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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67)화 (267/317)

그가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증발하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이온은 이렇게 됐을 때 도대체 어떻게 카밀루스를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밀루스는 저에게 위협이 되면 항상 달려올 수 있게 온갖 것을 준비해 놨으면서 제게는 아무것도…….

상념을 이어 가던 이온은 아, 하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가 떠올린 것을 다행히 바로 시스템이 눈앞에 띄워 주었다.

[상태 이상 ‘마법 계약’

시전자: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계약 유지 기간: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이나 플레이어 사망 시 혹은 플레이어의 상태 이상 ‘마나 소실’ 해제 시까지]

카밀루스가 사망할 시 끝나는 마법 계약. 창이 뜨는 걸 보니 아직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이온이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자 시스템이 안심하라는 양 메시지를 이었다.

[상태 이상: 마법 계약]

[본 상태 이상은 현재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난 뒤에야, 이온은 겨우 안심했다.

“카밀루스는…… 살아 있어요, 페드로.”

그럼 그렇지, 자신을 두고서 카밀루스가 어디로 가 버릴 리가 없다. 대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돌아올 거였다.

이온의 말에 페드로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온을 올려다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한테 걸었던 카밀루스의 마법이 아직 남아 있어요. 이건……. 카밀루스가 살아 있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마법이에요.”

이온의 말에 페드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직 안색은 창백했으나 이것으로 어느 정도 안심은 한 듯싶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온은 이어 욤뇽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카밀루스 어디 있어? 나한테 알려 줘.”

그러자 끙끙거리며 안절부절못하던 욤뇽이가 입에서 오색찬란한 구슬 하나를 꺼냈다. 아기 드래곤일 때도 종종 꺼내서 보여 줬던 구슬이었다. 그때보다 더 크고 예쁜 색을 발하는 기억의 구슬이 그들 사이에 놓였다.

“끼잉…….”

욤뇽이가 어째선지 연신 이온의 눈치를 살폈다. 자꾸 끙끙대는 녀석을 보면서 이온은 그 행동을 해석하려 애쓰다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내가 보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있는 거야?”

“끼.”

“괜찮아, 전부 보여 줘도 돼.”

달래는 소리에 욤뇽이는 결국 기억의 구슬에 제 손을 가져다 댔다. 이온은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두려워 저를 부축하고 있는 에렌스트 경의 팔뚝을 꽉 잡았다.

〈꾸우, 꾸.〉

욤뇽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영상이 시작되었다. 카밀루스는 발로 아마 매달려 있는 작은 욤뇽이를 밀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과 달리 검은 기운, 그러니까 아마도 마기로 추정되는 것들이 가득 차 있는 탑 안쪽. 마리엘이 딴청을 부리는 사이에 가볍게 뒷짐을 진 카밀루스의 손에는 천천히 그 마기들이 모이고 있었다.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만져 봤을 때도 조금 달랐거든요.〉

〈……그래?〉

대체 무슨 주제로 대화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명확해 보였다. 그가 탑 안의 마기를 제 주변으로 전부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

〈대공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어떤 마법을 쓴 겁니까?〉

〈글쎄, 그런 걸 너 따위가 알 필요가 있나?〉

이후 웃으며 대꾸하는 카밀루스와 방심하고 있던 마리엘의 아래로 마법진이 그려지며 카밀루스가 모아 두던 마기들이 일시에 어딘가에 흡수되듯이 훅 사라졌다.

그 순간 욤뇽이의 시야에 비치던 검은 기운들도 그들의 영역으로 확 끌어당겨지며, 마법진에서 올라온 빛에 감싸여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탑 안의 마기를 없애지는 못하고 어딘가로 이동시킨 거야.’

하지만 막상 그 마법에 걸린 당사자의 눈에는 그것이 잘 안 보였는지 마리엘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무슨 마법이지요?〉

방금 전과 비슷한 질문이었지만, 의미는 달랐다.

카밀루스가 그렇게 친절한 답을 내지 않았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잠시간 묶인 마리엘을 향해 제 손에서 뽑아낸 얼음 창의 끝을 겨누며 말했다.

〈아공간을 여는 주문이다.〉

아공간……?

조금 낯선 용어를 접한 이온이 의문을 떠올리는 사이 카밀루스는 마지막 말과 함께 마리엘과 함께 갑자기 아가리를 벌린 검은 어둠에 삼켜졌다.

〈너와 나 같은 죄인이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지.〉

그리고 이온이 탑 밖에서 봤던 둥그런 동공만 그 자리에 남았고, 탑 안의 모든 마기가 그곳에 마저 빨아들여졌다.

