“몸 안의 장기가 튼튼해지는 그 기분을 느끼시면 제가 왜 이렇게도 필사적으로 살아왔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카밀루스의 턱이 살며시 떨렸다. 그는 제 시야가 붉게 물드는 듯한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마리엘에게서 곧장 들을 수 있었다.
“우선 몬스터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온통 붉은색이지요. 인간의 눈으로 봤던 맑은 세상이 너무나 그리워져서 참을 수가 없어져요.”
이어 구석구석의 혈관이 팽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온몸에 미세한 고리들을 걸고 잡아당기는 듯한 이상하고도 끔찍한 느낌이었다.
“몸이 변형될 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역겨움도 함께 느끼고.”
카밀루스는 이를 악물었다. 제 안의 마나로 마기를 밀어 내려 노력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리엘은 카밀루스의 모습을 보며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뻔히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가엾어하는 눈빛으로 카밀루스를 들여다보았다. 상처 난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이 사뭇 부드러웠다.
“저와 같은 인간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비렌시움 대공.”
카밀루스는 거친 숨을 들이켜며 등 뒤의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손끝이 검어진 제 손을, 제 어깨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 위에 얹었다.
“나를…… 너와 같은 괴물로 만들 셈인 건가?”
“어차피 이온 크레이거의 배 속에 당신보다 가치가 높은 것이 있으니까, 대공께서는 별로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가……?”
[‘틈’의 소멸 시간까지 앞으로 0시간 32분 36초…….]
30분 내의 탈출.
그녀든, 자신이든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마법을 쓰셨는지 궁금한데, 안 알려 주십니까?”
“내가 왜 알려 줘야 하지?”
“그야, 지셨으니까?”
카밀루스는 그에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의 것 같지 않게 날카로워진 그의 손톱 끝이 마리엘의 손등을 파고들었다.
마리엘이 거슬렸는지 순간적으로 인상을 쓰면서 손을 털어 내려는 동작을 할 때였다.
카밀루스가 그녀의 손에 더욱 깊게 제 손톱을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진 건 넌데, 내가 왜.”
그리고 등 뒤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악, 아아악……!”
카밀루스가 손등을 통해 몸속에 밀어 넣은 마법의 불꽃이 마리엘의 장기를 태우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에 마리엘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자세조차 더 유지하지 못한 채 몸을 꺾기 시작했다.
카밀루스는 저에게서 도망치려고 하는 마리엘을 오히려 뒤돌아 목을 잡았다. 마리엘은 버티지 못해 몸을 무너뜨리면서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계속해서 추한 신음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가운데 장기는 타들어 갔지만, 그녀의 입 부근에는 하얗게 서리가 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는 카밀루스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강렬한 살해 충동이 일었다. 어째서 마리엘이 전대 마탑주의 머리를 부숴 버렸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새빨개진 시야 속에서 마리엘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는 와중 카밀루스는 계속해서 입을 벌렸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벌린 입을 그녀의 목덜미에 가져다 댄 순간, 겉으로는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그녀의 몸을 손으로는 밀쳐 버렸다.
비명을 지르던 모습 그대로 굳은 마리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마리엘’이 죽음에 이르러 ‘이온 크레이거’의 저주가 해제됩니다.]
수년간 기다려 왔던 메시지에 웃던 카밀루스는 그러나 기쁨을 채 다 누리지도 못했다.
반쯤 마물로 변했던 마리엘의 기괴한 시신을 내려다보며 그가 걸음을 뒤로 물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인간으로서는 결코 낼 수 없는 신음이었다.
“크르르, 흐으…….”
제 온몸에 퍼진 마기에 카밀루스의 몸이 비틀거렸다. 검게 물든 손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몸속의 장기도 그가 20년 넘게 써 온 것과는 달랐다.
쿵, 쿵.
시야가 온통 새빨개진 가운데, 카밀루스는 스스로의 몸 절반 이상이 이미 마기에 먹혀 버렸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남은 부분을 전부 지배당하면 더는 사람으로서의 이성을 유지할 수 없을 터였다.
그의 등 뒤로 몸이 울룩불룩해지려 하고 있었다. 카밀루스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필사적으로 마나를 운용해 제 몸 안에서 날뛰는 마기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악문 잇새로 신음을 흘리던 카밀루스는 차라리 제 혀를 깨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그러나 이 사이로 혀를 내민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벌린 채 자살 충동을 억눌렀다. 침이 흘러내리며 신음도 그와 함께 툭툭 떨어졌다.
“크으으, 끄윽…….”
이온한테 돌아가야 한다. 배 속의 아이한테도.
그리고 페드로에게도 돌아가기로 약속했었다.
카밀루스는 제게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틈’의 소멸 시간까지 앞으로 0시간 19분 46초…….]
두 눈을 뒤덮었던 마기가 조금 밀려나면서 완전히 붉게 물들었던 시야 일부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카밀루스는 제 등 뒤가 꿈틀거리며 제 의지와 상관없이 기괴스러운 날개와 촉수들이 돋아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
“……크으, 흐으으.”
이대로 스스로 마물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든 카밀루스는 몸을 떨었다.
이런 몸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게다가 이 ‘틈’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사실 알지 못했다.
이전에는 ‘틈’이 저를 쫓아낸 것에 불과했으므로.
그러나 지금은 제 발로 이곳에 두 번 기어 들어온 그를 쫓아낼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플레이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중…….]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중…….]
계속해서 시스템이 이곳을 나가는 방법을 조회하고 있었지만 찾을 수 없다는, 같은 메시지만 반복해 뜰 뿐이었다.
카밀루스는 남은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이 상황이 최악이 아니라는 데 안심했다.
저주가 풀리고 건강해진 이온을 두 눈으로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드디어 자신의 이 긴 여정이 끝이 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이 뻐근해져 왔다.
얼마나 간절히 염원해 왔던가.
이온을 무사히 살려 냈다는 것만으로도 카밀루스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내가 네 옆에 있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던 거야.’
카밀루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마음을 조금씩 비워 냈다. 그 와중에도 ‘틈’은 소멸할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고 있었다.
[‘틈’의 소멸 시간까지 앞으로 0시간 12분 9초…….]
줄어드는 시간을 보면서 카밀루스는 몸을 그냥 편안히 늘어뜨렸다. 의지가 느슨해지자 몸에 다시 마기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