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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2)화 (272/317)

[상태 이상(Hidden): 절대 행운. LUK 수치와 상관없이 생존에 관한 한 플레이어에게 절대 행운이 따릅니다. 심장이 멈추거나 사망 확률이 100%가 되기 전엔 플레이어가 사망하지 않습니다. ※현재 해제되어 있습니다.]

기억 속의 이온 크레이거도 ‘저주’에 걸려 있었다.

거기까지 추론해 냈지만 결국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아니, 사실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기 싫은 것일지도…….

이온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두드렸다.

가빠진 숨에 에렌스트 경이 이러면 안 된다고 계속 외쳤고, 눈앞의 드래곤 두 마리도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두통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이런 몸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경고! 경고!]

[플레이어는 ‘마나 소실’ 상태입니다.]

[무리한 활동은 사망 확률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플레이어의 사망 확률은 29…….]

[30…….]

[33…….]

[……35%입니다.]

‘왜 아직도…… 안 풀린 거야?’

마나 소실은 저주에서 온 것 아니었나?

연신 질문만 쏟아 내는 무거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이온은 바닥을 내려다보는 와중에도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 * *

허억, 헉.

폐가 조여 죽을 것 같았지만, 스스로가 적어도 이 탑 안에서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온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선형의 끝도 없는 계단을 달려 내려가다가 현기증에 굴러 버릴 뻔도 했으나, 가까스로 그것은 면했다.

그렇지만 이온은 알았다. 결국 1층으로 가면 붙잡힐 것이다.

상대방도 그 사실을 알기에 여유로웠다. 가까이 쫓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온에게는 더 공포스러웠다.

마침내 1층에 도착한 이온은 언젠가부터 제 손으로 열기를 포기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탑의 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여, 여기, 사람이 갇혔어……!”

나를 구해 줘. 누구든 좋으니까.

쾅, 쾅.

어느 누구든 자신을 구해 주기만 한다면 이온은 그를 신처럼 신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때 카밀루스가 저를 그렇게 봤던 것처럼…….

“제발, 제발!”

쾅, 쾅.

간절히 외치면서 이온은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떠올렸다.

적어도 카밀루스 클로델, 너는 여기에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널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 줬었는데…….

물론 바깥의 찬란한 빛을 본 카밀루스가 스치듯이라도 이곳에 올 이유는 전혀 없다. 알지만, 알고 있지만 이온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간절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문 바깥에서 대답은 없었다.

그사이에도 저벅거리며 탑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분의 것이었다.

이온이 탑에 갇힌 이후로 이곳에서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린 적은 거의 없었다.

여러 마탑의 인물들이 번갈아 가면서 찾아왔던 카밀루스와 달리 그는 재니스가 직접 관리했다.

하여 사람을 너무 안 만나 이온은 거의 혼잣말밖에 할 수 없었고, 언젠가부터는 말을 서서히 더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에 발소리가 두 개였다.

‘오랜만’이라는 게 언제나 좋은 현상만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오랜만이라서 더 좋지 않을 때도 있다.

〈내, 내가 누구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데?〉

이온은 재니스가 데리고 온 상대를 보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임을 알아차렸다.

얼마 전 창문을 통해서 봤었다, 태후궁에 관이 들어오는 장면을.

제국의 황제가 서거한 게 틀림없다.

그리고 오늘 재니스 옆에 나타난 그 익숙한 사람은 언젠가 이온이 봤던 오브라이언의 황제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싫어, 싫어.’

탑에 갇힌 이온 크레이거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선택을 떠올렸다.

* * *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철컥, 하고 카밀루스의 손에서 드디어 금제가 떨어져 나갔다.

〈나, 이 금제를 풀 수 있어!〉

이온이 그런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던 카밀루스는 정말로 두 손목을 조이던 족쇄가 떨어져 나가자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이온, 이게 어떻게 된……?”

얼떨떨해하고 있긴 해도 그 질문 안에는 감격스러움이 어린 것을 보며 이온은 미소 지었다.

역시나 이게 맞았다.

그렇지만 이 탑에서 더 머물 시간은 없었다. 이온은 아직 제 자유로워진 손을 내려다보고만 있는 카밀루스의 손을 잡았다.

“카밀루스, 내 말 잘 들어. 우린 이제 바깥으로 나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네가 해야 할 말이 있어.”

“해야 할 말?”

카밀루스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온의 말을 되풀이했다.

이온은 카밀루스의 그 선명한 눈동자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눈이,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황가의 핏줄임을 인증해 줄 테니까.

“여러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들을 보면서 네가 황제 폐하의 아들이라는 걸 밝혀야 해.”

이온은 카밀루스가 단순히 이 탑을 빠져나가기만 해서는 황자로서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황제가 다시 가두거나 숨기면 그만인 일이니까.

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알리면 되잖아?’

어차피 자신이 이 탑에 올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가 황성에 드는 날이다.

아무리 크레이거 공작이라도 황제를 독대하는 날은 드물기 때문에, 그런 날엔 보통 아버지만 황궁에 오는 게 아니라 많은 귀족들이 함께 자리한다.

이온은 이것이 아주 크나큰 사고를 치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황제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다른 귀족들도 경악을 하겠지.

그러나 이온은 이 탑에 카밀루스를 가둔 죄악이 앞으로 저지를 제 죄보다 더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무슨 핑계로 자신을 처벌할 것인가. 탑에서 고통받고 있는 황실의 핏줄을 구해 냈다는데.

이온은 제 행동이 불러올 파장이 두렵기도 했으나 이것이 정의로운 일임을 확신했다.

죄도 없이 갇혀 있는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정의란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은 분명한 부정의다.

“그것만 하면 돼, 알겠지?”

카밀루스는 아직 이온이 어떤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 잘 모르는 듯했지만, 이온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그 순간 이온을 보는 카밀루스의 눈빛은 자신의 우상을 대하는 자의 그것이었다.

이온은 그에 입꼬리를 살며시 올려 웃으면서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카밀루스도 얼른 창문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바깥으로 뻗었다.

탑의 영역을 벗어났는데도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카밀루스는 감동한 모양인지 입을 벌린 채 손을 계속해서 뒤집어 봤다.

그런 카밀루스에게 이온이 얼른 말했다.

“카밀루스, 순간 이동 마법을 써 줘. 저기, 저 건물 보여?”

이온이 손으로 가리키는 건물을 보면서 카밀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

“저기로 너랑 나 둘 다 이동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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