마치 그 동공이 강하게 흡입하는 것만같이 말이다.

그리고 마기가 사그라들수록 탑 안에는 지금처럼 푸른빛이 서서히 올라와 채워지기 시작했다. 검은 동공 앞에서 주인을 잃고 꾸욱꾸욱 울던 욤뇽이는 그 마나의 기운으로 성체가 된 모양이었다.

욤뇽이는 이후 혼란스러움에 그 구멍을 공격해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지나 다녀 보기도 한 모양이었지만 카밀루스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게다가 얼마 후 그 검은 구멍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온은 욤뇽이가 본 기억을 다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자리에 카밀루스만큼의 마법적 지식이 있는 이는 전혀 없었다.

욤뇽이 역시 이후 행동만 봐도 카밀루스가 마리엘을 끌고 어디로 간 건지 모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영상을 다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페드로였다.

“그럼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답을 내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카밀루스에게 큰 감정이 없는 에렌스트 경이 떨고 있는 이온을 단단히 붙잡아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대공께서는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설마 대책도 없이 가셨겠습니까.”

이온은 그 말에 입술을 움찔했다.

카밀루스가 자신의 문제라면 얼마나 무모해지는지 몇 번이나 두 눈으로 확인했었던 터다. 그러니 그라면 그런 배수의 진을 쳐 두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마 그런 생각을 한 건 페드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페드로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울렁였다. 잠시 뒤 이온에게로 향한 그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배어 있었다.

이온을 지키라며 페드로를 떼어 둔 카밀루스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훤히 읽혀 버린 탓이었다.

이온은 그 눈빛을 보고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에렌스트 경의 손을 밀어 냈다. 그리고 페드로에게 다가가 아직 바닥에 앉아 있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일어나요, 페드로.”

“소공작…….”

“마리엘을 이겨 낼 수 있을 거예요, 카밀루스라면요. 북부에서도 수많은 몬스터들을 잡았다고 했잖아요.”

물론 몬스터와 마리엘을 동일선상에 둘 수 없다는 건 이온도 알았다. 심지어 그가 잡아서 위명을 떨쳤다던 오우거 메이지조차 그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까 꼭 별탈 없이 돌아올 거예요.”

“…….”

하지만 그렇게 믿어야 했다.

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페드로를 일으켜 세워야 제게 내재된 혼란 또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그가 마리엘에게 진다는 가정 자체를 떠올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다만 일어나라며 페드로를 잡아당기는 이온의 손도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페드로는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소공작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고는 이온의 손을 잡았다. 페드로의 커다란 손이 감싸 오는 것에, 이온은 혹시 그가 위험하니 아예 탑을 내려가자고 할까 봐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그도 이곳에서 카밀루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전하께서, 저희가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면 어이없어하실 수도 있겠네요. 알아서 잘 돌아올 건데 뭐 하고 있느냐고요.”

이온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주의를 돌려 할 일을 찾으려 했다. 그의 시선이 욤뇽이가 내내 안고 있는 어미 드래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욤뇽이가 글썽글썽한 눈으로 도움을 청하듯 작게 울었다.

“끼.”

그에 이온이 다가가려는데 에렌스트 경이 팔을 붙잡아 막았다.

“혹시 모르니 제가 살피겠습니다. 물러나세요.”

“아, 응…….”

에렌스트 경이 욤뇽이 앞으로 성큼 다가서자, 그래도 아주 낯선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지 욤뇽이가 순순히 어미 드래곤에게서 떨어졌다.

드래곤의 몸체를 자세히 보니 얼룩덜룩하게 퍼진 검은 기운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로 정화하려고 노력하는 듯이.

“그르륵…….”

어딘가 불편한 듯 작게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녀석의 몸에 에렌스트 경이 손을 대자 드래곤이 불편한 듯 꼬리를 흠칫거렸다.

이온이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한마디 했다.

“알렉, 일단 그 사슬…… 풀어 줘야 하지 않을까? 풀 수 있겠어?”

아무래도 몸에 두른 사슬이 무언가 힘의 순환을 막고 있는 금제처럼 느껴졌다.

그에 에렌스트 경이 사슬을 살짝 당기고, 드래곤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살피자 페드로 역시 거들어 함께 들여다보았다.

페드로는 그르륵거리는 드래곤의 몸을 쓰다듬으며 바닥과 두툼한 배 사이로 손을 넣더니, 사슬을 쭉 끌어당겼다.

몸이 조여 오는 것에 드래곤이 꿈틀거리는 게느껴졌으나 다행히 큰 저항은 없었다. 페드로는 녀석의 머리에서부터 등까지 천천히 쓰다듬으며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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