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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69)화 (269/317)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페드로가 에렌스트 경이 벗어 둔 옷을 강보처럼 아이에게 감쌌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온은 어미 드래곤의 얼굴을 꽉 안아 주며 중얼거렸다.

“이제 다 됐어. 조금만 참아 줘.”

“끼이…… 끼.”

드래곤이 연신 신음하면서 페드로의 쪽으로 고개를 트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제 속에 머물렀던 아이라 그런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온이 그런 어미 드래곤의 모습에 당황해 살며시 물었다.

“아이를 보고 싶어?”

“끼.”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페드로 역시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던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이를 눈앞에 데려다주었다.

어미 드래곤이 옷에 감싸인 아이를 살며시 혀로 할짝할짝하며 피를 닦아 주었다.

“…….”

그 모습을 보는 이온도, 페드로도 숙연해져 잠시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때까지 드래곤의 환부를 계속 지켜보던 에렌스트 경이 이온을 불러 왔다.

“도련님.”

“무슨 일 있어?”

설마 아이가 하나 더 있거나 한 걸까? 이온이 움찔하며 대꾸하자, 에렌스트 경이 중얼거렸다.

“저희가 찾던 게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찾던 거라니…….”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어미 드래곤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양인지 아이를 핥던 걸 멈추고 반응을 보였다.

“끼이…….”

에렌스트 경이 직접 보시라는 듯이 몸을 살짝 트는 것에 이온이 긴장한 채로 다가갔다. 피를 보니 속이 울렁거리는 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에렌스트 경이 말했던 것이 눈에 보이기도 전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미아블레 가문의 진짜 레갈리아 찾기]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이온은 그제야 드래곤의 환부 안쪽에 박힌 파란빛의 레갈리아를 확인했다.

미아블레 가문의 가보이자 신물인 그것이 드래곤의 몸 안쪽에서 홀로 빛나는 중이었다.

이온이 굳어 있는 사이, 에렌스트 경이 드래곤의 몸에 박혀 있던 그것을 빼냈다. 그동안 차마 직접 보지 못해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이온의 앞에 다른 텍스트들이 흘러갔다.

[현재 활성화된 퀘스트 ‘제멜 드루실라 크레이거의 배신’의 진행에 영향을 미칩니다.]

곧 이온의 손에 피 묻은 작은 레갈리아가 쥐어졌다.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이온이 난처히 중얼거렸다.

“이걸 왜 몸에 박아 둔 거지?”

무언가 실험을 하려 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마기에 잠식된 드래곤, 그 몸에 옮겨 둔 아이, 그리고 몸에 박힌 신물.

그러나 당사자가 앞에 있는 게 아니니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죄 없는 것들을 이렇게 괴롭혔다는 데에 이온은 이를 악물었다.

카밀루스를 향한 학대 또한 이처럼 말도 안 되고, 무자비했을 거란 생각에.

이온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에렌스트 경이 서둘러 그의 주의를 돌렸다.

“일단은 다 꺼냈으니 어서 치료부터 해 줘야겠습니다. 소공작, 저를 좀 도와주시죠.”

“아, 응.”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렌스트 경이 품에서 손수건 여러 개를 꺼내서 이온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여기 피가 나오는 곳을 누르고 계십시오.”

페드로도, 에렌스트 경도 신경 써서 최소한으로 칼을 댄 것 같았지만 드래곤의 살은 인간의 것보다 훨씬 질겨 아무래도 힘이 많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온은 찢어진 부위를 그의 말대로 꾹 누르며 입술을 물었다.

‘카밀루스가 있었으면…….’

그랬으면 이런 것도 금방 해결됐을 텐데.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 수 없으니 이온은 너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언제 돌아오는지만이라도 특정이 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초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카밀루스와 마리엘, 그리고 이 공간에 있던 마기를 한꺼번에 집어삼킨 구멍마저 사라져 있는 것이, 마치 그가 돌아올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듯한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괜한 걱정일 거야…….’

반드시 돌아올 거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환부를 꾹 누르고 있는 손이 자꾸만 떨렸다. 에렌스트 경이 그것을 발견하고 염려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도련님?”

“난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처치를 해.”

이온의 말에 에렌스트 경이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옷을 더 벗고, 페드의 옷까지 빼앗아 연결한 뒤에야 겨우 이온에게 손을 떼라 한 뒤 드래곤의 커다란 몸체를 둘러 꽉 동여맸다.

여전히 상처에선 피가 배어났지만 어미 드래곤은 됐다는 듯이 그만 날개를 내려 그 부위를 가렸다.

아이 울음소리가 여전히 탑 안쪽에 퍼지는 가운데, 이온은 왜인지 탈진한 느낌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바깥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그제야 선명하게 들려왔다.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어 이온이 몸을 떨었다.

호흡이 조금 급해진 이온의 몸을 붙잡아 주며 에렌스트 경이 염려 어린 말을 흘렸다.

“입술이 하얘졌습니다, 소공작.”

“괜찮아.”

안 괜찮다고 하면 에렌스트 경은 바로 자신을 엎고 탑을 뛰어 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싫었다.

여기서, 카밀루스를 기다리고 싶었다.

오늘 내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하여 힘을 내기 위해 에렌스트 경의 소매를 꽉 잡으며 그를 올려다보던 그때였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의 굉음이 탑을 뒤흔든 것은.

울려 퍼진 것은 천둥과 같이 큰 소리였으나 그런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크허어어어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페드로였다. 북부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던 그가 곧장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고는 탑의 뚫린 공간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상황을 알렸다.

“황궁이 완전히 불타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몰려간 것 같은데…….”

“무슨 일이죠?”

“몬스터가, 나타난 것 같아요.”

탑이 높기는 하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덕에 페드로는 상황을 선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화마에 집어삼켜진 황궁과 그를 둘러싼 기사들.

그리고 불사라도 되는 듯이 불타 몸부림치는 커다란 몸체의 몬스터.

그것을 누군가 상대 중이었다.

아마도 버니언이.

페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창 쪽으로 다가선 이온이 그가 말한 것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만약 페드로가 같은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제 눈이 삐었는 줄 알았을 것이다.

화염과 이미 일체가 된 듯한 커다란 검은 괴물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문제는 그 괴물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간 황도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이온은 처음 목도하는 살아 있는 몬스터의 존재에 혼란을 느꼈다.

“원래 몬스터는…… 불타도 움직이나요?”

불안감을 고조하듯 페드로의 품 안에서 아이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미 육아 경험이 있는 페드로는 당황하지 않고 둥둥 어르며 대답했다.

“그런 녀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건.”

정도가 심했다.

몬스터도 어쨌든 통증을 느끼는데, 저건 불길에 휩싸여 있는데도 계속 움직이지 않는가.

페드로도 저런 존재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황성 내에서 한꺼번에 이상한 일들이 몰려서 터지자 이온도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의 뒤에서 에렌스트 경이 재빨리 말했다.

“도련님, 아무래도 이만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온이 그에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야?”

이 탑에 온 건 애초에 카밀루스를 찾기 위함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자리를 뜨자니.

하지만 에렌스트 경은 단호했다.

“현실적으로, 대공께서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의 입장에선 생사조차 불확실한 셈이었다. 이온에게 걸린 마법의 실체를 모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회장에 있던 이들도 이젠 전부 빠져나갔을 겁니다. 게다가 황궁이 저런 상태이니 너무 늦을 경우엔 도련님께서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어 에렌스트 경이 페드로의 품에 안긴 아이도 힐끗했다. 아이가 달래지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이곳은 막 태어난 아이가 계속 머물기엔 상당히 적절하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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