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순하구나.”
그러면서 바깥으로 빼낸 부분을 확인한 에렌스트 경이 사슬의 연결부를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여기 부분을 끊으면 되긴 하겠군요.”
그러고 허리춤에 꽂혀 있는 칼을 빼내자 페드로가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아마도. 옆으로 물러나십시오.”
짧은 대답에 페드로가 방해하지 않도록 옆으로 빠지자, 에렌스트 경이 사슬 위로 칼을 내리쳤다.
곧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미세하게 흰빛이 이는가 싶더니 에렌스트 경의 칼에 정말로 사슬이 절단되었다.
이온은 그가 순간 보인 능력에 움찔했다.
‘검기……?’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역시나 놀란 페드로가 에렌스트 경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칼을 도로 집어넣으며 드래곤에게서 사슬을 벗겨 냈다.
잘그락거리며 그것이 떨어져 나가니 검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던 드래곤의 몸이 얼굴 부위에서부터 살짝 희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에 욤뇽이가 어미에게로 얼굴을 붙이며 작게 울었다.
“끼이이익.”
“끼이, 끼…….”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드래곤이 몸을 비비며 우는 모습을 보니 이온은 욤뇽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 안도했다.
그때, 욤뇽이의 어미가 아직 마기가 다 빠지지 않은 검은 날개를 살짝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끼이이.”
마치 봐 달라는 듯한 행동에 다가가려는 이온을 다시금 제지한 에렌스트 경이 그 앞으로 가 날개로 가려져 있던 드래곤의 옆구리를 살폈다.
미간이 살며시 좁힌 에렌스트 경이 그곳을 차마 손으로 만지지는 못하고 힘이 없어 파르르 떨리는 날개만 지탱해 주며 제가 확인한 바를읊었다.
“여기에 상처가 있습니다. ……일부러 째고 불로 지진 모양인데요.”
“……뭐?”
그것도 제대로 아물기는커녕 불로 지진 곳이 전혀 낫지 않은 상태였다. 마리엘이 해 놓은 짓임을 알아챈 이온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끼이이, 끼.”
중얼거림에 어미 드래곤이 울더니 머리를 이온에게로 돌렸다. 에렌스트 경이 순간 흠칫 놀라 이온을 돌아보았다.
“도련님!”
그가 재빨리 둘 사이를 막으려 했으나 이온은 오히려 멈칫한 드래곤을 보며 에렌스트 경을 물러나게 했다.
“괜찮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봐.”
이온은 욤뇽이와 같은 물빛의 순한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렇지?”
“끼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미 드래곤이 이온의 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온은 그런 드래곤의 커다란 머리를 살짝 안아 뿔을 쓰다듬어 주었다.
“마리엘이 널 이렇게 다치게 했어? 왜 그런 거야?”
“끼이.”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에 이온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어미 드래곤이 제 얼굴을 이온의 배에 연신 비볐다.
이온은 처음엔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고 계속 쓰다듬어 주다가 드래곤이 연신 저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배에 얼굴을 가져다 대기를 반복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겨우 메시지를 알아들은 이온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아기……?”
“끼, 끼.”
“아기가 네 몸 안에 있어?”
“끼이.”
“끼이이.”
이번엔 욤뇽이까지 가세해서 함께 대답했다. 이온은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깜빡이다가 에렌스트 경과 페드로를 돌아보았다.
“상처 안에 아기가…… 있는 모양인데요?”
아기.
그 단어를 곱씹다가 이온은 이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설마 태후의 아기?’
태후가 죽기 전,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아이가 드래곤의 몸속에 있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종족이 다른데 이온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으나, 마리엘을 떠올리면 영 황당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 터였다.
이온이 머뭇거리다가 에렌스트 경에게 제 추측을 이야기했다.
“그 상처 안에…… 아이가 있나 봐.”
“아이요?”
일반적으로는 드래곤의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에렌스트 경이 어미 드래곤을 내려다보며 아이와 상처의 연관성이 뭔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온은 등 뒤로 땀이 흐르는 느낌을 받으며 어미 드래곤에게 물었다.
“……아직 살아 있어?”
그러자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이온이 눈을 굴리며 헤매다가 드래곤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듯 어미 드래곤이 꼬리를 바닥에 찰싹거렸다. 그러나 이온은 녀석이 손을 거부하지는 않는 것을 보며,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에렌스트 경에게 이야기했다.
