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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1)화 (271/317)

* * *

이온은 어느 문 앞에 있었다.

문.

제가 전생에 통과해 왔다고 착각했던 어느 문 앞이었다. 이온 크레이거는 문틈을 따라 흘러들어 오는 빛을 염원하던 작은 소년…… 아니, 아니다.

소년이라기엔 너무 컸다.

어린아이의 것이라기엔 특유의 부드러운 살이 모두 빠진 손. 심지어 문을 얼마나 두드려 댔었는지 이미 손날이 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온은 이제 더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저 저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문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온에게 눈앞의 문은 절망의 상징이었다.

수년간 탑 안에 갇혀 이 문 하나를 넘지 못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미약하게 기침을 흘리며, 이온이 오늘도 통과를 허락지 않는 문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1층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나가지 못할 것이니 이제는 포기하는 것도 좋을 텐데.”

“…….”

이온은 제게 말을 걸어오는 인형을 돌아보았다. 퀭한 시야에 들어온 건 마탑주 재니스였다.

그가 나타나자 이온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걸음을 물렸다. 그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학습된 공포에 의한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어느새 탑의 벽에 등이 부딪힌 이온이 제게 천천히 다가오는 재니스를 향해 중얼거렸다.

“……나, 나가려던 건 아니었어. 용서해 줘.”

그러자 재니스가 즐기는 건지 안타까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올라가시지요, 소공작.”

“…….”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호칭을 입에 올린 재니스가 바짝 다가오더니 서 있는 이온의 다리를 받쳐 올렸다.

살이 하나도 없어 관절이 도드라져 보이는 그의 몸은 손쉽게 재니스에게 안겼고, 늘 그랬듯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탑의 1층에 내려간 것이 무색하게 재니스가 마법으로 그를 도로 꼭대기층에 올려다 둔 것이었다.

구석에 내려진 이온은 애처로울 만큼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그를 적당히 데려다 두고 뒤돌아서는 재니스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용기에 의해 그의 다리를 붙잡고 오늘도 애원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제발 내보내 줘.”

이 이름 없는 탑에서 탈출하게 해 달라고.

그러자 재니스의 눈이 살며시 이온에게로 향했다. 몸을 틀며 자연스럽게 이온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그가 이온의 턱을 들어 올렸다.

곧 그의 입에서 닫힌 문보다 더 확실한 절망이 언도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안 돼.”

“…….”

수년간 이미 몇 번이나 들은 말이지만 이온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아이를 낳는다니, 나는 남자인데.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같은 이야기를 들어 온 이온의 관심사는 더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내, 내가 대체 누구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데?”

이젠 대체 누구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 탑에서 나가게 해 준다는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희망은 그것뿐이었으므로.

이온은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어떤 끔찍한 일이라도 빨리 해치워 버리고 이 탑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재니스는 오늘도 답을 주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날이 올 테니 힘 빼지 말고, 그냥 얌전히 있으세요.”

“…….”

“몸도 아프잖아. 그렇지?”

달래는 건지 협박하는 건지 모를 그의 말에 이온은 입술을 꾹 물었다. 그러다가 숨이 차 이내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사소하게 시작된 징후는 점점 정도가 심해져 재니스가 떠날 즈음에, 이온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탑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기침은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져 잠들 수도 없었다. 폐가 죄어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밤새 몸을 들썩이던 이온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차라리 자신에게 죽음이 내려지길 바랐다.

그러나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 몰라도, 이 약해 빠진 몸은 언제나 생을 이어 갔다.

혀를 깨물어도, 벽에 머리를 부딪쳐도, 며칠 곡기를 끊어도 죽지 않았다.

혹시 불사가 아닌가 싶게.

그렇게 살아서 깨어나면 늘 재니스가 눈앞에 보였고, 그 횟수가 양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이 된 어느 날부턴가 이온은 자해를 그만뒀다.

죽음조차 포기해 버린 무력한 삶이, 수없는 사람이 뛰어내린 통곡의 탑 안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 * *

이온이 그렇게 살아온 지, 아니 갇힌 지는 벌써 수년이 흘렀다.

하지만 이온은 이제 시간 감각조차 없어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스스로가 몇 살인지도 몰랐다.

그가 이곳에 갇힌 건 원래 이 탑에 갇혀 있던 아이, 카밀루스를 구해 내고 얼마 안 된 어느 날의 일이었다.

탑에서 나온 뒤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며칠을 앓고 있던 이온은 황태자인 버니언의 부름을 받고 황성에 온 뒤 그대로 이 탑에 갇혀 버렸다.

처음 며칠은 금방 나갈 수 있으리라고, 제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인 틀림없이 찾아오리라고 그런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이제 전부 다 마모되어 사라졌다.

이후로 제 거취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없으나 이온은 아마 제가 죽은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실제의 이온은 여기서 뛰어내려 자살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 걸린 금제 때문에 몸이 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탑의 창문에 노을이 질 무렵 정신을 차린 이온은 제 코앞에 놓인 빵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무성의하게 집어먹었다.

그러다 밖에서 들려오는 둥, 둥, 하는 북소리에 비척비척 상체를 일으켜 창문으로 다가갔다.

콜록콜록.

탑 안의 공기가 좋지 않은 데다 추운 계절이라 한기 때문에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폐가 아파 와 가슴을 부여잡으며 창문가로 다가갔다. 몸을 빼려 하자 제게 달린 금제가 우웅 울어 창틀만 붙잡은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쌕쌕 하는 숨소리를 뱉으며 이온이 한눈에 들어오는 황성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갇혀 있는 이 탑은 너무 높아서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너무 잘 보였다. 사실 그것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바깥을 더 열망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애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원치 않는 역지사지를 하며 이온이 어렴풋하게 카밀루스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탑 아래의 일을 지켜보았다.

둥, 둥…….

깊은 북소리가 귀인의 행차, 그러니까 황제의 행차를 알리고 있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태양궁에서부터 내황성의 입구까지 기사들이 두 줄로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커다란 마차가 지나갔다.

멀리서도 황가의 휘장만큼은 선명하게 보이는 그 마차는 먼길을 떠나는지 지붕과 뒷면을 털로 뒤덮은 채였다.

‘추운 곳으로 가나.’

겨울이라고는 하나 마차까지 저렇게 준비할 정도라면 멀고 험한 곳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이온은 그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너무 기침을 많이 해 잔뜩 부어오른 목으로 침을 넘겼다. 그러면서 창문틀을 붙잡은 채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도, 저 마차의 주인처럼 누군가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줬으면 했다.

하지만 제게 구원의 빛이 비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 * *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아, 욱…….”

탑에 대한 기억이 밀려오면서 이온은 어째선지 구역질이 올라왔다.

“도련님, 숨을 깊게 쉬세요. 소공작!”

에렌스트 경이 열심히 외치고 있었지만 이온은 거기에 호응해 줄 수가 없었다.

지극한 두통과 현기증 속에서 그가 겨우 생각을 이어 갔다.

‘이게 왜 내 기억이지?’

망상이 아니라 기억.

뭔가 이상했다.

이온 크레이거가 북부로 가는 황제의 마지막 행렬을 어째서 탑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

게다가 손목과 발목에는 카밀루스가 찼던 금제가 걸려 있고, 옆에는 재니스가 있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애쓰며 기억 속의 제가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불사인 것 아닌가 싶게.’

역시나 시스템창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찾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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