“여기를…… 갈라 봐야 할 것 같아.”
“예?”
“여기에 아이가 있대. 이 드래곤도 어서 꺼내 주고 싶나 봐.”
에렌스트 경이 당황해 페드로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쭉 지켜보면 페드로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을 전부 파악한 모양인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이를 받아 본 적 있으니…….”
물론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내 본 적은 없으나 페드로는 이 상황에서는 저밖에 나설 이가 없다는 걸 안 것 같았다.
그러자 욤뇽이가 걱정되는지 또 어미 드래곤과 몸을 얽으며 낑낑댔다. 페드로는 에렌스트 경에게 어미의 날개를 잡고 있으라고 신호를 보낸 뒤, 품 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벌겋게 상처가 난 부위에 칼을 대자 어미가 고통스러운 듯 꼬리를 또 찰싹거리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온은 녀석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어 주며 속삭였다.
“조금만 참아 줘.”
그러고 작게 고마워, 하고 속삭이자 어미 드래곤은 참는 듯이 끙끙거리면서도 몸부림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에렌스트 경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그도 예의 아이가 인간의 아이임을 눈치챈 듯싶었다.
그런데 페드로와 함께 드래곤의 옆구리를 들여다본 에렌스트 경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상황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마기에 뒤덮여 있습니다.”
“괜찮은 거야?”
이온이 식은땀을 흘리는 어미 드래곤을 연신 쓰다듬어 중에 놀라 대꾸했다.
욤뇽이를 보면 드래곤은 주변의 마나를 전부 끌어당기는 특성이 있는 만큼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양도 상당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드래곤이 마기에 잠식되어 있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기는 했는데, 혹시 아이 때문이었을까.
‘내 몸 안에서도 주변을 마기로 감싸고 있다고 했으니.’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마기에 둘러싸인 상황이라면 아이를 함부로 손대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잘못하면 그 마기에 잠식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꺼내지도 않고 드래곤의 몸을 다시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가득한 이온의 표정을 확인한 에렌스트 경이 페드로의 손목을 잡더니 그를 물러나게 했다.
“잠시. 제가 살피겠습니다.”
“끼잉…….”
이제 어미 드래곤은 의젓하게 참고 있는데, 욤뇽이가 옆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기 때도 눈물로 사람 마음을 약하게 하더니 성체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에렌스트 경이 그런 욤뇽이의 눈치를 살피다가 일단 제 겉옷을 벗어 바닥에 펼쳐 놓고는 어미 드래곤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페드로가 옆에서 염려 어린 이야기를 했다.
“괜찮겠습니까? 그러다 마기에 잠식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제가 검사이긴 하나 몸에 마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에렌스트 경이 그렇게 받아넘기며 어미 드래곤의 벌어진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페드로에게서 칼을 건네받은 그가 문제의 아이가 있는 곳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생살을 찢는 것에 어미 드래곤이 고통스러워 바들바들 떠는 게 느껴졌다. 이내 피가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에렌스트 경이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진짜로 드래곤의 몸 안에서 사람의 아이를 발견할 줄은 몰랐던 터라,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는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마나에 안전하게 감싸여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페드로가 서둘러 말을 붙였다.
“어서 아이를 꺼내요. 일단 탯줄 자르는 건 꺼내고 나서.”
대체 무슨 마법을 썼기에 인간의 자궁과 드래곤의 몸을 연결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백 년 가까이 마탑에서 마법 연구만 하고 살아왔을 마리엘이라면 이런 괴기스러운 짓을 충분히 할 법해 보이기도 했다.
에렌스트 경이 아이를 꺼내 페드로에게 건넨 뒤에야 탯줄을 잘랐다.
그러자 눈을 감은 핏덩이가 페드로에게 안겼다. 페드로가 작은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치며 울음을 유도하며 아이를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겉으로 보기에는 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아이가 너무 작아요.”
이온은 이 기이한 생명 탄생의 광경 앞에서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살릴 수 있을까요?”
“당장 탑을 내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니 행운을 빌어야지요.”
욤뇽이 때문인지 몰라도 바깥에 비가 오는 중이다 보니 서둘러 나간다고 해도 상황이 좋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아이를 받아 본 적 있다더니, 페드로의 품에서 과연 얼마 안 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